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 산행을 통해 완전해 질수 있다는 아름다운 소망을 항상 갖게 해주시고, 내년에도 아름다운 미소를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
청계산 자락에 울리는 밀알천사산악회 남기철(南基喆, 57)씨의 기도문이다. 남기철씨가 발달장애아를 데리고 산행을 시작한 지 벌써 15년째. 그동안 토요일마다 한번도 빠진 적 없다. 눈이 내리거나, 비가 오거나 흐르는 눈물을 감싸며 뜨거운 부정(父情)으로 혼자서 산행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심정이다.
매주 청계산에서 발달장애아를 데리고 산행하는 밀월천사산악회 회원들이 천사들과 함께 했다.
밀알천사산악회는 지난 1995년 용산고 동기동창모임에서 남기철씨가 둘째 아들 범선(당시 14세)군을 데리고 참석한 게 출범 계기가 됐다. 남씨는 당시 자페증세를 보인 범선이를 ‘세상 밖으로’ 내놓기 위해 친구들에게 데리고 간 것이다. 갇혀만 지낸 범선이에게는 세상구경을 시키고, 나아가 조금이라도 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우고, 일반인들에게는 장애아들도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당시 동창회에 참석한 동기 정용민, 김만승, 이준명, 최성문씨 등이 범선이의 심신단련을 위해 앞으로 주말산행에 기꺼이 동참키로 약속했다. 바로 그 다음주 7월24일 하남 검단산에서 범선이를 포함 발달장애아 3명과 남기철씨와 동참키로 약속한 4명 등 총 8명이 산행을 시작했다.
청계산 자락에서 짝궁들과 기도를 올리고 있는 밀알천사산악회 회월들.
남기철씨는 이들의 심신수련과 사회적응을 위한 차원도 있었지만 장애아 어머니들을 하루라도 편히 쉬게 해주고 싶은 배려도 크게 작용했다. 아버지들이야 직장에 서 하루 종일 일 하다 집에 들어오면 되지만 어머니들은 집에서 하루 종일 옆에서 수발들어야 하는 고충을 하루라도 덜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발달장애아 증세가 심한 아이들은 대소변을 못 가릴 뿐 아니라 무슨 일을 저지를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수차례 산행 후 이동거리 등을 감안해 검단산에서 가까운 청계산으로 옮기기로 했다. 남씨는 동시에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들에게 밀알천사산악회 토요산행을 널리 알렸다. 소문을 듣고 천사들이 한두 명씩 모였다. 이들은 발달장애아를 천사라 부르고, 보호하는 봉사자를 짝궁이라 부른다. 1999년엔 천사 5명이 합류했다. 남씨가 다니던 남서울은혜교회 집사와 장로들도 짝궁으로 자원했다. 남서울은혜교회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 천사들도 산행에 합류하며 인원이 대거 불어났다. 2000년엔 남서울은혜교회에서 이들의 사회적응훈련도 병행했다.
백두산 천지에서 범진(왼쪽에서 두 번째)씨와 남기철씨 부부(맨 오른쪽)가 함께 했다.
남들 시선을 의식해 밖에 내보이기 싫었던 애들을 겨우 용기를 내어 산행에 동참시킨 부모들은 초기엔 웃지 못 할 사연, 가슴 아픈 사연도 참 많이 겪었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장애아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볼일을 보면 “왜 이런 얘를 산에 데리고 왔느냐”고 핀잔을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그냥 아픈 가슴을 쓸며 지나가야 했다.
청계산 입구에서는 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동냥구하는 모습을 본 애들이 목탁소리가 좋았는지 목탁을 들고 달아나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이후부터 애들만 오면 잘 있던 스님이 슬그머니 자리를 뜨기도 했다.
발달장애아 부모들은 남기철씨에게 너무나 고맙다. 하루라도 바람 잘 날 없던 상태에서 하루라도 편히 쉴 수 있게 됐으니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준환이 엄마가 지난여름 그 감사한 마음을 글로 대신했다.
‘안녕하세요? 준환 엄마입니다. 무더운 여름에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함께 산행에 동행해주시는 짝궁 아저씨들께 감사하는 마음에 준환이의 일기 한편 올립니다. 모든 짝궁 아저씨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힘내세요!! 그리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남기철씨는 청계산에서 쉴 때마다 애들이 어디로 사라질까 항상 출석 체크하고 있다.
