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별곡의 삼척 관동대로…산과 바다 절경 즐기고 유적도 많아


‘익성공의 발자취 산모퉁이에 남아있고 / 울릉도 우산도는 눈 아래 펼쳐진다네 / 동해바다 아침 해 떠오르는 모습 보고자 하니 / 그대는 나와 같이 소공대에 꼭 오르자구나’

조선 중기의 문신 이정암(1541~1600년)이 삼척 소공대비(召公臺碑)에 올라 황희 정승을 기리며 울릉도를 바라보면서 지은 시다. 동해와 접한 영동지방은 예로부터 관동지역으로 불리며 아름다운 경치로 많은 시인들의 감흥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조선 선조 때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과 고려 말 안축의 <관동별곡>이 끝없이 펼쳐진 동해, 해돋이 풍경, 바다와 호수 및 빼어난 산의 경관 등을 읊은 대표적인 가사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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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관동대로 실제 출발지점이다.

이 아름다운 경관을 걸으면서 즐기는 관동대로길이 되살아나고 있다. 관동대로는 울진 평해에서 출발, 동해를 따라 올라와 대관령을 넘어 동대문까지 920리(약 370㎞)에 이르는 옛길을 말한다. 영남대로와 삼남대로는 몇몇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진 반면 관동대로는 아직 제대로 조사가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걷는 길 조성계획에 따라 지난 6월 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동해트레일을 역사문화생태탐방로로 지정했다. 이를 계기로 삼척의 웰컴투삼척추진협의회에서 관동대로 옛길 복원작업에 본격 나섰다. 연말까지 고포~용화리마을입구까지의 25㎞구간 완전개통을 목표로 현재 리본 달기와 이정표 만들기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들과 함께 현재 작업이 진행 중인 코스를 미리 답사했다.


첫 출발은 고포마을이다. 고포는 미역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이곳에서 나는 돌각미역은 특이한 향기와 달콤한 맛으로 한국 최상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때 그 맛이 궁중에 까지 알려져 진상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고포마을 중간을 가로지르는 복개천을 두고 양쪽이 행정구역상 강원도와 경상북도로 나눠져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한마을 두개 도(道)’이다. 복개천을 마주보고 있는 앞집에 전화하면 시외전화료를 물어야 한다. 주민 지원금도 다르다. 경북이 강원보다 조금 더 풍부하게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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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쌓아놓은 국시뎅이가 마을 어귀의 표시다.

왜 이런 희한한 일이 생겼을까? 울진은 원래 삼척에 속했지만 개념 없이 행정구역 분할하면서 생긴 때문이라고 웰컴투삼척 회원들이 말했다. 고포마을은 관동대로 옛길에 포함되지 않지만 역사적 의미와 재미있는 얘기꺼리가 있어 출발지점을 고포로 잡았다고 했다.

마을 옆 군부대를 지나 옛날 고갯길로 올라섰다. 가파른 길이다. 고개를 넘어서자 구 7번 국도가 나왔다. 지금은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이다. 길은 길을 만들고 옛길은 버린다. 인간이 만든 길의 법칙이다. 휴게소도 있지만 문을 닫은 지 이미 오래된 것 같다. 그 옆으로 웰컴투삼척 리본이 여기저기 매달린 숲길이 나 있다. 제초기로 정비한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있다.


여기서부터 삼척의 관동대로 옛길, 출발지점이다. 갈령재(치) 고개길이다. 숲으로 들어서니 벌써 향긋한 숲내음이 풍겨온다. 손님을 반기는 듯 까치 울음소리도 들린다. 상쾌한 기분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원덕기지국 탑이 나왔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만든 것이지만 조망을 해치는 결정적 대형구조물이다.

