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생, 올해 우리 나이 67세인 한국산악회 최홍건 회장이 한국산악연수원 등산학교 종합과정에 입학해서 주말 1박2일을 6주 동안 암벽등반 등 각종 훈련을 무사히 마쳤다.
인수봉에 암벽등반으로 올라 본 사람은 익히 알겠지만 경험이 없는 사람은 백운대 옆에 우뚝 솟은 인수봉 암벽의 기세만 보더라도 기가 죽을 판이다. 인수봉높이는 해발 810m에 불과하지만 암벽으로 오르는 높이는 200m가 훨씬 넘는다. 200m 넘는 수직에 가까운 직벽을 밧줄 하나에만 의지해 올라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암벽에 있는 조그만 흠이란 흠은 전부 손으로 잡는 홀드가 되고 발로 밟는 디딤돌이 된다. 순간순간 굉장한 힘이 들게 마련이다. 한 발짝 옮기는 데에만 수십 초 걸리기 일쑤다. 발을 헛디디면 아찔한 순간이 닥친다.
최홍건 회장이 인수봉 암벽을 이를 악물고 오르고 있다. 바로 아래 변유근 부회장이 확보를 보고 있다. 전문 암벽꾼들이야 정상까지 거침없이 올라가지만 초보자들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최홍건 회장은 오전 7시 30분에 출발해서 오후 1시가 다 돼서야 정상에 도착했다. 5시간 이상을 꼬박 온몸에 힘을 소진했다. “4년 만에 올라보니 역시 좋습니다. 힘들긴 하지만 고생 끝에 오는 카타르시스 같은 이 맛을 보기 위해 암벽 하는 것 아니겠어요.” 정상에서 전혀 의외의 말을 했다. ‘몇 십 년 만에 처음 올라 긴장했지만 너무 감격스러웠다’라는 정도의 말을 기대했지만 불과 4년 만에 인수봉에 다시 오른 것이었다.
오봉 야영장에서 밤을 보낸 최 회장이 아침밥을 하기 위해 분주하다.
사실 최홍건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산악부 생활을 경험했다. 경복중 2년 때부터 산악부에 들어 산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경복고에 입학해서도 3년간 산악부 생활을 했다. 61년 경복고 졸업 후 서울대 문리대에 입학해서도, 법대에 다시 입학해서도 산악부 생활을 했다. 학창시절이 온통 산악부였다. 사회생활하면서도 워낙 산을 훤히 꿰뚫고 있어 경복고 총동문산악회 산행대장을 역임했을 정도였다. 당시 최 회장은 상공부, 특허청 국장으로 있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산을 좋아했다. 상공부 국장과 산행대장, 뭔가 조금은 어울리지 않은 듯하지만 워낙 겸손했고 스스럼없기에 가능했다. 이후 특허청장에 산자부 차관, 장관급인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산악연수원 등산학교 수강생들과 암벽꾼들이 일제히 인수봉 암벽을 오르고 있다.
그런 그가 67세의 고령에 등산학교에 입학했다. 왜 그랬을까?
“요즘은 평생교육시대입니다. 70세 가까이 되어도 다시 배울 수 있다는 건 굉장히 기쁘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 배운 게 얼마나 변했고, 바뀌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재교육이 필요한거죠. 일종의 평생교육과 재교육 차원에서 입학한 겁니다. 또 내가 입학함으로써 회장단 분위기를 일신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도 생각했습니다. ‘회장이 입학했는데 임원들도 솔선수범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죠. 그리고 한국산악회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내가 조금이라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사명감도 작용했죠.”
최홍건 회장과 변유근 부회장이 인수봉 오르는 중간에 강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기확보를 하고 있다.
지난 8월 19일 입교식을 가진 데 이어 22일 토요일부터 주말 1박2일 교육에 들어갔다. 역시 최고령자는 최홍건 회장이었다. 최연소자는 86년생, 무려 44년 차이다. 거의 손자뻘이다. 많은 나이 차이가 어색하고 서먹할 수 있지만 최 회장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교육 중 시범 보일 사람이 필요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갑자기 최 홍건이 회장이 일어서더니 “할 사람 없으면 내가 할께”하고 나섰다.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재미있게 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 스타일이었다.
