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원 변호사의 삶과 산…“올라갔다 내려오는 등산은 인생과 같아”

사법시험 수석합격의 잘 나가던 강지원(姜智遠. 61) 검사가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쓰고 변호사 개업을 하려고 했다. 세상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솔깃했다. 그가 걸어온 화려한 이력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경기고(67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72년), 행정고시 합격(72년), 사법시험 수석 합격(76년)이 그가 기본적으로 거친 이력이다. 그런 그가 지난 2002년 검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으니.

“검사장 승진에 연연하지 않고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89년 신설된 서울보호관찰소장을 맡으며 시작한 청소년 문제가 내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내 아들이 검사라는 자부심으로 평생 살아오신 노모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사표가 조금 늦어졌을 뿐이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사표의 변이다.

7년이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향해 매섭게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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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변호사가 자신의 사무실 주변 정원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청소년 일을 하면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사실 검사는 내 적성에 조금 맞지 않았다. 범법 행위로 검거된 청소년에게 사사건건 의심을 품고 취조하고 문초하듯 상대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오죽하면 훔쳤을까’하고 이해가 먼저 되더라. 이들도 ‘나의 어린 시절과 똑 같은 애들이며, 잠시 실수로 이 자리에 있을 뿐이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들이 바른 길을 갈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모든 청소년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급기야 이 일을 내 필생의 과업으로 정했다.”

그가 변호사 개업하고 시작한 첫 작업이 97년 국무총리실 산하 초대 청소년보호위원장 시절 했었던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바로 청소년 성매수자의 신상공개였다. 청소년보호위원장의 임기는 4년이었고, 2000년 7월 그의 각고의 노력 끝에 이 법이 시행됐다. 최근에는 발찌까지 채우도록 법이 강화됐다.

“청소년 절반이 여성이다. 이들은 남자와 또 다른 고통을 안고 산다. 바로 우리 사회의 몰지각한 남성들의 이른바 ‘영계’선호 때문이다. 이전까지 윤락방지법은 업주만 징역 5년 이하의 처벌을 받는 솜방망이법이였다. 구속되더라도 집행유예로 나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업주는 박살내고, 고객은 망신주고, 여성에겐 관용을 베풀어 기회를 주는 게 나의 기본 의도였다.”

그 덕분에 미성년 성매매뿐 아니라 매춘에 대한 사회 전반적 인식을 크게 바꿔놓았다. 전업하는 업주와 종사자들은 크게 늘었고, 업소는 눈에 띄게 줄었다.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성매매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동서고금 어느 사회에서나 성매매가 존재한 사실을 보면 신(神)도 근절시킬 수 없었던 ‘필요악’이리라.


이들 청소년들을 어떻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인 적성에 맞는 교육과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까에 대해 나름대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청소년 교육의 핵심은 하고 싶은 것 하게 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일류학교를 나와 고시 합격해서 검사생활을 한 게 바른 선택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과연 나의 적성에 맞는 선택이었나, 전형적 출세 욕구에 휩싸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미래 사회의 주역인 청소년들에게 과연 나와 같이 살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자녀들의 적성을 찾기 위해선 우선 다양한 체험을 시켜야 한다. 자녀가 ‘왠지 마음에 든다’거나 재미있어 하면 그게 바로 적성이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그는 전국의 2,000여개 고교를 전부 특목고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축구고, 골프고, 수학고, 과학고, BT고, 신문고, 방송고, 미술고, 조각고, 애미메이션고 등으로 세분화해야 한다고 했다. 중학교 과정을 적성 탐색교육으로 전환하고, 고교 땐 적성맞춤 교육을 시키면 결국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모든 청소년의 엘리트화 교육이다.

이 교육체제가 과연 가능할까? 그도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모든 부모들이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국가적 낭비를 초래하는 그런 사회보다는 훨씬 효율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재주가 다르고, 다른 개성을 타고났는데, 조기교육이란 명목으로 아동학대를 자행하고, 선행교육이란 이름으로 청소년 학대를 강요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는 바른 적성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우선 그의 자녀들부터 대안학교에 입학시켰다. 분당에 도시형 대안학교 ‘이우’를 세워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우(以友)는 ‘친구와 함께, 친구로서’ 교육을 받는다는 의미다. 획일적, 하향적 교육이 아닌, 수평적, 다양성 있는 교육을 시킨다. 그녀의 딸들에게 대학가라, 공부하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다.

9월

부인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체질이 됐다.

강지원 변호사와 그의 부인인 김영란 대법관. 유사 이래 첫 여성 대법관이다. 슬하의 딸 둘을 전부 대안학교로 보내기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듯 결정내리고, 그들의 운명을 그들 스스로에게 맡겼다. 그의 지론대로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했다. 알아서 잘할 때까지 부모들이 기다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도 법조계엔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영화와 미디어아트 쪽을 선택했다. 미국으로 유학 가서 열심히 경쟁력 있게 공부하고 있다. 부부는 한번씩 말한다. “우리 딸들은 누구 유전자를 닮았는지 궁금하다”고.