길 양 옆으로는 야생화와 산들국화가 만발해 있다. 조금 지나자 조망이 확 트였다. 동해바다가 발아래 펼쳐졌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산과 바다에서 동시에 가져다주는 바람이다. 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풍경은 가관이다. 다른 옛길에서 볼 수 없는 경관이다. 바로 관동대로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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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관동대로의 가장 큰 특징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바다와 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조그만 섬이 옛날 일출 장소로 자주 등장했던 그 섬이다.

동쪽으로는 바다, 서쪽으로는 백두대간 줄기가 첩첩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길을 걸어갈수록 길은 희미해졌다. 사라진 길을 흔적을 찾아 다시 살리고 있다. 그 대표적인 흔적이 돌담과 국시뎅이 돌탑이다. 국시뎅이는 옛날 사람들이 길을 다니면서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마을 입구나 언저리에 쌓아 두었던 돌무더기를 말한다. 새로운 길이 닦여도 국시뎅이와 같은 흔적을 완전히 없앨 수 없는 법이다. 국시뎅이 바로 옆으로 잡초를 제거하니 길이 자취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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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엔 천년은 족히 됐음직한노송에 다른 나무가 기생해서 자라고 있다.

다시 능선으로 접어들었다. 동해의 끝없는 수평선이 이어졌고, 바로 밑으로는 호산항과 해수욕장이 있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어디서 다시 볼 수 있겠는가. 한참을 바라봤다. 바다와 수평선, 그리고 하천과 섬을.

이젠 능선을 내려 마을에 도착하기 직전 마을 할머니 한분이 일을 하고 계셨다.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가까이 다가서자 “에구 놀래라, 왜 기척도 안하고 내려와요?”라며 말을 건넸다.

“옛길 따라 걷고 있는 중입니다. 할머니는 뭐 하세요?”

“일하고 있어요. 지난 여름부터 사람들이 길을 내느라 막 작업하고 그러던데. 조심하세요. 여기는 너구리도 나오고 그래요.”

“예, 알겠습니다. 할머니도 조심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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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천1리에 있는 보호수다.

월천1리 마을로 접어들었다. 월천은 예전부터 이름이 달내(月川)였다. 달이 뜨면 내에 비춰 잘 보이기 때문에 붙여졌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엔 더더욱 적막이 감돈다. 요즘 시골마을 풍경이다. 사람소리를 듣기 힘들다. 마을 앞으로 가곡천이 흐르고 있고, 그 위로 월천교 다리가 호산리를 연결하고 있다. 월천교를 뒤로 둔 마을회관 양 옆으로 300년과 500년 된 노송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나무둘레가 5m 가까이 되는 500년 노송은 보호수로 지정돼 삼척시의 관리를 받고 있었다.

새로운 7번국도, 낭만가도 겸 아시안하이웨이라고 명명한 도로가 구 7번국도 옆으로 쭉 뻗어 월천리를 통과하고 있다. 구 7번 국도는 이젠 옛길, 아니 사라지는 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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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들녘 그 자체다. 아름답다. 사진 김영훈 부장

들판은 벼들이 익어가는 황금들녘 이름 그대로다. 월천교 너머로 밤섬이 무덤덤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때 동해 밤섬 일출도 사진작가들의 포인트로 각광받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아시안하이웨이로 조망 자체가 방해받고 있다. 월천교 밑 가곡천엔 옛날 다리를 놓았던 나무 기둥 흔적이 남아 있다. 흔적은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는 역사가 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한낮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월천교 밑의 그 나무기둥은 초기 가곡천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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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소공대비 안내판.

산길을 내려온 관동대로는 이제부터 구 7번 국도를 따라가다 호산마을로 접어들어 뚝방길로 줄곧 간다. 다시 잠시 7번국도로 합류해서 주유소를 지나 미향가든에서 왼쪽으로 꺾어 길곡마을로 가야 한다. 아스팔트로 포장한 지 얼마 안 된 듯했다. 미향가든 맞은편엔 소공대비 가는 길이란 이정표가 크게 붙어 있다.

