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이의 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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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남부터미널에 갔다. 주문한 산딸기를 찾기 위해서였다. 요즘 고향엔 산딸기가 제철이다. 며칠 전 거래했던 생산자로부터 문자가 왔다. 아내에게 상의했더니 10kg만 사잔다. kg당 1만 3천 원에 배송비는 소비자가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당일 새벽에 따서 버스편으로 부치니 터미널까지 가서 찾아와야 하는 번거러움은 있지만 그래도 고향의 산딸기여서 감내하고 있다.

예정 시간보다 조금 빠르게 나갔더니 고향에서 온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보다 30분 먼저 출발한 차였다. 고향의 지명이 적힌 버스를 보니 괜히 가슴이 울컥했다. 고향 떠난지 40년도 훨씬 지났건만 아직도 ‘진주’란 글씨만 봐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참, 별 일이다.

젊은 날, 1967년 12월이었다. 창원훈련소에 입대했다. 추운 겨울 아침이면 교육장에 나갔다. 자리에 앉아 철조망 너머를 보면 진주-부산간 국도가 보였다. 부산에서 진주 가는 버스가 간간이 지나갔다. 그때도 버스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 저 버스를 타면 집에 갈 수 있는데. 그 불 같은 고향생각을 지우기 위해 좋아했던 음악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멘델스존의 교향곡 3번 ‘스콧틀랜드’ 2악장이나 차이코프스키 발레음악 ‘호두까기 인형’ 가운데 몇 곡들을 흥얼거리며 향수를 달랬다.

어제도 그랬다. 아, 저 버스만 타면 세 시간 반 후엔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는데. 하지만 생각만으로 마음을 다독여야만 했다. 10년 전만 해도 무조건 버스를 탔겠지만 말이다.

남부터미널에서의 고향생각, 일흔을 훌쩍 넘긴 늙은이의 주책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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