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이 육산일까, 악산일까… 무등산옛길 걸으며 느껴보자

무등산이 육산(肉山, 흙산)일까, 악산(嶽山, 바위산)일까? 정상 부근에 있는 주상절리, 즉 입석대와 서석대 만으로 볼 때는 전형적인 악산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철쭉과 억새가 군락을 이룬 육산의 모습을 띠고 있다. 광주시민들은 무등산을 ‘광주․전남의 진산이며, 포근하고 후덕한 어머니의 산’이라고 부른다. 도심 배후에서 도시를 감싸 안고 있으며, 동서남북 어디에서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모나지 않아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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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옛길 첫 출발부터 건강한숲이 이어졌다.

광주시민들은 또한 도심 10㎞ 아내에 해발 1,000m 이상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산이라고 자랑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그 세계적인 산에 옛길이 조성됐다. 이른바 ‘무등산 옛길’이다.

무등산이 간직한 수 천 년의 역사를 길에서 이야기로 녹여내고 있다. 구간 구간마다 광주의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를 모두 담아내고 있다. 길의 흔적이 곧 인간의 역사이고, 그 역사를 길 따라 스토리텔링으로 다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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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개가 바로 잣고개이고,고개 위로 오르면 무진고성이 나온다.

무등산옛길은 현재도 작업 중이지만 일단 2구간까지 개통했다. 1구간은 산수동5거리에서 충장사~원효사에 이르는 총 7.75㎞를 지난 5월 중순에, 2구간은 원효사~제철유적지~서석대까지 4.12㎞를 10월10일 일반에 첫선을 보였다. 총 연장거리가 11.87㎞다. 이 거리는 무등산의 높이를 상징한다. 무등산 높이가 해발 1,187m이다. 3구간은 연말까지 가사문학과 광주의 문화를 볼 수 있는 길을 담아 개통할 예정이다. 환벽당~소세원~식영정~명옥헌에 이르는 15㎞코스다. 3구간까지 개통되면 모든 광주의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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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고개와 무진고성.

1구간 출발지점은 산수동5거리다. 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택가 바로 옆이다. 무등산으로 가는 좁은 골목길 앞에 ‘무등산옛길 입구’라고 적힌 커다란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다. 수지사 입구 비석도 같이 있다.

무등산 문화관광해설사 이애심(53)씨를 만나 동행했다. 이 씨는 5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매일 무등산을 오르내리며 단련된 건각을 자랑했다. 본인도 무등산에 오른 지 20년이 지났으며 “산에서 다람쥐같이 날랐다”고 했다. 군살 하나 없는 날렵한 체격에 발걸음도 사뿐사뿐했다. 뿐만 아니라 문화관광해설사에 숲해설가, 일어통역사 등 다양한 지식도 지녀 동행 내내 쉼 없는 정보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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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고성 동문터.

출발한 지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나무 쪼는 소리가 “따따따따~”하고 울렸다. 딱따구리였다. ‘야, 도심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렇게 선명한 딱따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굉장히 건강한 생태를 지닌 산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이 아니고 몇 번 계속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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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쉼터에 있는 방랑시인 김삿갓 시비와 비석.

이애심씨는 “광주 사람들의 무등산 사랑은 유별나, 시에서 무등산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며 “무등산 보존단체만 광주에 50여개나 된다”고 했다. 한마디로 무등산이 훼손된다면 ‘벌떼’같이 일어나 반대운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이 정도 건강한 생태가 보존되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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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옛길은 녹색터널이라고 불릴 정도로 숲으로 우거져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소걸음길’이란 푯말이 나왔다. 출발지점부터 제4 수원지가 있는 청암교까지 황소걸음길이라 했다. ‘소에게 길을 물으며 황소걸음으로 걸읍시다’라고 안내하고 있다. ‘걷는다’는 자체가 명상과 사색을 하는 느림의 철학이고, 경쟁보다는 공존을, 수직의 정복보다는 수평의 평화와 안정을 꾀하는 가치를 말한다. 그렇게 걷는 길을 또 대표적으로 천천히 걷는 ‘황소’에 비유했으니, 이 길은 아예 서 있는 듯 걸으라는 것 같다. 이씨는 “싸목싸목 오감을 열고 주변을 살피며 걷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싸목싸목’은 ‘천천히’의 광주 사투리다. 싸목싸목 걸으려니 갈 길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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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구간 종점을 알리는 안내표지판.

