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봄이다. 완연히 햇볕의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꽃샘추위가 봄을 시샘하는 계절이다. 가는 겨울이 못내 아쉬운 듯 트집을 잡고 있는 듯하다. 자고로 입춘과 경칩(3월 5일)을 지나면 얼음 위를 걷지 말라고 했다. 지표면에 보이는 얼음은 한겨울에 본 그 얼음이지만 얼음 밑에서는 대지를 서서히 녹이는 따뜻한 기운으로 얼음이 얇아져 자칫 차가운 물속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활짝 핀 산수유꽃이 마을을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사진 구례산수유축제위원회 제공
봄을 찾으러 남녘의 땅으로 내려간다. 가는 길에 ‘봄은 어디서부터 올까’ 궁금해진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남녘의 땅에서부터 오는지 사방을 한 번 둘러본다. 아직 봄의 기운은 아스라할 뿐이다.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봄이 오는 소리와 길, 그리고 봄이 오는 속도와 형상을 찾아보자.
물 위에 비친 산수유꽃이 강물까지도 노랗게 물들이는 듯하다.
우선 산으로 들로 한번 나가보라. 계곡의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릴 것이다. 귀를 쫑긋 세워 들어보자. 그 물소리는 살을 에는 듯한 한겨울의 그 물소리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가만히 들어보면 물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물소리는 얼음을 녹이고 대지를 녹이고 겨울의 기운을 녹인다. 이것이 바로 봄의 소리다. 겨울의 기운을 녹이는 봄의 소리에 새들도 하늘을 누비며 더욱 부지런히 지저귄다. 대지와 창공에서 볼 수 있는 봄의 소리이고, 봄의 형상들이다.
산수유꽃을 구경하기 위한 방문객이 구례 산수유꽃담길을 일제히 걷고 있다.
남녘의 따스한 바람은 나무에 새순을 맺게 하고 꽃잎을 벌리게 한다. 꽃이 먼저 피는 나무들은 남녘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을 기다리며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한다. 봄꽃을 피우는 시기는 2월말~3월초. 광양의 매화부터 시작한다.
북상하는 꽃의 속도는 하루 평균 22㎞. 가을 단풍의 하루 평균 남하속도인 25㎞와 비슷하다. 자연의 속도는 궤를 같이 한다. 사람이 산에서 천천히 걷는 속도인 시속 1㎞와도 같은 맥락이다. 원래 자연과 인간은 둘이 아닌가보다.
물방울을 머금고 있는 산수유꽃.
남녘의 땅, 광양의 매화는 아직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 섬진강 황어가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이어 구례 산수유마을의 산수유까지 꽃망울을 터트린다. 축제도 광양 매화축제에 이어 산수유축제가 일주일 간격을 두고 연이어 열린다. 매화의 은은함과 산수유의 화려함으로 남녘의 봄은 본격 시작된다. 산수유꽃으로 온통 노란색으로 변하는 산수유축제의 고장, 구례 산동면 산수유마을을 미리 찾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 단위로방문한 방문객들이 산수유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산수유, 한자로는 山茱萸라고 한다. 산에서 나는 나무의 열매와 풀로 해석이 가능하다. 나무인데 풀 萸(유)자를 쓰는 이유는 아마 나무 가지를 약초로 사용하기 때문이지 싶다. 나무 가지는 약초로 쓰고, 빨간 열매는 식용과 약용으로 두루 사용된다. 버릴 게 없는 나무인 셈이다.
산수유나무는 한때 ‘대학나무’라고도 불렸다. 산수유나무를 키워 나무껍질과 가지는 한약재로, 씨앗은 버리고 열매는 신장기능과 정력보강에 효능이 있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부모들은 부지런히 산수유를 키워 자식들 교육시키느라 온몸, 아니 일생을 바쳤다. 그래서 산수유나무를 효자나무, 대학나무라고 불린 것이다.
올해 산수유 꽃축제는 구례 산동면 일대에서 봄이 오는 길목인 3월 23일부터 열린다. 산동의 산수유는 국내 생산량의 73%, 국내 수확면적의 84%를 차지할 정도로 넓고 많다. 3월 말이 되면 산동면 일대는 산수유꽃으로 온통 노란색 천지로 변한다.
산수유마을엔 산수유꽃담길이라는 이정표가 곳곳에 세워져 길을 가리키고 있다.
잎이 피기 전 꽃을 먼저 피우는 산수유는 돌틈과 바위, 마을 어귀, 산등성이 등 자리 잡을 만한 곳이면 어디든 뿌리를 내리고 있다. 현재 산수유마을로 알려진 상위마을 주변에는 100년이 훨씬 넘는 산수유가 2만여 그루나 된다. 특히 산수유마을은 섬진강 매화마을을 연계한 봄꽃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어, 봄이면 상춘객이 끊이질 않는다. 상위마을 외에도 산수유 군락을 이루는 마을로는 하위마을, 대평마을, 상관마을, 사포마을, 현천마을 등이 있다. 산동면 관광단지 일대에 3만5천여 주의 산수유가 식재돼 있어 국내 최대 군락을 자랑한다.
<산수유 유래와 꽃담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