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가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오늘 아침 J티비에서 나오는 ‘료마전’을 보고 있다가 뒤이어 나온 프로에서 생선회를 보게 되었다. 침을 흘리는 내 모양이 가엾었던지 신촌 H백화점에 가서 생선회를 사오라며 아량을 베푼다. 해서 연어회와 아내가 부탁한 야채죽까지 사왔다.
내가 쓰는 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석류주 몇 잔했다. 셸리 맥로린의 감칠맛나는 피아노음악도 즐기다가 키타로의 ‘실크로드’ 시리즈까지 들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씨디 라벨이 있었다. 거장 빌헬름 켐프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 앨범이다.
알다시피 바흐의 평균률 피아노음악 48곡이 피아노음악의 ‘구약성서’라면,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32곡은 ‘신약성서’에 속한다. 물론 이 곡들 가운데는 ‘월광’이나 ‘비창’, ‘열정, ‘템페스트’, ‘발드슈타인’ 같은 명곡들이 즐비하다. 나도 처음 고전음악을 접할 때 ‘월광’을 들으며 한창 헤맸으니까. 차라리 ‘비창’이 훨씬 났겠지.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를 듣노라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1964년 대학입시에 떨어지고 재수할 때 KBS에서 보내준 멋진 음악프로가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교향곡과 협주곡, 피아노곡, 실내악곡, 오페라로 한 주간을 풍요롭게 장식해주었다. 그 당시 어느 요일에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만 보내주는 시간이 있었다. 해설자는 어느 대학 교수였는데 여자 분이었다. 그 음악을 들으면서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에 흠씬 빠졌었다.
그러다가 오래 전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집을 구입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의 앨범으로.
오늘은 이 음악을 다시 한 번 들어봐야겠다.
그래, 내 마음에 불을 지핀 ‘월광’부터 들어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