약 3㎞쯤 지나 길곡마을 중간 지점 오른쪽에 민가 1채만 달랑 나온다. 그 집 10m쯤 옆으로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포장된 길로 계속 올라가도 소공대비로 가는 길이 있으나, 그 길은 소공대비까지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여서 훨씬 지겹다. 웰컴투삼척에서 걷기 좋은 호젓한 산길을 찾아, 이 길을 관동대로로 하기로 했다. 실제로 어느 길이 옛날 관동대로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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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정승의 공적을 기린 삼척 소공대비.

산길로 접어들자 노송들이 저 멀리서 반기는 듯했다. 두 가지가 승리의 V자 모양을 한 소나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산과 바다에서 합창으로 부는 바람이다. 느낌도 다르다. 단순히 시원한 느낌이 아니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산에서 맞으니 상쾌한 기분까지 들었다. 마음마저 시원해졌다. 산길은 임도 비슷한 능선길로 계속 됐다.


이곳엔 키 큰 나무들이 없다. 자란 지 몇 년 안 된 고만고만한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다 2002년 삼척일대를 휩쓴 화마 때문이다. 당시 삼척 일대 산은 완전 초토화됐다고 한다. 산불 원인은 주민이 쓰레기를 태우다 옮긴 불을 진화 못해 발생했다고 한다. 결국 그 산불도 부주의가 부른 인재(人災)다. 가는 길 군데군데 타다만 나무더미를 아직 쌓아두고 있다. 안타까운 모습이다.


마침내 소공대비에 도착했다. 소공(召公)이 무슨 뜻이며, 이 비석이 왜 세워졌는지 궁금했다. 소공은 중국 주나라 시대 태평성대를 구가한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을 가리킨다. 후세엔 그 의미가 확대되어 왕을 도와 국가를 튼튼히 하고 백성을 편안히 살게 한 인물을 일반적으로 소공이라 칭한다. 한마디로 정치를 잘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황희(黃喜) 정승을 꼽는다. 황희 정승은 90세까지 생존하며 고려 말부터 조선왕조 문종시대까지 무려 60여 년 동안 6명의 임금을 섬기면서 우리 역사에서 이름난 재상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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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로는 용화해수욕장까지 계속 된다.

그런데 그 황희 정승을 기리는 비석이 왜 이곳에 있을까? 1423년 전국적으로 기근이 심하게 들어 백성들이 곳곳에서 굶어죽는 상황에서 강원도 관찰사로 파견된 황희는 가는 곳마다 정부 보관미를 풀고, 사재를 털어 백성을 구제했다. 삼척 지방에 특히 기근이 심했는데, 황희 관찰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삼척에는 아사자가 한명도 없었다. 이에 삼척 지방 사람들은 관찰사가 다니며 쉬었던 산중턱에다 돌로 탑을 쌓고, 그 이름을 역사상 가장 정치를 잘해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던 소공이라 취하여 소공대라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붕괴된 소공대를 1515년 강원도 관찰사가 재건하고, 1578년 삼척부사가 중건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소공대비는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선정비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위의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이 길 자체가 옛날 사람들이 다닌 옛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입증하고 있다. 소공대비는 황희 관찰사가 영동지방을 굽이 보살피라는 듯 사방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7호로 관리하고 있다.


황희의 선정을 상상하며 지금 그런 정치인이 나올 수 없을까 생각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임도는 계속된다. 임도 갈림길이다. 왼쪽은 백두대간으로 연결되는 길이라고 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조금 내려가니 구리터분한 냄새가 솔솔 풍겼다. 멧돼지 사육장이라고 했다. 멧돼지 사료가 여기저기 널렸고, 사체도 버려져 있었다. 웰컴투삼척 회원들은 이 구간을 어떻게 정리할 지 고민이라고 했다. 사유지라 뭐라 할 수도 없고, 단지 협조만 요청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멧돼지를 지키는 사나운 개들이 계속 짖어댔다. 빨리 지나쳤다.