이 길을 통해 옛날 담양과 화순 동복 사람들이 잣고개를 넘어 광주 양동시장과 대인시장으로 황소를 팔러 다녔다. 시장으로 갈 때는 소와 같이 천천히 걸었지만 돌아올 때는 소 대신 두둑한 봇짐을 메고 왔을 것이다. 그리고 거나하게 한잔 걸쳤음 직하다. 그 옛날 선조들의 모습이 상상 속에 그려졌다. 그대로 집에 도착했으면 얼마나 좋았으련만. 대부분의 사람은 무사히 돌아갔겠지만 간혹 불행한 사건도 발생했다. 이 길이 황소길인 동시에 두둑한 봇짐을 노리는 산적들이 우글거린 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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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10일 개통식을 가진 2구간 안내판.

마침 황소바위가 길 중앙에 있었다. 사람들이 오고가면서 쉬던 바위다. 산적은 방심한 사람을 최우선으로 노린다. 쉬는 순간이 바로 그 때다. 서로 어떤 심정이었을까? 잠시 바위에 앉았다. 상상의 나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났다. 그 시간여행은 과거 산적과 서민과 황소와 황소걸음을 얘기하며 사람들에게 새로 태어나 길을 통해 연결시키고 있었다. 길이 곧 역사라는 사실로.

무등산옛길은 말 그대로 옛길이다. 사람이 조성했지만 옛길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무등산옛길’이란 이정표에도 ‘옛길에서는 쇠지팡이가 필요 없습니다. 선조들의 길에 상처를 주는 스틱사용을 자제합시다’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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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간 개통하기 직전의 모습이다.

이제는 조금 가파른 계단길이다. 바로 옆엔 지붕부터 벽까지 전체가 온통 파란색을 띤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있었다. 여자 무당이 신내림을 받는 굿당이라고 했다. 커다란 초가 놓여 있고 여기저기 줄도 걸려 있다.

계단길을 올라 끝을 밟으니 무진고성(武珍古城) 잣고개다. 옛날 이곳에 잣나무가 많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고, 또 까치가 많이 날아온다고 해서 작고개(鵲峙 작치)로도 불렀다. 일제시대 때 한자어로 척현(尺峴)이라고 쓰고 잣고개라 했다고 한다. 잣나무가 많으면 자연 까치가 많을 법하다. 잣고개에 바로 무진고성이 길게 뻗어 있다. 모르는 사람은 ‘웬 무진고성?’이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 무진은 바로 광주의 옛지명이다. 따라서 무진고성은 현대적으로 한다면 광주산성쯤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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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됐던 길이 무등산옛길을 개방하면서 다닐 수 있게 됐다.

무진고성에 올라서면 도심을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있지만 옛길은 무진고성 아래로 이어진다. 신라 말에 축성하여 고려시대까지 사용한 고성도 과거 역사만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무진고성 동문터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다.

바로 옆에 놓인 무등로 신작로는 옛길을 단절시킨 주범이다. 하긴 길이 무슨 죄가 있으랴. 기존 길을 작살내고 새 길을 만든 인간의 행위가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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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철유적지가 나온다.

무등로 신작로 옆으로 겨우 한 사람 다닐 만한 숲속 길로 무등산옛길을 연결시켰다. 차길 바로 옆엔 소음이 심해 그 위로 또 다른 길을 새로 냈다. 아빠의 길과 엄마의 길로 명명했다.

차도 옆엔 ‘달리는 차보다 걷는 우리가 편합니다’라는 푯말이 있다. 인간의 입장에선 말이 안 될지 몰라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는 충분히 납득이 가는 표현이다. 황소걸음길이 끝나갈 즈음 아빠와 엄마의 길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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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유적지에 대한 설명.

제4 수원지, 일명 석곡 수원지를 건너는 청암교에 다다랐다. 연인의 길․약속의 다리(Promise Bridge)라고 적힌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연인들끼리 손을 맞잡고 청암교를 걸으며, 사랑을 맹세하고 서로의 열쇠를 다리 철조망에 걸어놓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길’이란 설명이다.