그는 지난 9월부터 한동안 자제했던 방송을 재개했다. 그와 같이 인생의 방향을 잘못(?) 선택한, 그러나 뒤늦게 자신의 일을 찾아 훌륭히 해내는 명사들을 찾아 인터뷰를 한다. 예를 들면 공대를 졸업하고 등반가가 되었다 던지, 한의사가 돼 돈을 많이 벌었지만 어릴 적 공학도가 되고 싶었던 꿈을 못 버려 KAIST에 500억원을 기부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 이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 교육환경의 문제점 등을 짚어내 사회적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잘못된 출세주의를 고치고, 청소년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키고 싶은 그의 희망 일환이다.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노력으로 그는 ‘청소년 지킴이’ ‘청소년 수호천사’ ‘청소년 대부’ 등으로 불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장애인을 위해서도 몸을 아끼지 않아 여성인권 변호사, 장애인의 대부 등으로도 불린다. 그가 현재 맡고 있는 직책만 해도 어린이청소년포럼 이사장, 청소년잡지 <큰바위 얼굴> 창간 발행인, 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 이사장, 장애인 재활을 위한 푸르메재단 공동대표 등이다. 정치엔 관심 없지만 국가발전을 위해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공약 남발을 막아야겠다는 차원에서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상임대표도 맡고 있다. 바른 사회와 정의가 선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그의 작업이다.

누군가 그를 두고 말했다. “강지원 변호사는 청소년 사업이 본업이고, 방송은 부업, 변호사는 생업”이라고

그의 늦깎이 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 여성, 장애인을 위해 무수히 많은 일을 했지만 빠진 게 하나 있다. 바로 우리 사회에 곧 다가올 ‘고령사회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와 개인으로서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그는 언론에 처음 구상을 밝힌다고 했다.

“인생엔 사주가 있다. 연, 월, 일, 시 각각에 20년의 세월이면 총 80년이다. 사주에 따른 인생은 80년인데, 왜 60년을 한 갑자로 했을까? 60세 이후의 삶은 남은 시간으로 인생을 돌아보라는 의미다. 내가 살아오면서 고통을 주고 상처를 준 사람이 없는가 돌아보며 반성과 후회와 참회의 시간을 가지며, 인생을 마감하라는 것이다. 이 삶이 바로 봉사의 삶이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자식들 취직하면 생활비 받아라. 돈을 받는다는 차원보다 효와 사랑을 가르친다고 여겨라. 60세 이후의 삶은 정리하며 감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식들에게 모범적 모습을 보여라. 이게 바로 노년의 사회적 역할 모델(Role Model)이다."

청소년을 위하면서 노년을 생각하는 사회 실천가의 소박한 꿈이지만 제대로 실천만 된다면 많은 사회문제가 해결된 훨씬 더 나은 사회가 될 것이다. 사회의 중요한 양축인 청소년에겐 최적의 적성을 찾아주고, 노년들에겐 봉사의 삶을 제공해주는 장이 마련된 사회, 그 사회를 위해 강지원 변호사 같은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계속되는 한 실현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성 싶다.

그도 산에 열심히 다닌다. 대학 1학년 땐 산악부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했다. 검사 시절 구설수에 오르는 게 싫어 골프와는 아예 담쌓았다. 틈만 나면 산을 찾았다. 한국의 웬만한 산은 다 가봤다. 지리산 종주를 서너 차례 했을 정도다. 요즘은 산에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빠서 못 가고 있다. 그래도 집 주변의 작은 산을 쉽게 찾기 위해 분당에서 화성으로 이사했다.

몇 년 전 산에 열심히 다닌 흔적을 공단을 통해서 들었다. 공단에서 노고단 돌탑을 해체하면서 주춧돌에 강지원 검사 이름이 새겨져 있어 “해체하게 되어 확인 전화 드린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돌탑을 언제 쌓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였지만 검사시절 열심히 산을 찾은 흔적이었다.

산은 그에게 있어 인생의 한 과정이다. 오르고 내려오는 그 과정이 바로 인생의 순환과 닮았기 때문이다. 굴곡을 겪지만 60세까지는 오르며 내려올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사주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머지 20년은 내려오는 시기다. 산도 마찬가지로 오르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내려오는 시간은 짧다. 그는 오르고 내려오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긴다. 하루의 일과도 일종의 인생의 한 단면이다. 출근길이 인생의 등산길이고 퇴근길이 하산길이다. 오르고 내려오는 과정을 즐긴다는 의미는 인생을 즐긴다는 의미와 맥이 통한다. ‘하고 싶은 것 재미있게 하는’ 그의 즐거운 인생은, 등산길은 오늘도 계속된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5 Comments

  1. 전수남

    10.21,2009 at 6:59 오후

    이나라의 젊은이를 사랑하고 약자의 편에서 일하고 대안학교에 보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실천가. 마음이 부자인 강변호사 내외분께 박수를 보냅니다.   

  2. 이기영

    10.21,2009 at 7:34 오후

    강지원 이 사람 보면 부인이 급발진 사고를 내었을 때 현대자동차 에쿠스 얼른 바꿔 주니 넙죽 받았다는 기사가 생각나네   

  3. 별가람

    10.21,2009 at 11:41 오후

    姜智遠 변호사님, 훌륭하십니다. 미래의 주역이 될 어린이나 청소년 문제에 관심 가져주는 어른들이 가장 고마우신 분들입니다. 姜智遠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그 마음 변치 마시고 힘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4. 로만

    10.22,2009 at 3:21 오후

    진정한 민의를 아시는 분 입니다. ^(^*   

  5. 좋은날

    10.23,2009 at 6:55 오전

    지정한 어른이 없는 이 나라에서 어른노릇과 자격을 쌓은 몇 안되는
    사람중에 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신이 아닙니다.

    사람냄새를 풍기시며 이 사회를 밝게 비춰주십니다.

    나란 누구이며 사회에 무엇을 기여하며 살아가는지
    스스로 자문하여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이 혼탁하고 어지러운 사회를 지켜가시는
    등대지기 강변호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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