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하면 딱 떠오르는 게 뭐냐?’고 대구시에서 대구 시민과 일부 외지인들을 대상으로 몇 년 전 설문조사를 했다. 1위가 갓바위, 2위가 팔공산, 3위가 팔공산순환로 순으로 나왔다. 팔공산 갓바위야 기도처로 원체 유명한 곳이며, 매일 전국에서 기도하기 위해 찾는 사람들로 성시를 이룬다.
강화도의 마니산뿐만 아니라 대구의 팔공산 정상 비로봉에서도 매년 개천절을 기념하는 제천행사가 열린다. 사진 조선일보DB
대구의 2번째 명소인 팔공산은 원래 공산(公山)으로 불리었다. <세종지리지> 대구군편에 ‘공산은 해안현 북쪽 11리 거리에 있다. 신라 때에 부악(父嶽)이라 일컫고, 중악(中嶽)에 비겨 중사(中祀)로 삼았는데, 지금은 수령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이와 같이 신라시대엔 제천단을 두어 국태민안을 기원하던 전통이 이어져, 아직까지 개천절에 제사를 지내는 유서 깊은 산이다.
중앙에 통신탑이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가 팔공산 정상 비로봉이고, 왼쪽이 서봉(삼성봉), 오른쪽이 동봉(미타봉)이다. 이어 좌우 능선으로 봉우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공산이 팔공산이라고 바뀐 유래는 몇 가지가 전한다. 왕건의 여덟 명의 장군이 순사했다는 설과 동화사에 팔간자를 모셨다는 설, 군위․경산 등 여덟 고을에 걸쳐 있기 때문이라는 설, 중국의 팔공산에서 따왔다는 설, 원효가 중국승려 8명을 득도시켰다는 설, 3명의 성인과 5명의 깨우친 자가 났다는 설 등이 있다.
팔공산 남쪽 기슭에 있는 동화사 대웅전. 봉황을 상징하는 봉서루와 바위로 만든 봉황알이 있다.
팔공산은 현재 대구와 경북 경산시, 영천시, 칠곡군, 군위군 등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도립공원이다. 신라시대엔 부악․중악으로 불렸으며, 고려시대엔 공산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 지금의 팔공산이란 지명을 갖게 됐다. 신라시대엔 경주에서 대구로 도읍을 옮기기 위한 일부 시도도 있었음을 역사기록엔 전한다. 경주의 남산 대신 팔공산이 신라의 진산이 될 뻔한 순간이기도 했다.
팔공산 동봉에서 바라본 산세.
해발 1192m의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봉인 미타봉, 서봉인 삼성봉이 어깨를 나란히 비로봉을 감싸고 있다. 이어 동쪽으로는 미타봉을 이어 염불봉, 병풍바위, 신령재, 바른재, 능성재(느패재), 은해봉, 노적봉, 관봉 등이 길게 늘어서 있고, 서쪽으로는 삼성봉에 이어 톱날바위, 마당재, 파계봉, 파계재 등이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갓바위가 있는 관봉 바로 아래에서 팔공산 정상 비로봉까지 등산로가 연결돼 있다.
팔공산은 우리나라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불교와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동아시아의 10대 관광지로 선정된 동화사도 팔공산 자락에 있다. 어떤 기준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동화사는 그렇게 홍보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팔공산은 본사를 두개나 간직하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조계종 25교구본사 중 9교구 본사가 동화사이고, 10교구 본사가 은해사다.
팔공산에는 전국의 어느 산보다 유달리 산 곳곳에 절이 많이 있다.
팔공산에는 천재시인 매월당 김시습(1435~1493)과 퇴계 이황(1501~1570) 등 여러 시대를 걸쳐 대표적인 시인묵객들이 산에 올라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산이다. 향토출신 사가 서거정(1420~1488)도 팔공산 자락에 은거하며 많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