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고교 동창들과의 산행을 마친 후 뒷풀이를 했다. 그날은 남한산성을 세 시간에 걸쳐 돌았기에 무척 힘들어했다. 시작은 마천역 쪽이었지만 하산은 서문으로 했기에 경기도 광주 땅이었다.
십 몇 년째 들린다는 단골 식당으로 갔다. 빈대떡을 시켜놓고 막걸리를 마셨다. 그곳 지역 막걸린가 했더니 서울 산 생막걸리였다. 누군가 막걸리 한 잔을 마시더니 고향 이야길 꺼냈다. 이봐라, 막걸리는 멀싸도(뭐라고 해도) 진주 옥봉양조장이 최고 아이가. 그 집 막걸리 끝내좋거든.
하모(그래). 내가 끼어들었다. 나는 어린 시절 그 양조장 옆에 살아 할아버지와 아버지 술 심부름을 자주 다녔다. 대개 한 되들이 주전자에 술을 받아 왔는데, 집에 오면서 몇 모금식 마시곤 했었다.
그 양조장 말이다. 참 대단했거든. 어릴 때 보모 진주 장날 독골(도동) 촌사람들이 뒤비리(뒤벼리)로 해서 장보러 댕겼거든. 장날 아침에 보모 큰 다라이(대야)에 풋고추를 수북하게 담아 놓고 큰 투가리에 된장을 소복하이 퍼놓는다꼬. 해 질 때쭘 해서 가보모 그 많던 고추하고 된장이 바닥난기라. 그때 촌사람들이 돈이 없어농께 막걸리 한 잔으로 점심을 때았단 말이다.
그러자 괜찮은 공직에 있었던 친구가 말을 받았다. 내는 옥봉양조장보담도 말티고개 꼭대기에 있던 대폿집이 생각나는기라. 고등학교 댕길 때 P와 내는 자전거 통학을 한 거라. P는 D면이고 내는 M면 아이가. 학교서 집에까지 자전거로 가모 두 시간 가까이 걸린다 아이가. 우리 둘이는 같이 댕겼는데, 말티고개 꼭대기가 갈림길이거든. 우리 둘이는 그게 있는 작은 대폿집에 들어가서 막걸리 한 사발씩 마시고 집으로 갔단 말이라. 추운 겨울에는 한 잔 마시모 열이 올라오는 기 갠찮거든.
옆에 앉았던 한 친구가 마침표를 찍었다. 야, 막걸리는 술찌게미에 대노모 고급이다. 내는 그 술찌게미 묵고 허기를 떼았단 말이다.
친구들은 그 소리에 숙연해졌다. 그때 한 친구가 웃으며 한 마디 던졌다. 그래, 춥고 배고팠던 그 시절이 그래도 지내놓고 본께 좋았다 아이가. 친구들은 말 없이 술잔만 비웠다.
데레사
2016년 6월 10일 at 4:32 오후
정종 술찌게미는 달달했지요.
저도 그거 먹고 취했던 적이있어요.
그리운 그시절 이야기입니다.
바위
2016년 6월 11일 at 10:08 오전
어린 시절 저도 술찌게미를 먹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밥 한 그릇이 정말 소중한 때였지요.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강한 하루 되십시오.
미미김
2016년 6월 11일 at 2:41 오전
?그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잘 견뎌 내시고 살아 오셨습니다. 바로 위의 어르신들께서 오늘의 한국을 이루어 내셨음을압니다. 숙연한 마음과 함께 감사를드림니다. 어르신들 부디 건강하시고 지금의 좋은세상 오래오래 누리시기 바람니다. 감사합니다.
바위
2016년 6월 11일 at 10:04 오전
그렇지요.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런 가난과 시련을 딛고 이루어졌지요.
그런 사실을 오늘의 젊은 세대들이 얼마나 알아줄런지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