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5대 작전으로 빛나는 ‘도솔산 전투’… ‘무적 해병’의 유래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1년 전, 1951년 6월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 양구 도솔산(1148m) 지역. 빗발치는 총소리와 대포소리는 천지를 뒤흔드는 듯했고, 다른 어떤 소리는 아예 들리지 않았다. 적막감과 격렬함이 교차했다.

며칠 전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에서 미국 해병대는 똑 같은 장소에서 인민군과 중공군의 강력한 저항에 밀려 패퇴한 상태였다. 미군은 해병 1사단 제5 연대를 투입시켜 강력한 항공 및 포병화력의 엄호 하에 공격을 개시했으나 막대한 인명피해만 입고 성공하지 못하자 국군 해병 제1연대와 임무교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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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전적 문화제 행사에서 당시 불꽃 티는 전투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사진 양구군청 제공

전략적 요충지 격파 임무를 맡은 국군은 일순 긴장감이 흘렀다. 다들 전의는 넘쳤지만 도솔산의 요새 같은 암벽지역에 진지를 구축한 인민군과 중공군에 계속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던 아군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귀신 잡는 해병대가 아닌가. 긴장감과 중압감은 “우리 해병대가 아니면 누가 할 것인가”라고 결의를 다지며 작전 결행날짜를 기다렸다.


공격 목표는 24개. 적은 도솔산 24개 고지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24개 목표 중 가장 공격하기 어려운 4목표와 9목표, 13목표를 각각 1대대와 2대대, 3대대가 타격대상으로 정했다. 이른바 삼중 동시포격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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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정상 주변은 항상 짙은 안개와 세찬 바람이 불어 5월 중순에서야 진달래가 핀다. 양구군축제위원회 정승완 국장의 안내로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마침내 ‘D데이’, 날이 밝았다. 일제히 “돌격, 앞으로”를 외쳤다. 6월 4일 아침 8시 국군 해병대 제1연대장 김대식 대령의 지휘아래 도솔산지구 공격을 감행했다. 암석으로 형성된 공격목표들은 하나같이 견고하여 각 대대의 공격은 첫날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암석지대에 숨어있는 적병들은 강력한 공용화기의 지원 하에 방망이 수류탄을 던지는 전술로 아군의 공격을 저지했고, 짙은 골안개와 번번이 내리는 비도 작전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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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지역은 온통 진지와 벙커로 연결돼 있다. 방공호로 연결된 길로 올라가고 있다.

도솔산 일대는 해안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해발 1148m의 험준한 산악지대로 고지가 중첩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연중 기상기후가 계속되는 지대이다. 특히 여름에는 안개가 짙게 내려 지근거리도 분간키 어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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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전투 위령비 입구 양쪽으로 솟대에 세워 해병의 용맹함을 새겨놓고 있다.

그러나 이 일대를 적에게 넘길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평지처럼 넓은 천연적인 해안분지는 작전수행을 위한 병력과 물자 집결의 전술적 요충지였으며, 나아가 휴전회담에서 대두될 군사분계선의 위치선정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군사 전략지여서 피차간 반드시 확보해야할 지역이었다. 더욱이 양구와 인제에서 북상하는 도로를 끼고 있어 이 지구를 확보하지 못하면 좌우로 인접한 우군의 전선은 한 걸음도 진출하지 못하게 되고, 나아가 적에게 포위당할 우려도 적지 않았다. 또한 이곳에서 패하면 춘천까지 순식간에 밀릴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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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정상에 있는 도솔산 전적비.

작전을 개시한지 일주일째 되던 6월 10일 8시. 긴급 지휘관회의에서 그동안 전개했던 주간작전을 야간작전으로 전환하여 목표 고지들을 공격하기로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야간공격은 주로 중공군이나 인민군들의 전법이었으나, 이번엔 역으로 국군이 기습을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적의 의표를 찌르겠다는 전술이었다. 연대급 이상 부대에서 야간공격을 감행한 것은 도솔산 전투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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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전투 위령비 앞에서 전몰 장병에 대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사진 양구군청 제공

야간공격이 있기 전, 미 해군에게 미조리 전함의 함포와 해병항공사단의 항공지원, 그리고 해병 11포병연대의 전 화력을 집중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미군도 흔쾌히 지원키로 승낙했다. 한마디로 적 진지를 초토화시켜 우리 해병의 야간 기습작전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작전이었다.


이미 한번 패퇴한 적이 있는 미군의 가공할 화력은 천지를 진동시킬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다. 적은 사분오열 흩어졌다. 국군은 정비할 틈을 주지 않고 신속히 적진을 강습했다. 1고지, 8고지, 6고지 등 삼중작전을 병행하면서 고지를 하나씩 점령해 갔다. 드디어 적군의 강력한 저항선이었던 4고지, 9고지, 13고지도 점령하는 성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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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열린 도솔산 전적문화제 개회식 장면.

야간공격으로 적의 저항선을 하나씩 침몰시킨 해병대는 15일부터 24고지의 목표에 대한 공격을 재개했다. 승리를 눈앞에 둔 우리의 해병대는 6월 19일 0시를 기해 3개 대대가 일시에 도솔산 공격에 나섰다. 도솔산 적 진지에 대한 마지막 야간공격이었다. 국군은 야음을 틈타 적진 근처까지 진격해 있다가 5시30분에 이르러 일제히 적진으로 돌격, 육박전까지 전개하며 24개의 목표를 완전 점령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틀 전인 17일엔 이미 2대대가 19고지 점령을 끝낸 상태였고, 22목표는 3대대가, 23목표와 24목표는 1대대가 점령함으로써 17일간에 걸친 작전은 완벽한 승리로 끝냈다. 난공불락 같던 도솔산 암벽진지가 우리 국군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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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전적문화제 부대행사로 열리는 6,25전쟁 사진전.

포연 자욱한 도솔산 일대를 둘러본 미 해병대 제1 사단장 토마스(Gerald C. Thomas) 소장은 “한국 해병대가 아니었으면 이 전략적 요지를 우리 수중에 넣지 못했을 것”이라고 격찬하면서 “미군이 한국전선에서 싸운 전사 가운데 이 한국 해병대의 도솔산 작전은 길이 기록될 것이다”고 말한 것으로 전한다. 이승만 대통령도 도솔산을 방문하여 ‘무적 해병’ 휘호를 하사했다. 무적 해병이란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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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종합운동장에서 도솔산전적문화제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장면.

17일간의 격렬했던 도솔산 전투는 6․25 당시 최대 격전지일 뿐만 아니라 해병대 5대 작전의 하나로 기록될 만큼 중요한 의의로 평가받고 있으며, 지금도 우리 군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 작전에서 적사살 2318명, 생포 51명, 개인화기 및 공용화기를 상당수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지만 우리 군에서도 133명의 전우가 장렬히 전사하고 647명이 부상당하는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양구군에서는 해병대 5대 작전의 하나로 기록될 만큼 격렬한 전투를 치렀던 도솔산 승전보를 널리 전하고, 참전용사의 넋을 기리며, 평화통일의 염원을 기원하고자 매년 6월 도솔산전적문화제를 양구읍과 도솔산 일원에서 지내고 있다. 올해는 6월 16~17일 이틀간 행사를 치른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보행자

    06.14,2012 at 11:45 오전

    6월에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내용중 "미조리 전함의 함포"라는 부분이 이상하네요. 함포 사격이 양구까지 도달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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