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마음이 울적한 날

20160616_102335

오랜만에 여유로운 오전이다. 다음 주부턴 엄청 바쁠 터이니 이런 여유를 당분간 맛보긴 어려울 것이다. 해서 식탁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탔다. 아들이 베트남에서 사 온 거다. 외출 준비를 하던 아내가 옆을 지나며 한마디했다. 아, 커피 향기가 쥑이네. 이럴 땐 음악이 있어야겠지. 분위기 띄우는 데 그만인 미셸 맥로린의 피아노 곡들을 듣는다. 많은 곡 중에도 ‘외로운 무희’가 그래도 제일 낫지. 커피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평화로운 오전 한 때다.

하지만, 왠지 마음이 울적하다. 어제 오후 받았던 메시지 한 통때문이리라. 초등학교 동창회장으로부터 K의 아들이 죽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K는 여자 동창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타지로 가서 중, 고교를 나왔다. 그녀의 아버지가 사업으로 돈을 벌어 잘 살았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대학 다니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유독 고전음악을 좋아해서 젊은 날 종종 그녀의 집으로 가서 음악을 듣곤했다.

그녀와 다시 만난 건 20년을 훌쩍넘겨 서울에서였다. 40대 후반,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나갔다가 만났다. 그날 출장 갔다가 돌아온 내 가방에 씨디가 있어 그녀에게 주었다. 바흐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였다. 연주자가 아르투르 그뤼미오였던가. 그러곤 그만이었다.

20160417_080734

그러다가 다시 20년을 넘겨 그녀의 자식이 죽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접한 것이다. 자식을 앞세우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얼마나 비통할까. 그 아들이 사십을 겨우 넘겼을 터인데. 십수 년 전 한 친구가 아들 부부를 미국으로 유학보냈다가 아들을 잃는 변을 당했었다. 그후 친구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그나마 거의 회복되었다. 아직도 한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등산도 잘 다닌다. 친구는 아들을 잃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신앙 덕분에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다고 했다.

오래 전 협동조합 운동할 때 경남 지역의 한 섬에서 어떤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왜 낙도에서 목회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들 때문이라고 했다. P시에서 목회했던 그분은 초등학교 다녔던 아들이 해수욕 갔다가 바다에서 익사하는 불행을 겪었다. 그 목사님은 외딴 섬으로 보내달라고 노회에 요청했고, 결국 섬 인구의 90%를 신자로 만드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그분의 가슴속엔 언제나 아들이 묻혀 있다고 했다.

매혹적인 피아노 선율에 묻혀 커피 한 모금을 마셔본다.

그래도 왠지 가슴은 무겁기만 하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6월 17일 at 7:15 오전

    사람이 살면서 자식을 먼저 보내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흔히들 자식은 가슴에 묻고 부모는 산에 묻는다고 하죠.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요.

    • 바위

      2016년 6월 20일 at 11:01 오전

      며칠만에 들어왔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다는 건 가장 큰 슬픔이겠지요.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