준환이가 적은 일기다.
‘제목: 청계산 등산과 짝궁아저씨, 나는 토요일마다 짝궁아저씨와 함께 청계산 등산을 한다, 내 짝궁 아저씨는 남기철 집사님 후배이신 정양기 아저씨다. 나와 아저씨는 만난지 5년 반 정도 된 것 같다. 매주 토요일 1시40분에 대왕중학교 앞에서 노란 미니버스를 타고 교회 다른 밀알천사들과 짝궁 아저씨들과 함께 청계산 입구까지 간다. 나는 내 짝궁인 정양기 아저씨를 무척 좋아한다. 아저씨는 나를 많이 사랑해 주시고 나와 함께 등산하는 것을 즐거워하신다. 내가 가끔 산에서 큰일을 볼 때도 어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쁜 맘으로 뒤처리를 도와주신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를 만나면 끌어안고 사랑을 표현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저씨에게 자주 업히곤 했었는데 지금은 아저씨보다 훌쩍 커버려서 내가 아저씨를 업어드리기도 한다. 오늘도 아저씨와 나는 등산을 하다가 엄마가 싸주신 쑥개떡과 찰떡, 수박, 방울토마토, 그리고 오이를 맛있게 먹고 즐겁게 놀았다, 토요일마다 한결같이 함께 해 주시는 아저씨!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엄마는 나를 통해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하셨다. 나는 엄마 말씀대로 정말 축복의 통로인가 보다.’
산행으로 애들은 조금씩 좋아졌다. 그러나 부모들은 알고 있다. 완치가 없다는 사실을. 세상 어디에도 완치 사례가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다. 그냥 아픈 가슴을 안고 희망의 끈은 버리지 않으며 계속 산행할 뿐이다. 아니 세상 밖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짝궁과 천사의 모습이다.
지난 7월 18일은 하늘이 뚫린 듯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천사산행도 당연히 취소했다. 그래도 혹시나 산행하고 싶은 짝궁은 수서역에서 만나자고 남기철씨가 휴대폰 메시지를 띄웠다. 그 폭우 속에 몇몇 짝궁이 모였다. 그중 남기철씨 1년 후배가 아들 현근이를 데리고 나왔다. 나이는 24세, 외면만 보면 완전한 성인이다. 덩치도 매우 크다. 그런데 항상 손을 뒤로 묶고 다닌다. 원체 힘이 세고, 무슨 행동을 할지 몰라서 그런다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 빗속에 현근이를 데리고 왔냐”고 물었다. 지난주 현근이가 유난히 엄마를 힘들게 해서 정말 하루라도 엄마를 쉬게 해주고 싶어 나왔다고 했다. 남씨는 그 심정이 백분 이해가 됐다.
재근이가 사진을 찍느라 포즈를 취했다.
이들을 데리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대모산을 지나 구룡산을 거쳐 양재동까지 산행했다. 젖지 않은 데가 한군데도 없을 정도로 온몸이 젖었다. 산을 내려와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갔다. 자리에 앉은 현근이는 두 손을 의자 뒤에 묶은 채 음식을 먹여달라고 했다. 남기철씨와는 처음 식사자리였다. 남씨가 바로 화를 냈다. 굶기더라도 절대 먹여주지 말라고. 남씨가 현근이 옆자리로 옮겼다. 먹여달라고 떼쓰는 현근이를 외면하는 현근이 아빠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차라리 주변의 시선 때문에, 창피함 때문에 그냥 그렇게 먹여주며 쉽게 넘어갔는데….
지난 봄 철쭉 필 무렵 청계산에서 짝궁과 천사가 함께. 이들은 내년에도 계속 된다.
현근이는 식당 밖에까지 나가서 먹여달라고 소란을 피웠지만 남씨한테 엄청 혼이 나서야 결국 자기 고집을 꺾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것도 허겁지겁, 허기에 지쳐 순식간에 그릇을 비워버렸다. 다시 현근이 아빠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게 장애아를 가진 아빠의 마음이다.
