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생전 마지막 동안거 해제설법… “인생 시간의 잔고를 돌아봐라”

깊어가는 가을, 그리고 한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우연히 법정스님의 글이 눈에 띄었다. 이전에 기사로 쓸려고정리만 해 두었다가 실리지 못한 글이었다. 왜 이 시점에 법정스님의 글이 눈에 띄었을까? 아마 그의 글과 그가 남긴 메시지가 깊어가는 이 가을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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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지난 2010년 2월9일 길상사에서 동안거 해제 설법을 하시기 전에 합장하고 있다.

법정스님에 대한 글은 그가 입적하기 한 달 전쯤인 2010년 2월 9일 동안거 해제법회를 길상사에서 했던 내용이다. 지금도 기억이 뚜렷하지만 당시 설법을 하시던 모습으로는 한 달 뒤에 입적하실 정도의 인상을 전혀 받지 못할 만큼 외견상으로 정상적이었다. 한 달 뒤인 3월11일 입적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도를 닦으신 분들은 역시 다르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쯤 스님들은 동안거에 들어갈 시점이 됐다. 동안거가 끝날 즈음에 법정스님이 한 설법을 떠올리며 동안거에 들어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당시의 설법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그 때 쓴 기사를 깊어가는 가을에 법정스님을 떠올리며 그대로 옮겨본다.


지난 2월9일 길상사에서 열린 동안거 해제 법회에서도 물질의 무소유가 아닌 감정의 무소유에 대한 말씀까지 하셨다. 세속에 찌든 종교의 모습을 꾸짖고 불자, 중생을 위하는 종교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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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 해제 법회를 마치고 스님들과 같이 돌아가고 있다. 한 달 뒤에 입적하실 스님으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맺은 것을 푸는 해제 날이라 평소 제가 마음에 두고 있던 생각들을 풀어 보려 합니다. (중략) 이 절을 처음 만들었을 때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교회나 절이 흥청망청하기 때문에 가난한 절을 표방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법문을 하고 난 후, 불사를 하라는 돈 얘기를 꺼내게 되는데 그때마다 몹시 곤혹스럽습니다. 절을 운용하는 입장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불사의 내용을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을 달리 해야 합니다. 제가 그 방법을 제시하겠습니다. 불사는 소식지라든가 게시판과 같은 곳을 통해 모금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신성한 법회를 돈 이야기로 먹칠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략)

법문이 끝난 후 바로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법회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 같은 일은 반드시 시정돼야 합니다. 요즘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세상이 어려울 때는 절이나 교회 또한 어려움을 나눠야 합니다. 세상이 나아질 때까지 불사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종소리가 좋고 곱고를 따지기 전에 종소리에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는가, 있지 않은가가 문제입니다. (중략)

나이가 있고, 건강이 그 전만 못해 이런 자리에 자주 나오지 못할 것 같아 마음에 담고 있던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 말을 서운하게 듣지 마시고 또 다른 법문으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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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사랑과 화합으로’라는 주제로 열린 음악회에서 김수환 추기경, 원불교 박청수 교무 등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조선일보 DB

사실 이 날의 말씀 주제는 이게 아니었다. 주제 법문을 먼저 말씀하신 뒤 끝난 줄 알고 다들 합장하려는 찰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라며 한 말씀 덧붙이셨다. 스님은 세속과의 인연이 길게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계신 듯했다. 스님의 속세 연세는 여든을 바라본다. 생로병사와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이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깨치고 계신다.


이 날의 설법 화두는 복(福)과 시간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셨습니까? 수많은 말 중에서 하필이면 새해 인사로 복을 받으라고 한 것은 우리 사회에 복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중략)