다시 능선에 접어드니 눈앞에 마을이 나타났다. 사기촌마을이다. 마을까지 내려가는 능선길 양옆으로는 밤나무와 참나무들이 수 그루 있었다. 밤과 도토리들은 길에 그대로 널려 있었다. 줍기만 하면 됐다. 나무를 툭 건드리니 밤송이가 우두둑 떨어졌다. 걷는 재미에 먹는 재미까지 더했다. 다들 주머니에 한가득 담고 마을까지 내려왔다.


수백 년 됐음직한 노송 당산나무가 사기촌 마을을 지키는 듯 능선 끝 마을 입구에 떡하니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고, 바로 앞엔 서낭당이 있었다. 당산나무 가지 사이엔 산초나무와 개옻나무가 기생했다. 나무에서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이곳에도 사람은 없고 개 짖는 소리만 들렸다. 이 마을은 원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릇 만드는 동네였고, 작은 석불을 모신 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웰컴투삼척추진협의회 김억연 사무국장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석불이 있었으나 그 이후 누군가 가져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를 가로질러 임원천 발원지를 향해 올라갔다. 왼쪽으로 로즈벨리펜션이 그림 같이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옆으로 검봉산 자연휴양림 1㎞라는 이정표가 왼쪽으로 길을 가리켰다. 관동대로는 곧장 계속 가야한다. 하얀 별장들이 한 채씩 나왔다. 원체 오염되지 않은 계곡이라 사람들이 탐낼 만한 장소 같았다.


포장된 시멘트길을 따라 곧장 올라가다 끝지점에서 10m쯤 못 미쳐 오른쪽으로 빠지는 조그만 길이 보였다. 이젠 이번에 개통할 마지막 구간이다. 질퍽한 습지로 된 외길이다. 습지 옆으로 조그만 도랑 같은 개울에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렁찬 소리가 아닌 아기자기하며 귀에 쏙 들어오는 작은 소리였다. 질펀한 습지로 걸으며 아기자기한 물소리를 듣는 색다른 맛이다.


개울 바로 옆엔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하는가 보다. 강가에 버드나무, 습지에 버드나무 같이 물이 있는 곳엔 어김없이 버드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옆으로 흐르는 개울엔 탁족하기에도 그럴 듯했다. 잠시 더위를 식히며 탁족과 더불어 버드나무 숲을 즐겼다. 수십 년까지만 해도 이곳이 논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자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그냥 내버려둔 게 습지가 되고, 버드나무군락지가 됐다고 한다. 무한한 자연의 생명력을 보는 느낌이다.


버드나무 군락지 끝지점엔 시멘트로 포장한 임도가 나왔다. 길과 길의 부딪힘이다. 시멘트길은 버드나무 군락지를 앞에 두고 단절돼 있다. 산길은 시멘트길로 끝이 났고 곧 사라질 위기다. 몇 안 되는 주민들이 버드나무 군락지로 임도를 내달라고 민원을 올렸다고 한다. 사람도 길을 만들고 짐승도 길을 만들지만 유독 인간이 만든 길은 파괴와 단절을 너무 쉽게 한다. 짐승의 길은 자연 속에 스며들어 있다. 자연 속에 스며든 길은 언제든 다시 활용이 가능하다.


시멘트로 포장한 임도를 따라 불과 몇 미터 지나지 않아 아칠목재 고개 오른쪽으로 국시뎅이 돌탑이 어렴풋이 보였다. 원래 있던 길을 처참히 없애버린 현장이다. 인간이 만든 새길은 기존의 길을 파괴하는 속성을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길의 속성이 아니라 인간의 속성이다.

이곳이 연말까지 새 단장할 삼척 관동대로 마지막이다. 시멘트길로 닦여진 길을 따라 용화해수욕장까지 걸으며 인간이 지닌 파괴의 속성이 길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월천거사

    10.16,2009 at 11:50 오전

    우리고향의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스크랩 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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