그날 남기철씨도 마음이 편치 않아 현근이 부자를 보낸 후 혼자서 어두컴컴한 대모산을 다시 올라 한바퀴를 돌았다. 아픈 가슴을 안고 하늘의 위로를 받으러.
그 가슴 아픈 사연을 글로 전했다.
‘너는 나를 잘 모를지 모르지만, 나는 너를 너무도 잘 안단다. 너의 앉고 일어섬을 알고, 너의 모든 행위를 알고, 너의 머리털을 다 셀 정도지. 이는 내 형상대로 너를 만들었기 때문이지. 너는 항상 내 안에서 살며 기동하고 있느니라. 너는 나의 소생이니까. (중략) 너는 나의 자녀이고, 나는 너의 아비니라. 육신의 아비가 줄 수 없는 것을 주리니, 나는 온전한 아비니라. 이 사랑을 너에게 아낌없이 주련다.’
가슴 메어지는 아버지의 사연이다.
형근(오른쪽에서 두 번째)이가 청계산에서 짝궁들과 함께.
다행히 남기철씨의 둘째 아들 범선이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14세 소년 시절 첫 산행에 나선 이후 이제는 어느덧 청년 범선(28)씨가 됐다. 산에 가더라도 엉뚱한 길로 가지 않고 가던 길로 잘 간다. 백두산 트레킹까지 갔다 왔다. 트레킹 대장이었던 윤치술씨가 범선이를 최우수대원으로 상까지 내렸다. 몇 년 전부터는 색소폰도 배워 사람들에게 들려줄 정도가 됐다. 완치는 안 될 지라도 뚜렷한 호전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근이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처음 산행할 때 올라가지도 못하고, 올라가서도 어디로 튀었는지 한참을 찾아다니고 했는데, 요즘은 짝궁따라 곧잘 다닌다. 산에서는 요즘도 손을 뒤에 묶고 다닌다. 언제쯤 손을 풀고 자유스럽게 다닐 날이 올까, 기대해보자.
‘사랑의 바이러스’가 번져서 그런지 직장산악회에서 밀알천사산악회에 봉사하고 싶다는 연락이 가끔 온다. 정기적으로 봉사하는 단체는 없지만 은행산악회, 출판사산악회, 3040산악회 등 몇몇 산악회에서 헌신하고 돌아간다.
남기철씨는 산행이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애들에게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산행 다닌 후 애들의 집중력이 몰라보게 좋아지고 있어요. 길을 모르던 애들도 차츰 익숙해져 요즘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는 없어요. 산행하면서 위험한 상황을 판단할 능력까지도 길러지는 것 같아요. 이전엔 행동을 마구 했지만 산에서 위험한 상황에서는 조심할 줄도 알게 됐어요. 문제는 이들의 자립기반을 마련해주고 싶지만 여러 법적 문제로 원활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초기엔 비용은 거의 대부분 남기철씨 혼자서 부담했지만 요즘은 부모들이 십시일반 모아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자립기반도 남씨 혼자 관공서 찾아다니며 동분서주 하고 있지만 해결이 잘 안되고 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매주 천사의 짝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공인회계사 김희상씨는 매주 하루를 너무 보람차게 보내고 있다고 뿌듯해 했다.
“매주 토요일은 머리를 포맷하는 날입니다. 일주일간 쌓였던 스트레스, 잡념 등 모든 생각들을 이 애들과 함께 산행하며 머리를 확 비우고 갑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왔다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죠. 이렇게 정상적인 몸을 받아 생활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 생각을 들게 해준 이 애들에게 너무 감사하죠. 매주 한번씩 포맷해가는 머리 덕분에 항상 새로운 일주일을 시작합니다. 여러모로 감사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애들을 도우는 봉사가 너무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들 봉사에 중독된 사람들 같아 보였다.
2010년 내년에도 밀알천사산악회의 새로운 산행은 게속 된다. 남기철씨는 산에서 또 이들을 위한 기도를 올릴 것이다.
‘올해도 산행은 시작됐습니다. 올해도 우리 모임을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산행을 통해 우리 천사들이 나날이 좋아지게 하시고, 그 부모님들 영육 간에 강건해지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