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전체가 국가 지정 명승 제12호로 지정(2003년 10월 31일)된 마이산(馬耳山)은 서로 등지고 있는 기이한 모습의 두 봉우리가 마치 부부 같이 우뚝 솟아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신비감을 자아내고 눈길을 끈다. 우뚝 솟은 두 봉우리는 흡사 말의 귀와 같은 모습이어서 마이산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남쪽 멀리서 본 마이산. 왼쪽 우뚝 솟은 봉우리가 숫마이봉이고, 마주보는 조금은 완만한 봉우리가 암마이봉이다.
마이산은 흙이 전혀 없이 수성암(水成岩)석으로만 되어 있어 바다의 융기로 보이는 전형적인 지형이다. 마이산으로 인해 한반도도 수십 만 년 전에 바다에서 융기된 지형으로 추정한다.
마이봉의 벽면을 보면 바다에서 융기한 수성암 지형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치 자갈과 모래로 다져진 지형같다.
마이산은 시대별로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신라시대 때는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엔 용출산(聳出山), 조선 초기에는 속금산(束金山)이라 불리다가 조선 태종 때부터 말의 귀를 닮았다 해서 마이산으로 불리고 있다. 또한 계절별로도 돛대봉, 용각봉, 마이봉, 문필봉 등으로 구전되어 온다.
숫마이봉의 웅장한 모습이다.
보통의 산들은 몇 개의 행정구역에 걸쳐 있지만 유독 마이산은 완전히 진안군에만 소속되어 있어, 진안군에게는 보물 같은 산이다. 진안군의 한 개 군에만 속해 있지만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중요한 기점이 되는 산이기도 하다.
마이산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본 마이산. 구름이 잔뜩 낀 마이산과 저수지에 비친 마이산이 더욱 신비롭게 보인다.
동쪽 숫마이봉은 해발 667m이고, 서쪽 암마이봉은 673m이다. 숫마이봉과 암마이봉은 가까이서 그 형상을 보면 암수를 구별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숫마이봉은 남성과 같이 우뚝 솟아 장쾌한 남성미를 엿볼 수 있고, 암마이봉은 아담한 여성미를 느낄 수 있다. 지금은 두 곳도 올라갈 수 없다.
서쪽 암마이봉 벽면에 이끼 같은 나무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다. 그 아래엔 마이산 석탑이 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암마이봉은 옆으로 나사같은 등산로를 만들어 우회전해서 올라갔지만 위 험해서 지금은 폐쇄했다. 숫마이봉은 솟은 봉우리가 원체 뾰쪽하고 자갈덩어리같은 암석이라 암벽꾼들도 올라가기는 위험한 코스로 완전 폐쇄되어 있다.
숫마이봉 중턱에 화암굴이라는 갈라진 틈이 있는 데, 그 안에서 샘물이 솟아난다. 이것도 낙석이 잦아 지금은 접근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20m쯤 멀리서 화암굴이라는 안내판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성계가 심은 나무로 전해지는 은수사 청실배나무. 천년기념물 제386호.
청실배나무에 대한 안내판.
바위산이지만 천연기념물 제380호인 줄사철나무 등 희귀관목들이 군데군데 자라며, 산 주변에는 은수사, 금당사, 탑사 등 유서깊은 절들이 여기저기 있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전설을 간직한 은수사의 청실배나무도 천연기념물 제386호로 지정된 희귀종이다. 청실배나무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 이곳을 찾아 기도를 올리고, 그 증표로서 씨앗을 심은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수령 약 700년쯤 된 나무로 추정할 수 있다.
마이산의 희귀 관목인 천연기념물 제380호인 줄사철나무.
천연기념물 제380호인 줄사철나무에 대한 설명.
산 남쪽 계곡에는 개울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가에 벚꽃나무가 줄지어 있어, 봄이면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이갑룡 처사가 1900년 전후해서 쌓은 마이산 석탑들. 마이산의 주요 관광명소로 꼽힌다.
산 중턱에 있는 마이산 석탑은 1885년에 입산하여 솔잎 등으로 생식하며 수도한 이갑룡 처사가 30여 년 동안 쌓아올렸다. 축석 당시에는 모두 120여기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약 80여기 남아 있다. 이 돌탑 주변으로 대웅전, 산신각, 미륵불, 요사채 등도 복원돼 있어, 마이산 도립공원의 주요 관광명소로 꼽힌다.
쥬니
10.30,2010 at 8:30 오후
25일날 마이산갔다 늦어서 중간에서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구경잘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