봄날에 듣는 ‘파바로티’

작년 말 조블이 문을 닫은 후 100여 일 만에 위블로그로 올겨왔다. 지난 4월 11일 첫 글을 올린 후 지금까지 다섯 꼭지의 글을 썼다. 훑어보니 알량한 신변잡기다. 주제도 아내와 술 이야기다. 낯부끄러워 삭제하려고 했지만 너무 소갈머릴 보이는 것 같아 그냥 두었다. 그러곤 다짐했다. 이젠 좀 품격 있는 글을 써야겠다고.

여담으로 한 마디만 더. 잘 모르는 분들이 내 글을 읽으면 엄청 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 것 같다. 물론 좋아하고 종종 마시지만 알코올에 빠질 정도는 결코 아니다. 내가 술을 배운 것도 서른이 넘어서다. 신문기자나 공무원 생활할 땐 술을 안 마셨지만 협동조합 일을 하면서 술을 배웠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출장을 자주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술을 마시게 되었다. 나이 일흔을 넘긴 지금도 한 잔씩 한다. 그렇지만 예전하곤 다르다. 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밖에서 마셨지만, 지금은 혼자서 그것도 집에서, 내 방에서 음악 들으며 마신다. 그것도 흠이라면 할 수 없고.

요즘 토스티(F.P. Tosti)의 가곡 ‘이상(理想, Ideale)’을 즐겨 듣는다. 잔잔한 피아노 반주를 타고 흘러나오는 노래는 언제 들어도 좋지만, 봄날에 제격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이 곡을 처음 들었던 게 20대 초반이었으니 어언 반세기 넘게 이 노래를 들어왔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연주자는 테너 윳시 브욜링(Jussi Bjorling, 1911~1960)이었다.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넘긴 스웨덴 태생의 테너는 체격도 카루소 만큼이나 튼실했다. 그가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불렀던 실황음반이었는데 많은 노래들 가운데 유독 토스티의 ‘이상’이 돋보였었다.

그후 열 명의 테너를 묶은 음반에서 브욜링이 불렀던 노래 한 곡을 더 듣고 그 음성에 반했다.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3막 2장에 나오는 아리아 ‘타오르는 저 불길을 보라(Di quella pira forrendo toco)’였다. 송곳처럼 날카롭고 예리한 음성이었지만 정감이 가득 담겨 있는 따뜻한 목소리였다. 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상’을 불렀지만 언제나 브욜링의 노래만을 선택했다. 타리아비니나 질리, 스테파노나 카루소도 이 노래는 브욜링을 따라오지 못 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우연히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가 불렀던 ‘이상’을 듣곤 생각을 바꾸었다. 1978년 파바로티가 43세 때의 동영상이었다. 40대 중반의 그가 왼손에 흰손수건을 불끈 쥐고 마치 떠나간 연인을 생각하며 하소연 하듯 불렀다. 종반에 절규하는 그 목소리에 매료당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도 모르게 감정은 벅차올랐고 나중엔 눈시울까지 뜨거워졌다. 파바로티의 ‘이상’ 한 곡으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토스티의 ‘이상’을 파바로티의 목소리로 다시 들어본다.

8 Comments

  1. 영지

    2016년 4월 19일 at 7:39 오후

    진솔한 바위님 일상 얘기읽고 저도 가끔 생각합니다.혹시 나는 ? ㅎㅎㅎ
    사람 사는게 다 다른것 같아도 비슷하고,
    비슷한것 같아도 다 다를 수 있고 말입니다.간접 경험으로 많이 참고 합니다.

    파바로티 하면 저는 흔히 듣는 사랑의 묘약의 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시간 될때 오페라 전체를 들으며 중간에 주옥같은 아리아가 나오는 때의
    느낌이 몹시 감동이 더하는것 같아요.한 예로
    비제의 진주 잡이(?)라고 하나요?) 에서 Je crois entendre encore (우리말로는 ?)
    이 나올때 그 감동 ㅎㅎㅎㅎ

    • paul6886

      2016년 4월 19일 at 10:45 오후

      영지님,
      마구잡이로 늘어놓는 글이 때로는 당혹스럽게도 하지요.
      하지만, 써놓고 나면 스트레스가 좀 풀리기도 하지요.

      파바로티의 목소리를 좋아하지만
      비제 ‘진주조개잡이’ 중 1막의 아리아 ‘귀에 남은 그대 음성’은
      테너 베냐미노 질리의 노래가 최고지요.
      약간은 코맹맹이인 듯한 감미로운 질리의 노래는
      글쎄요, 파바로티도 흉내낼 수 없지요.
      도니제티 ‘사랑의 묘약’ 중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은
      테너 페룻초 탈리아비니를 저는 제일로 꼽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로 들어보세요.
      유투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요.

      좋은 말씀 항상 감사합니다.

  2. 영지

    2016년 4월 19일 at 7:45 오후

    앗, 빠졌네요.파바로티의
    사랑의 묘약중을 좋아하는데요.

    계속 건강 하세요.

    • paul6886

      2016년 4월 19일 at 10:48 오후

      감사합니다.
      영지님도 건강하십시오.

  3. 영지

    2016년 4월 19일 at 7:49 오후

    이상하네요 ,다시 덧붙임,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라는 말이 자꾸 빠지고 안나오네요.
    부호를 빼고 다시 시도합니다.

    • paul6886

      2016년 4월 19일 at 10:47 오후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은
      테너 페룻초 탈리아비니의 노래가 좋습니다.

  4. 데레사

    2016년 4월 19일 at 8:00 오후

    신변잡기를 썼다고 나무랠 사람없어요.
    저 역시 늘 신변잡기를 올리거든요.
    바위님이 오셔서 얼마나 좋은데요.

    파발로티의 노래는 저도 좋이합니다.

    • paul6886

      2016년 4월 19일 at 10:38 오후

      데레사님,
      신변잡기를 가감없이 늘어놓다 보니 어떨 땐 부끄러운 생각도 들지요.
      앞으론 좀 가려서 쓰야 할 것 같습니다.ㅎㅎ

      파바로티의 감미롭고 정감 넘치는 목소리는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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