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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대만대사님은 “산이 생활의 일부” …참사관은 “나는 북한산홀릭” - 마운틴
대만대사님은 “산이 생활의 일부” …참사관은 “나는 북한산홀릭”

한국에서 근무하는 대사들은 휴일을 어떻게 보낼까?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휴일까지 연장되는 공식적인 업무 외에도 다양한 사교모임, 골프, 운동 등을 통해 대부분 부족한 시간을 쪼개 사람을 만나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 중 주한대만대표부 진영작(陳永綽:천용춰, 65) 대사는 매달 한두 번씩 꼭 산을 찾는 대표적인 ‘등산마니아’로 꼽힌다. 부인과 친구, 대표부 직원, 다른 대사들과 함께 간다. 2006년 대만 외교부 차관보로 근무한 뒤 바로 한국에 부임해서 가진 유일한 취미생활이며, 이젠 아예 습관이 됐다.

천 대사로 인해 대만대표부는 등산이 일반화 됐다. 공식적인 일이 없는 휴일이면 으레 등산가는 걸 당연시 할 정도가 됐다. 지난 8월 1일 천 대표와 대만대표부 직원 3명과 함께 북한산을 찾았다. 공보관인 유명랑(劉明良, 55) 참사관, 서기관인 이영성(李永盛) 2등비서, 매중해(梅中楷)씨 등이 함께 했다. 유 참사관은 스스로 ‘북한산홀릭’이라고 할 정도로 북한산 구석구석을 꿰뚫고 있는 마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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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작 대만대표부 대사가 북한산 보현봉을 배경으로 활짝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대만대표부에서 북한산을 바라보면 보현봉의 웅장한 모습이 바로 보입니다. 항상 올라가서 바로 옆에서 보고 싶게 만들어요. 북한산엔 셀 수 없을 정도로 수없이 올랐습니다. 멀리 있는 산은 시간이 아까워 가기 힘듭니다. 차에서 보내는 몇 시간을 차라리 가까이 있는 산에 올라, 그 시간을 산에서 보내겠습니다.”

유 참사관과 함께 오른 이영성 서기관과 매중해씨는 이날 등산화 대신 운동화를 신고 산에 올랐다. 비가 오락가락했다. 내릴 땐 한바탕 퍼부을 정도로 내렸다. 자연 산이 미끄러웠다. 내려오는 길에 둘이서 하는 얘기가 “우리 동대문 가서 등산화를 살까?” “언제쯤 사러갈까?” 였다.

대만인들은 산과 어느 정도 가깝고 어떤 느낌을 가질까? 한국에서 비행기로 2시간 10분 거리에 있는 섬나라 대만은 남한의 경남북을 합친 면적보다 조금 큰 규모지만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은 별로 많지 않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산지가 전체 3분의 2정도 차지하고 있으며, 3,000m이상 되는 봉우리만 무려 100개에 달한다. 정확히 99개라고 한다. 낮은 산부터 높은 산까지 다양한 산이 첩첩산중으로 늘어서 있다. 그래서 대만엔 산과 비, 스쿠터가 많다. 이를 ‘대만 삼다(三多)’라고 한다. 구름이 산을 넘다 비를 뿌리는 현상은 대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섬나라인데다 산이 높고 많아 날씨가 쉽게 변하고 한번 비를 뿌리면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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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대사(오른쪽)와 유 참사관이 문수봉 아래 승가봉 위 봉우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좁은 지형에 많은 사람이 맞추어 살다 보니 자연 도로도 넓지 않을 수밖에 없다. 스쿠터가 도로교통수단으로 제격인 이유다.

“대만에는 산이 많아 산은 생활의 일부분입니다. 대만의 옛날 속담에 ‘처한 환경에 맞추어 생활한다’는 뜻의 고산흘산(靠山吃山) 고수흘수(靠水吃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산이 많은 곳에 사는 대만인들의 일상생활, 여가생활은 모두 산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생활 4년째 접어든 천 대사의 말이다.


천 대사의 이날 등산은 다른 날의 등산과 별반 다른 건 없었다. 단지 차이는 동행인이 몇 명 늘었다는 사실이다. 그 연세에 사람 몇 사람 같이 간다고 해서 부담 가질 것도 없었다. 오전 9시30분 구기동 공단 사무실 입구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대남문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의 내공이 조금 느껴졌다. 키에 비해 조금 큰 덩치는 산에 오르는데 조금은 부담을 줄 것 같았지만 발걸음이 전혀 무겁지 않았다. 발걸음 마다 뒤꿈치가 살짝살짝 올라갔다.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연세가 얼마나 되는냐”고 공보관에게 물었다. 비밀이란다. 대만에서는 상대방 나이를 잘 묻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당사자 나이를 표기하는 게 기사 관행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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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대사와 유명랑 참사관(바로 뒤)이 문수봉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천 대사는 말이 별로 없었다. 산만 묵묵히 오를 뿐이었다. 마른홍삼을 돌렸다. 감사히 받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산은 언제부터 다니기 시작하셨나요?”