오늘 이 자리에 오시게 된 것도 복이 우리를 받쳐 주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신 것입니다. 복을 많이 받으라고들 하는데, 그 복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복은 하느님이나 부처님 같은 절대적 존재가 거저 주는 것이 아니며, 선별해서 주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절대적인 존재가 대상을 가려 복을 준다면 그것은 편애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존재일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복을 지어서 받습니다. 복을 받으려면 복 받을 행동을 해야 하며, 복 받을 마음씨를 지녀야 합니다. 우리들 순간순간의 삶에서 내가 하는 말, 생각, 행동이 복을 받을 만한지 스스로 살펴야 합니다. 절대 혼자서는 복을 짓기 어렵습니다. 어떤 대상이 있어 복을 짓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이런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새해 달력을 바꾼 지도 한 달하고 아흐레가 지났습니다. 세월의 덧없음을 실감하실 겁니다. (중략) 예전에 시간이 전광석화 같다는 표현을 관념적이며 건성으로 듣고 실체를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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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주변을 산책하시며 허공에 뭔가를 잡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제가 지난 겨울 몸소 눈병을 앓으며 시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습니다. 병원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안약을 넣으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한 시간마다 안약을 넣다 보니 하루가 훌쩍 가 버려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 한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술술 빠져나갔습니다. 마치 모래를 한 움큼 쥐었을 때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 듯 술술 빠져 나갔습니다. 막상 내 몸으로 시간을 부딪쳐 보니 시간의 빠른 흐름과 덧없음에 정신이 번쩍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게 남은 시간의 잔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의 덧없음은 노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하루에 24시간 주어지고 하루는 쏜살같이 빠져 나가는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그 시간 속에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일일일야(一日一夜) 만사만생(萬死萬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 밤낮에 만 번 죽고 만 번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인식하든 못하든 시간에 살며, 시간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합니다. 친구를 만나 서로에게 유익한 시간을 만들었다면 시간을 살리는 것이고, 남의 흉이나 보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시간을 죽이는 일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시간을 살리기 위해서 입니다. 덧없이 시간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잘 보고, 잘 읽으며, 시간을 잘 가려서 사용해야 합니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잘 쓰면 살리는 것이며, 귀중한 시간 무가치하게 흘려버리면 죽이는 것이 됩니다. (중략)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졌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볼 것은 보며, 보지 않을 것은 보지 않아야 합니다. 듣는 것 또한 가려서 듣고, 가려서 책을 보고, 말 또한 가려서 해야 합니다. 그래야 덧없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보다 유익하게 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중략) 올 한해 시간의 덧없음을 화두 삼아 복된 순간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 다 같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십시다.”


“50여년 수행 중 얻은 건 현재의 나”


1954년 당대 최고 스님이었던 효봉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신지 어언 50여년. 법랍(출가 나이)이 올해(2010년)로 정확히 만 53년이다. 동안거 해제 법회에서도 말씀하셨던 시간의 쏜살같음, 세월의 무상함을 연세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출가하신 2년 뒤인 1956년 사미계 수지를 받았다. 많은 활동을 하시다 70년대 후반 모든 것을 떨치고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을 짓고 칩거하며 홀로 사셨다.


그러나 스님의 법과 글로 인한 명성을 듣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끊이지 않자 수상집 <버리고 떠나기>를 남기고 훌쩍 떠나셨다. 강원도 산골로 거처를 잡아 오늘에 이른다. 스님의 직위는 일일이 열거하지 않았다. 별로 의미 없을 것 같아서이다. 무슨 일을 하셨던들 그게 무슨 대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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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쓰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란 제목의 서예작품. 조선일보 DB

법정 스님이 50여년 수행에서 뭘 이뤘을까?

‘현재의 나’를 이뤘다고 말씀하신다. 구체적인 듯하면서 추상적이다. 알듯 모들 듯하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알 수밖에 없다.

‘전쟁터에서 싸워 100만인을 이기기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살펴야 한다. 진정한 믿음의 세계는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인도에서는 50세의 나이를 ‘바나 플러스’라고 한다. 이는 ‘산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때’라는 뜻이다. 50년의 인생을 살았으면 사회적인 의무를 다했으니 서서히 산으로 떠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속적인 의무를 마치고 훨훨 짐을 다 벗어 자기 몫의 삶을 챙길 때라는 말씀이다.

출가하신 뒤 산 속에서 수도생활 하신 지 30여년, 스님은 자기 자신에 돌아가셨고, 자연에, 산에 완전히 동화되셨을까?


‘산에서 살아 보면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이고 만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진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수상집 <영혼의 모음>

스님은 산을 이미 알고 계셨고, 산의 의미도 깨달으셨고, 산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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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9일 당시 법정스님이 동안거 해제 법회를 보고 있다.