인수봉 암벽 중간 쉼터(일명 오아시스)에서 최 회장과 변 부회장이 잠시 쉬고 있다.
입교식 날 최 회장뿐 아니라 한국산악회 몇몇 임원들이 뜻밖에 눈에 띄었다. 김윤종 부회장, 변유근 부회장, 배종화 인천지부장 겸 이사 등도 자리를 함께 했다. 김윤종 부회장은 45년생, 변유근 부회장과 배종화 이사는 49년생이다. 최연소자와 비교하면 역시 손자뻘 수준이다.
최 회장, 변 부회장, 김윤종 부회장(왼쪽부터)이 인수봉 정상에서 백운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아니 어떻게 임원들께서 이렇게 교육받으실 생각을 하셨나요?”
“젊은 사람들 감각과 기술을 익혀 언제 생길지 모르는 해외등반 기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등산학교 교육은 꼭 배워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게 한국산악회 임원으로서 자세죠. 앞으로 해외등반 경험도 점차 쌓아나갈 것입니다.” -김윤종 부회장
“에베레스트 한국 초등 정찰대로 다녀오는 등 과거 산악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사업하느라 조금 뜸해진 등반경험을 다시 쌓을 좋은 기회로 보고 입학했어요. 과거 산에 다닐 때보다 장비도 좋아졌고, 그 장비의 사용법을 익혀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변유근 부회장
“한국산악회 이사회 중에 최 회장이 ‘배종화 이사도 이번에 등산학교 입학한다고 들었는데, 같이 한번 잘 해봅시다’라고 말해 얼떨결에 입학했죠. 처음 1~2주는 하기 싫은 마음도 있었지만 점차 지나면서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각오를 다져 6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무척 보람 있는 교육이었어요.” -배종화 이사
드디어 8월 22일 첫째 주 교육이 시작됐다. 배낭꾸리기, 보행법, 텐트설치 등 등산기초에 대한 교육과 매듭법, 등반자세 등에 대한 암벽등반기술 이론 강좌를 듣고 비박을 하고 다음날 도봉산 두꺼비 바위에서 암벽실습훈련을 했다.
2주와 3주차에서도 암벽훈련과 실습을 병행한 뒤 4주차엔 도봉산 오봉 리지등반에 나섰다. 다섯 개의 봉우리를 하나씩 아슬아슬하게 오를 때마다 모두들 성취감을 맛보는 듯했다. 특히 최홍건 회장은 40년 만에 오봉 등정이라며 감격해했다.
“옛날 같이 오르던 친구 동료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어요. ‘그 친구들이 지금 어디 있을까’라는 감상에 잠시 젖기도 했어요. 어느 친구는 이민 갔고, 또 다른 친구는 이미 세상을 달리했고…. 70년 가까운 세월의 단상들이 흘연히 떠올랐죠.”
아마 40년 만에 맛본 감격에 겨워 40여년 만에 떠올리는 친구들 모습일 것 같았다.
도봉산 오봉 중 3봉에서 하강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D조원과 강사들.
5주차, 마침내 인수봉 등반이다. 인수야영장에서 밤을 보낸 뒤 새벽 5시에 부랴부랴 일어나 밤을 먹고 인수봉을 향해 출발했다. 오전 7시 조금 넘어 암벽등반 출발지점에 도착했다. 각 조마다 코스가 달랐다. 고독길, 낭만길 등등. 최 회장과 김윤종 부회장, 변유근 부회장, 배종화 이사가 속한 D조는 인수봉 B코스로 오르기 시작했다. 시각은 오전 7시 30분이었다.