“대만에는 산이 많아 학생일 때부터 산에 오르는 것이 생활의 일부였어요. 학교 다닐 때 인근에 있던 관음산은 높이가 660m에 불과했지만 바로 수직으로 깎아지른 듯 가파른 산이었기 때문에 무척 힘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 산을 오르내렸습니다. 그 산은 군인들의 유격훈련장소로 사용됐던 산이었어요.”

“한국과 대만의 산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아열대나 열대성 기후인 대만에서는 산들이 일년 내내 모두 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산도 높고 산세가 험해 오르기 쉽지 않습니다. 산에 가면 울창한 숲이 있지만 습하고 벌레도 많습니다. 반면 한국의 산은 사계절이 뚜렷하여 매 계절마다 그 경치가 다릅니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각각 그 특색을 분명히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한국의 산에 무척 만족하는 듯했다. 문수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불상에 합장도 했다. 문수봉 아래 승가사 위쪽 봉우리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다시 올랐다. 갑자기 후드득 비가 내렸다. 잠시 내리다 그치려니 했다. 우의를 꺼내 입기도, 그냥 가기도 애매한 비였다.

그 상황에서도 공보관인 유 참사관은 봉우리 여기저기를 대사와 함께 왔다갔다 했다. 문수봉 아래 승가봉 위쪽 봉우리 끝, 조망 좋은 곳까지 기어코 가서 사진 찍고 돌아왔다. 보통 산행객이라면 적당한 곳에서 밥 먹고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아 구경하다 내려갈 텐데, 대사와 참사관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북한산 봉우리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경치 좋은 곳에선 어김없이 ‘증명’을 남겼다. 산에 예사 성의가 아니었다.

문수봉 아래 승가봉 가는 방향 적당한 곳에 자리 잡아 각자 가져온 점심으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대남문으로 하산방향을 정했다. 본격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의를 꺼내 입었다. 대남문엔 비를 피해 온 등산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했다.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어 그칠 비가 아니었다. 그래도 하산해야지 어떡하나. 대사관저가 있는 평창동으로 내려가야 했다. 오후 3시에 천 대사 다른 일정이 있다고 했다. 그 전까지 도착해야 했다.


“한국에 대한 느낌은 어떻습니까?”

“대만은 아열대 기후로 무척 덥습니다. 이 날씨로 인해 대만인들은 평화롭고 여유로운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겨울은 매우 추워서 그런지 한국인들은 의지가 강하고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기질을 지닌 듯합니다. 민족의 기질은 날씨의 영향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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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봉 올라가는 중간 고갯길에서 휴식하고 있는 진 대사와 대만대표부 직원들.

“공자님의 <논어>에서 인자요산(仁者樂山)이고 지자요수(智者樂水)라고 했는데, 수영도 좋아하시는 대사님은 어디에 속하시는가요?”

“저는 인자(仁者)도 지자(智者)도 아닙니다. 단지 시간이 있을 때 운동 하는 것을 좋아할 뿐입니다. 특히 고향인 기륭(基隆)이 해안가라서 수영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산에 왜 가시며, 산이 주는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자연을 느끼기 위해서 산에 오릅니다. 꿋꿋이 인내하는 굳은 의지, 인간 세상사를 바라보는 변함없는 모습, 하늘을 떠받치고 땅에 우뚝 선 기백이 바로 산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대로 대만인들은 여유가 있어 그런지 진 대사는 우중에도 흔들림 없이 뚜벅뚜벅 하산했다. ‘북한산홀릭’ 유 참사관은 대사님을 모시는 동시에 동행인들 살피기에도 여념 없었다.

“대사님과 저의 나이을 합하면 120이예요. 120세에 이 정도면 잘 걷는 것 아닌가요?”

그제야 나이를 알아챘다. 120세에 그 정도 산행이면 A급수준 이었다. 특히 참사관의 산행실력은 수준급이었다. 날렵한 몸매에 발걸음도 가벼웠다. 참사관은 ‘북한산홀릭’일 뿐 아니라 한국에 13년이나 근무하고 있는 지한파 대만인이다.

평창동에 드디어 도착했다. 천 대사는 또 다른 일정을 지키기 위해 대사관저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얼굴엔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지만 묵묵한 듯하면서 웃는 모습은 동심을 느끼게 하는 그런 대사님과의 산행이었다.

사진=조선영상미디어 정정현 부장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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