산을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 산은 그저 산 일 뿐이다 /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에는 / 저 만치서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에는 / 내가 산을 바라본다 ―산


산에 오르면 / 사람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 무의미한 말의 장난에서 벗어나 / 입 다물고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 지금까지 밖으로만 향했던 눈과 귀와 생각을 / 안으로 거두어들여야 한다 / 그저 열린 마음으로 무심히 / 물레를 바라보면서 쉬어야 한다 / 복잡한 생각은 내려놓고 /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의 숨결에 / 귀를 기울여야 한다 / 인간의 언어로 인해서 /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눈 멀어 왔고 귀 먹어 왔는지 / 냉정하게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 남의 얼굴만을 쳐다보다가 / 자신의 얼굴을 까맣게 잊어버리지 않았는지 / 돌이켜 보아야 한다 / 남의 말에 팔리지 말고 / 자기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들어야 한다 / 자연은 때 묻고 지친 사람들을 맑혀 주고 / 쉬도록 받아들인다 / 우리는 그 품안에 가까이 다가가 / 안기기만 하면 된다 ―산에 오르면


법정 스님이 산과 관련된 시를 많이 썼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에 동화돼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법정,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스님이자 정신적 스승이었다. 그가 던진 어떤 말씀이라도 항상 언론에 장식되고, 주옥같은 글들은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웬만한 작가의 글들은 중요 부분만 발췌해서 중략, 후략으로 생략하지만 그의 글들은 곱씹을수록 더욱 맛깔스럽다. 사실적인 듯하면서 무한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의 삶과 깊이를 담은 힘이 절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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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살아 생전 뭔가를 생각하는 듯 골똘한 표정을 지으며 걷고 있다.

스님은 무소유로 상징된다. 무소유하면 누구나 법정을 떠올린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다. 그런 법정 스님도 인도의 간디를 무한히 사모한 적이 있다.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보이며 한 말 때문이다.

“난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 젖 한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그것뿐이오.” <간디어록>

법정 스님은 “이 구절을 보고 난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이라고 했다. 나아가 스님은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니까”라고 덧붙였다. 스님의 무소유에 관한 글이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 모두가 한 때일 뿐 / 그러나 그 한 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 살 수 있어야 한다 / 삶은 놀라운 신비요 / 아름다움이다 ―버리고 떠나기

그리고 그는 떠났다. 그가 떠난 지 2년이 지났다. 유달리 깊어가는 이 가을에 그가 생각나고, 그의 무소유가 생각나고, 그의 존재가 생각난다. 그의 부재에 더욱 허전해진다. 그는 우리 시대의 최고의 스승이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3 Comments

  1. 술래

    11.09,2012 at 12:53 오전

    스크랩을 허락하시리라 믿고 가져갑니다.
    오늘 이 글을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신거
    감사드리고요.
    법정 스님이 떠나신 길상사에서 우연한 기회에
    그 분이 입적하시던 방을 볼 기회를 주신 스님을
    만났던 지난 여름의 서울이 기억납니다.
    그 마당에 귀한 야생화가 피어있다고
    제게 사진 찍을 기회를 주셨거든요.
    법정 스님이 입적하신곳이라 해서 사진 한장 찍어도 되겠느냐했더니
    아직 일반에게 공개 된 장소가 아니라 그것은 곤란하다고 하셔서…   

  2. 개구리

    11.09,2012 at 5:12 오후

    스님이 쓰신 글 정말 저에게 힘이 되어주고 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스님은 가셨어도 스님 말씀은 영원히 남아있을겁니다
    사랑합니다   

  3. 짱구

    11.13,2012 at 11:20 오전

    저는 스님을 뒤늦게 알았는데 그분의 무소유에짧은글이 가슴에 벅차게 와닪더라고요.
    스님이 입적하시고나서 쓰신 서적을 찾는데 안되더라고요.가시기전에 절판하라고 하셨더군요.
    MBC에서 스페셜방송으로 스님의모습을보고 그냥 그렇게 눈물이 하염없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도서관에가보았지요.구청에서하는 도서관인데 학교다닐때 가고 거의 삼십년이 넘엇더군요.기분이 묘하고 정신이 맑아지면서 시끄러운세상을 벗어난느낌! 어쨋든 거기서
    스님의 책을 다 만날수 있었습니다.하루 꼬박 한권을 읽었어요.
    돌아올때 그 어떤 영양제,그 어떤 보약보다 더 정신과 몸이 건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맙게 글 잘 보았습니다. 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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