올려다보니 정상이 까마득했다. ‘어떻게 오를까’ 싶었지만 출발은 순조로운 듯했다. 앞으로만 걸어봤지 수직 가까운 직벽을 걸어본 적이 없어 거리 가늠이 전혀 안됐다. 몇 십 미터쯤 지나자 오버행(190도 이상을 휘어진 암벽) 구간이 나왔다. 최 회장은 발 디딜 곳이 없어 이리저리 몇 번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거기서 한참을 보냈다.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밑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은 위로 쳐다보고 있자니 고개가 아파왔다. 밑으로 한번 훌쩍 쳐다봤다. 순간 아찔했다. 겁이 나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나 아래를 내려보는 순간 ‘차라리 위로 올라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봉산 오봉 정상에서 최 회장이 속한 D조 수강생과 강사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최 회장은 강사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올랐다. 변유근 부회장과 배종화 이사는 과거 ‘한가닥’ 했던 등반실력으로 무리 없이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김윤종 회장이 나섰다.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오버행 구간에서 김 부회장이 떨어진 것이다. 다행히 밧줄로 단단히 확보해둔 터라 지장은 전혀 없었다. 다시 시도해서 올라왔다.
시계는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요일 인수봉 암벽에 무슨 사람이 이렇게나 많담. 마치 고목나무에 매미떼가 붙은 것처럼 하얀 암벽에 까만 사람들이 여기저기 밧줄에 매달려 있었다. 정해진 코스로 올라가다보니 정체가 극심했다. 발 디딜 틈도 제대로 없는 좁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니 힘이 더욱 들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 같았다. 김윤종 부회장은 쉬는 곳마다 긴장한 탓인지 계속 하품을 했다.
암벽 사이 좁은 공간이 있으면 소나무가 강인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역시 소나무다. 소나무가 내리쬐는 햇빛을 가려주었다. 소나무가 있는 곳마다 잠시 휴식을 취했다. 시계는 1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출발한 지 5시간이 다 돼갔다. 힘도 거의 다 떨어진 듯했다.
마지막 오아시스 구간까지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기어올랐다. 이곳엔 잔돌이 많았다. 암벽에서 돌이 구르면 후등자에게 치명적이다. 거의 살인무기 수준이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암벽에서 편하게 쉴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상이 바로 머리 위에 있었다. 이곳부터 정상까지는 조금 조심하면 밧줄 없이도 올라갈 만했다. 마침내 정상이다. 오후 1시가 조금 못된 시각이었다. 성취감은 엄청났지만 온몸이 말이 아니었다. 발목과 발가락, 손등, 손바닥, 허리 등 정말 몸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인수봉 정상 조망은 역시 확 트여 있었다. 북쪽으로 백운대, 서쪽으로 만장봉가 바로 옆에서 잡힐 것 같았다. 이들 세 봉우리로 인해 북한산을 삼각산이라고 부른 사실을 실감했다.
최 회장은 이미 인수봉 정상 바위 밑에서 자리 잡아 쉬고 있었다.
“역시 암벽은 힘을 소진한 뒤에 오는 상쾌한 맛을 보기 위해 타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못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선등할 수 있는 후배들과 가끔 암벽을 탔죠. 오늘 해보니 근육이 노쇠한 걸 절실히 느끼겠어요. 힘이 부쳐요.”
그래도 ‘그 연세에 인수봉 암벽으로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마지막 6주차 교육만 남았다. 6주차는 도봉산 만장대와 선인봉으로 암벽실습이다. 최홍건 회장은 급한 일이 생겨 불참했고, 김윤종 부회장, 변유근 부회장, 배종화 이사 등은 전 주의 경험을 살려 가볍게 만장대 낭만길로 올라 하산했다.
“어떤 교육이든지 마치고 나면 시원섭섭하면서 뿌듯함을 느끼기 마련이죠. 이번 등산학교 등반교육은 더욱 보람 있었고 알찬 내용이었어요. 기회 되면 한 번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하”
최홍건 회장을 비롯한 등산학교를 수료한 한국산악회 임원진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마디로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밤과꿈
11.15,2009 at 11:33 오후
최회장님께서 그 연세에 인수봉엘 오르신 건
대단한 용기와 근력이십니다~
더우기 등산학교라는 덴 잘못하면 일명 원산폭격도 시키는데…ㅋㅋ
근데 오르신 코스가 어떻게 되는지요?
맨 첫 번째 사진 설명에서 변부회장님이 확보를 보신다는 건 잘못인듯합니다.
선등자가 이미 오른 상태이기 때문에 후등자는 선등자가 확보를 봐주는 게 맞습니다.
만일 회장님이 선등을 하셨다면 당연히 후등자가 아래에서
확보를 보는 것이기에 말씀드렸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