청암교를 지나자마자 바로 청풍쉼터다. 주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소공원으로 꾸며놓았다. 비석은 어디서 본 듯한 시가 적혀 있다. 바로 김삿갓 시비다. 전국을 방랑한 김삿갓 시인이 무등산 주변을 떠돌다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시비 주변엔 옛길을 보도한 수십 개의 신문을 스크랩해서 일목요연하게 걸어놓았다. 무등산옛길이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끌기는 끌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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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간 이용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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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부근엔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다시 숲길이다. 이 길은 김삿갓길이다. 김삿갓이 화순 적벽가는 길에 경유한 유서깊은 길이라고 한다. 옛날 김삿갓이 지나던 길을 지금 그 사실을 떠올리며 밟고 있다. 길은 시공을 초월해서 역사를 연결시켜준다. 이 길이 아니면 언제 다시 김삿갓이 지나던 길을 만나며, 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나. 역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그 대화를 가능케 하는 매개체가 바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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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군락지도 엄청난 규모로 자리잡고 있다.

무등산의 숲은 생태적으로 건강했다. 관목과 교목이 균형을 잘 이루고 있었고, 소나무는 숲 천이과정을 보이는지 드문드문했고 참나무가 우점종을 보였다. 오리나무, 서어나무, 노간주나무 등도 군데군데 자리 잡고 영토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 중 나무 한그루가 눈에 확 들어왔다. 서어나무 연리목이었다. 다른 뿌리에서 자란 줄기가 중간에 가로 가지 하나로 연결돼 다시 자라고 있었다. 연리목은 기본적으로 공존이다. 그 공존의 모습을 나무들은 심심찮게 보여주고 있다.

길은 계속된다. 멧돼지 흔적도 보이고,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도 다시 들렸다. 지나간 여름이 아쉬워서인지 매미 울음은 왠지 구슬펐다. 다람쥐 우는 소리도 들렸다. 다람쥐도 소리 내 우는 사실을 동행한 이애심씨를 통해 처음 알았다. 텃새인 수까치 울음도 더했다. 나무와 새들의 천국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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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제465호인 서석대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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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제465호인 서석대.

무등산옛길은 사유지가 70%이상이라고 했다. ‘길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애심씨는 “무등산 사랑이 극성일 정도인 광주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의 집에 도착했다. 20년 전에 1천여 평을 사서 자리 잡은 이철우씨가 주인공이다. 무등산옛길보존회 회장을 맡고 있다. 사유지를 주차장까지 제공했다. 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쉬다가 다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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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제465호인 입석대.

한참 숲속 길을 걷다가 충장사를 밑으로 보며 무등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충장사~원효사까지는 다시 ‘숲속의 길’이다. 자연숲속을 걸으며 내면의 자아를 찾아 명상을 하며 걷는 길이라고 해서 이름 붙였다.

호젓한 길에서도 등산객을 심심찮게 만났다. 평일임에도 이용객이 많았다. 친구와 오빠, 셋이서 왔다는 광주에 사는 주부 조소심씨는 “무등산옛길은 설레고 편한 길”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했다. 그녀는 허리가 아파 등산을 하지 않았으나 옛길은 전혀 무리를 주지 않고 걷기에도 편하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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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석대.

숲속길과 관망지역인 원효봉너덜겅에 이를 때까지 무등산옛길은 완전한 녹색터널이다. 숲으로 뒤덮인 길이다. 마침내 원효사 일주문 앞을 지나 무등산공원관리사무소에 도착했다. 1구간 끝 지점이다. 점심 먹느라 조금 지체해서인지 꼬박 4시간 이상 걸렸다. 1구간은 전형적인 수평지향적인 걷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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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 서석대, 입석대에 대한 출입통제안내.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이젠 정상이 있는 서석대를 향해 출발이다. 이 길은 원래 통제구간이었다. 군부대가 있어 군인들과 묘지 관리인, 일부 나무꾼들만 출입이 허용되던 길이었다. 자연은 사람 출입이 없으면 건강한 생태가 보존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원효계곡의 물소리, 건강한 생태숲에서 보내는 바람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등으로 자연에 홀려서 걸어라는 뜻으로 ‘무아지경길’로 명명했다. 관리사무소는 이곳의 생태를 지속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오전 9시30분, 11시, 오후 2시 등 하루 3차례만 입장을 허용하기로 했다. 상행만 허용하고 하산은 다른 코스로 유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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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입석대에 대한 설명.

