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선생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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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에서 방영되는 연속극을 잘 안 본다. 특히 상업방송들이 쏟아내는 드라마를 보노라면 마치 우리 사회가 사기꾼들의 천국이요, 기업이라는 곳이 이간질하고 시샘하는 비인격적인 인간들의 집단처럼 비쳐진다. 게다가 가정이란 곳도 고부 간의 갈등이 하늘을 찌르고 형제, 부모 사이의 위계질서는 아예 헌신짝처럼 여겨지는 꼬락서니다. 걸핏하면 자식이 부모에게 고함 지르며 달려드는 어처구니 없는 광경까지 봐야 한다. 그것도 아침부터.

해서 아침드라마를 즐겨보는 아내와 가끔 언쟁을 벌인다. 제발, 대한민국 국민을 야비한 인간들로 매도하는 그런 ‘쓰레기’ 같은 드라마 좀 보지말라고. 그렇지만 마약처럼 끌어당기는 그 재미를 끊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런 나도 한 드라마는 반드시 본다. J채널에서 아침 9시와 오후 6시에 보내주는 NHK 드라마 ‘야에[八重]의 벚꽃’이다. 아이즈[會津] 태생의 야에가 여자의 신분으로 총쏘는 걸 배워 성城을 지키고, 나중엔 목사인 남편과 함께 일본 최초의 동지사同志社대학교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재미 있게 보여주고 있다. 일본 근대사의 드라마로 ‘아츠히메’나 ‘사카모토 료마’, ‘신선조新選組’를 봤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도 많았다.

오늘 아침 이 드라마를 보다가 가슴이 찡했다. 학당을 연 초기, 운영난으로 하급반과 상급반을 합치기로 했다. 교장인 야에의 남편 니지마 조(일본인이지만 10대에 하코다테에서 미국으로 밀항했다) 목사는 반대했지만 교사들 다수가 동의하자 합반을 결정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에 반대해서 사흘 동안 수업거부 투쟁을 했다.

조 교장은 학생들과 교사들을 불러 모으고 잘 못된 결정을 사과하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학생들의 수업거부도 잘 못이라며 벌을 내리겠다고 했다. 그 벌은 학생들을 잘 못 가르친 교장 자신에게 있다고 선언했다. 어리둥절한 학생, 교사들 앞에서 교장은 왼손을 교탁 위에 놓더니 가지고 있던 굵직한 지팡이로 사정 없이 내려쳤다. 온 힘을 다해 대여섯 번 내려치자 학생들과 교사들이 달려와 울면서 말렸다. 그래도 교장의 지팡이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부러졌다.

이 장면을 보는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모든 책임을 혼자서 떠맡고 자신의 손을 내려친 그 용기가 내 가슴을 후려쳤다.

요즘 우리 사회에 내 책임이요 하고 나서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무엇이든 잘 되면 자기 탓이고 잘 못 되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이 나라 정치, 기업하는 사람들부터 나 같은 소시민에 이르기까지 똑 같다. 눈을 씻고 봐도 이게 내 잘 못이요 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다.

한 때 우리나라 가톨릭교회가 ‘내 탓이오’ 하는 캠페인을 벌여 큰 공감을 얻은 적이 있었다. 젊은 날 직장 생활 할 때 상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보게, 내가 왜 가톨릭교회 신자가 된 줄 알아? 이 세상 어디에도 내가 잘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데 미사에 참석해 보고 놀랐지. 미사가 시작되자 신자들이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하고 고백을 하는 거야. 그걸 보고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거든.

니시마 조 교장이 자신의 손을 내려친 두 동강난 지팡이는 지금도 남아 있다며 화면으로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에도 책임질 줄 아는 이런 지도자가 나오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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