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끼어들 자리는 이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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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두 노인을 모시고 점심을 함께먹었다.

두 분 다 80대 후반으로 겉으론 정정하다. 허리도 꼿꼿하고 걸음걸이도 반듯하다. 하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것, 몇 년 전만 해도 호기롭게 마시던 막걸리도 한두 잔으로 그치고 매사에 조심스럽다.

그래도 오늘은 말소리가 씩씩하다.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며 잔을 들었다. 한 모금 목을 축인 한 분이 입을 열었다.

이보게, 내 웃기는 소리 하나함세. 예, 뭔 이야긴데요? 내 말 좀 들어보게나. 노인의 말은 계속되었다.

내가 잘 아는 사람 중에 지방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 있지. 나처럼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인데, 괜찮게 사는 사람이야. 아들 둘에 딸도 셋이나 두었지. 그중 큰 아들이 세상 말로 출세했지. 환갑이 다 됐는데 최고 명문대 나와서 지금도 재벌급 회사에서 사장으로 있지. 밑에 아들 하나하고 딸 둘도 명문대학 나와서 외국 유학까지 다녀왔거든.

그럼, 자식을 잘 두었네요.

그렇지. 근데 내 말 함 들어보라고. 부모가 팔십 초반인데, 얼마 전 어머니가 관절수술을 받게 된 거야. 살고 있는 지방도시의 대학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됐다고. 수술 날짜를 잡았지. 그런데 다른 자식들이 어머니한테 이야길 한 거야. 형님이 서울서 잘 사는데 기왕이면 서울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게 좋겠다고 말이지. 어머니는 아들한테 폐 안 끼칠라고 지방에서 수술 받을 생각이었지만 다른 자식들이 하도 성화를 부리니 할 수 없이 아들한테 전화를 했지. 전화를 받은 큰 아들이 어머니한테 말했대. 어머니, 그 대학병원도 괜찮아요. 괜히 서울 오실 생각 말고 거기서 수술 받으세요. 병원비는 제가 보내드릴께요.

아니, 그럴 수가 있어요? 지 자식은 모두 외국유학까지 보내면서 팔순이 넘은 노모를 서울에 못 모신다구요? 내 말에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이보게, 그게 우리 현실일세. 마누라, 자식 있는 지 가정에 부모가 끼어들 자리는 이제 없다고.

하도 열을 받아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켰다. 맞은 편에 고교 교장을 하시다가 퇴임하신 다른 노인께 괜한 화살을 돌렸다.

회장님(그분은 이북 모 군의 군민회장을 역임하셨다), 도대체 요새 학교 교육이 어떻게 돌아갑니까? 명색이 이름난 연예인이란 20대 아가씨가 안중근 의사 얼굴도 몰라보고 ‘긴또깡’, ‘도요토미 히데요시’라고 하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요즘 학교에서 역사교육은 시키긴 하나요?

전직 교장선생님이 빙그레 웃었다. 암, 시키갔지. 어떻게 시키느냐가 문제 아니갔어?

참으로 열불나고 서글픈 점심식사였다. 그 핑계로 죄없는 막걸리만 마셨고.

2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5월 17일 at 6:44 오후

    그게 바로 오늘을 사는 노인들의 서글픈
    현실입니다.
    자식에게 돈을 의탁하게되면 정말 비참해
    지지요.

    저도 속상합니다.

    • 바위

      2016년 5월 19일 at 8:42 오후

      어제, 오늘 엄청 바빴습니다.
      노트북 열어볼 사이도 없었고요.
      동해안 여행은 잘 하시지요.
      반가운 글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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