정말 무아지경으로 빠질 만한지 한번 가보자. 관리사무소 바로 뒤로 나있는 오솔길로 올랐다. 울창한 편백나무 숲이다. 삼림욕하기 적격이다. 숨을 깊이 들이켰다. 상쾌한 기분이다. 숲은 계속 이어졌다. ‘무등산옛길은 녹색터널’ 말 그대로다.

제철유적지가 나왔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김덕영 장군이 이곳에서 무기를 만들어 왜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원효계곡이 바로 옆으로 흘러 물소리 때문에 제철제련과 가공 소리를 감출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계곡이 말라 물은 별로 흐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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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과 어울린 억새.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참 건강한 숲이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관목과 교목이 층층을 이뤄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었다. 우점종인 참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는 지천에 늘렸다. 다람쥐는 수시로 모습을 드러내 먹이를 날랐다.

묘지는 간혹 보였다. 그렇다, 옛길은 산자와 죽은 자가 공유하는 길이다. 묘지가 없었으면 산자가 여기까지 올 일이 없었을 터이다. 이 길은 또한 수송부대가 떠나기 전까지 군인들이 짐을 지고 오르던 길이기도 했다. 샛길로, 계곡 지류로 난 도랑길을 따라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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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수송부대가 있던 자리가 나왔다. 주변 석축은 그대로였다. 고무타이어만 없어진 쇠바퀴, 이음새고리, 쇠파이프, 드럼통 등 부대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군부대는 떠난 지 40년이 된다고 했다.

녹색터널에서 갑자기 하늘이 훤하게 가까워 진듯했다. 조금 밝아지더니 하늘이 확 트였다. 2구간 출발이후 처음 보는 하늘이다. 그만큼 숲으로 뒤덮인 길이다. 억새가 부끄러운 듯 조금씩 모습을 보이더니 군사작전도로에 접하자 좌우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아래쪽 중봉 가는 길은 수천 평이 억새 군락이다. 군사작전도로는 까만 머리를 마치 바리깡으로 한번 죽 민 듯한 민망한 모습, 그 자체였다.

이젠 수정병풍, 빛고을의 유래가 되는 서석대까지 500m 남았다. 군사작전도로에서 서석대 가는 길은 돌계단길이다. 개인별 보폭에 맞게 크고 작은 돌로 계단을 만들어 이용자들을 편리하게 했다. 옛길의 배려다.

드디어 서석대(1,100m)에 도착했다. 천연기념물 제465호다. ‘무등산 정상 서쪽에 위치한 서석대는 수정병풍처럼 둘러 처져 상서로운 빛을 머금고 광주의 상징으로 우뚝 서 있다. 이는 한반도 육지에서는 보기 드문 주상절리대로서…’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비가 오면 실제로 반짝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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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주상절리에 대한 설명.

몇 발짝 옮기니 ‘무등산 옛길 종점, 옛 선조들이 올랐던 옛길 정상입니다. 11.87㎞ 전 구간 완주를 축하합니다.’라고 적힌 이정표가 반긴다. 안내 번호는 40번이다. 300m마다 조그만 안내기둥 한 개씩 놓았다. 1~26번까지가 1구간이고 27번부터 40번까지 2구간이다.

정상에서는 광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에는 월출산과 내장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안개인지 스모그인지 요즘은 희미한 날이 잦다. 이 날도 그런 날이다. 바로 옆에는 정상으로 접근 금지 차단막이 세워져 있다. 군 기지가 아직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산길은 옛길과는 상관없이 어차피 내려와야 하기에 입석대를 거쳐 군사작전도로로 걸었다. 광주 서구 금호동에 산다는 고병섭씨 부부를 만났다. 92년부터 무등산만 4,000번 이상 올랐다고 했다. 고씨는 “무등산옛길은 참 잘 만들었다. 1구간은 전형적으로 걷는 길로서 별로 재미가 없다”고 하자, 그의 부인은 옆에서 “나한테는 딱 맞는 길이여”라고 받아쳤다. 고씨의 말은 계속 됐다. “반면 2구간은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아주 인상적인 코스다. 지금까지 증산사지구로 많이 올랐는데, 앞으로는 이 길을 자주 이용할 것 같다.”

그와 그의 부인 말이 무등산옛길 1구간과 2구간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것 같다. 무등산옛길은 트레킹과 등산을 적절히 배합한 길이었고, 3구간은 역사, 문화탐방의 길로 연말까지 태어날 예정이다. 그 길이 역사를 말할 것이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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