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여유로운 오전이다. 다음 주부턴 엄청 바쁠 터이니 이런 여유를 당분간 맛보긴 어려울 것이다. 해서 식탁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탔다. 아들이 베트남에서 사 온 거다. 외출 준비를 하던 아내가 옆을 지나며 한마디했다. 아, 커피 향기가 쥑이네. 이럴 땐 음악이 있어야겠지. 분위기 띄우는 데 그만인 미셸 맥로린의 피아노 곡들을 듣는다. 많은 곡 중에도 ‘외로운 무희’가 그래도 제일 낫지. 커피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평화로운 오전 한 때다.
하지만, 왠지 마음이 울적하다. 어제 오후 받았던 메시지 한 통때문이리라. 초등학교 동창회장으로부터 K의 아들이 죽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K는 여자 동창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타지로 가서 중, 고교를 나왔다. 그녀의 아버지가 사업으로 돈을 벌어 잘 살았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대학 다니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유독 고전음악을 좋아해서 젊은 날 종종 그녀의 집으로 가서 음악을 듣곤했다.
그녀와 다시 만난 건 20년을 훌쩍넘겨 서울에서였다. 40대 후반,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나갔다가 만났다. 그날 출장 갔다가 돌아온 내 가방에 씨디가 있어 그녀에게 주었다. 바흐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였다. 연주자가 아르투르 그뤼미오였던가. 그러곤 그만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20년을 넘겨 그녀의 자식이 죽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접한 것이다. 자식을 앞세우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얼마나 비통할까. 그 아들이 사십을 겨우 넘겼을 터인데. 십수 년 전 한 친구가 아들 부부를 미국으로 유학보냈다가 아들을 잃는 변을 당했었다. 그후 친구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그나마 거의 회복되었다. 아직도 한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등산도 잘 다닌다. 친구는 아들을 잃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신앙 덕분에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다고 했다.
오래 전 협동조합 운동할 때 경남 지역의 한 섬에서 어떤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왜 낙도에서 목회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들 때문이라고 했다. P시에서 목회했던 그분은 초등학교 다녔던 아들이 해수욕 갔다가 바다에서 익사하는 불행을 겪었다. 그 목사님은 외딴 섬으로 보내달라고 노회에 요청했고, 결국 섬 인구의 90%를 신자로 만드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그분의 가슴속엔 언제나 아들이 묻혀 있다고 했다.
매혹적인 피아노 선율에 묻혀 커피 한 모금을 마셔본다.
그래도 왠지 가슴은 무겁기만 하다.
데레사
2016년 6월 17일 at 7:15 오전
사람이 살면서 자식을 먼저 보내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흔히들 자식은 가슴에 묻고 부모는 산에 묻는다고 하죠.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요.
바위
2016년 6월 20일 at 11:01 오전
며칠만에 들어왔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다는 건 가장 큰 슬픔이겠지요.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