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딸’ 한비야 “내년 초 야영 같이 갈 사람 없나요?”

‘바람의 딸’ 한비야는 2009년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녀 스스로 막연한 구호보다는 이론적 기반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안주하지 못하는 재능이고 도전정신이다. 보스턴 터프츠대학에서 2년 과정의 석사학위를 1년 만에 따내, 현장구호를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한 내실을 다졌다. 그게 2010년 5월의 일이다. 그녀는 꼭 필요하다 싶으면 남들이 지금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감히 중단하고 필요한 일부터 해결해야 직성이 풀린다.

“몸으로 하는 도전과 머리로 하는 도전을 섞어서 해야 일의 균형도 있고, 재미도 있어요. 머리로만 하면 몸이 근질근질하고, 몸으로만 하면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아마 다시 현장으로 갈 때가 됐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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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과 한비야씨가 북한산을 오르고 있다.

이 말은 받은 엄 대장도 “아~, 히말라야가 그립습니다”라고 화답한다.

귀국하자마자 그동안 미뤄뒀던 한국에서 못했던 일을 처리했다. 백두대간 종주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 와중에 2012년 상반기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로 국제구호학 강의를 한 학기 마쳤다. 해마다 봄 학기엔 강의, 가을엔 현장 봉사 나가기로 했다. 그녀는 “현장에서 겪은 실제적 문제를 이론에 그대로 접목시켜 생생하게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한다.

그녀가 현재 맡고 있는 직함만 해도 여러 개다. 월드비전 국제구호요원, UN산하 WFP(세계식량계획) 국제구호기금 전문가, 이화여대 초빙교수, 세계시민학교 교장 등이다.


“청소년에게 꿈 심어줄 프로그램 개발”


이번에 유엔 긴급구호기금 6000억원 현장 전달 책임자로 이태석 신부가 헌신적인 사랑과 봉사를 펼쳐 ‘울지 마 톤즈’로 유명한 남수단 지역에 지난 8월6일자로 파견됐다. 실제로 일 하는 지역에 구호기금이 제대로 전달됐는지를 감독하고 적극 현장 지원에 나선다. 3년 임기로 2014년 5월까지 일한다. 물론 전반기에는 이화여대에서 강의한다. 현장→강의→현장→강의순서가 반복되는 것이다. 그녀는 내년 1월 귀국한다. 3년 계약 끝나고 나면 유엔 정식 직원으로 풀타임 근무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한다. 그러면 한국에서 그녀를 볼 시간이 더욱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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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한비야가 백두대간 종주를 끝내고 진부령 비석 앞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 한비야 제공

“내년 1월 귀국해서 다음 목표는 한국에서 야영을 10번 이상 하는 거예요. 한국의 자연을 만끽하고 싶어요. 백두대간을 마칠 때쯤 되니 나무와 풀, 꽃이 보이는 거예요. 50년이 넘도록 산에 다니면서 어떻게 이들을 이렇게 몰랐을까 싶었어요. 나무를 잘 아는 사람과 산에 가서 설명을 들으면 너무 좋아요. 나중 숲해설가도 할 거예요.”

정말 그녀의 에너지는 넘친다. 이 같은 에너지가 어디서 나올까?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녀는 한마디로 “산”이라고 말한다. 완전한 산 예찬론자다. 어릴 적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간 산이 지금은 매일 거르지 않고 가는 에너지의 원천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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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 중인 한비야. 사진 한비야 제공

“지금 북한산 자락 밑 독바위역 근처에 살고 있어요. 한국에 있으면 매일 아침 산에 가기 위해서 일부러 북한산 가까이로 이사 왔죠. 하루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최소 1시간 이상 산에 갔다 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죠.”

마침 엄 대장과 산행한 장소도 그녀의 집 근처 형제봉 자락으로 올랐다. 두 사람 다 도전과 끈기, 모험으로 뭉쳐진 ‘의지의 한국인’들이다. 또한 대중스타다. 등산객들이 모를 리 없다. “어머, 한비야씨 아니세요.” 지나가는 등산객이 한비야씨를 보고 아는 체를 한다. 바로 옆 엄 대장을 보더니 “어머, 엄 대장님도 계시네‘하며 반색한다.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같이 사진찍자고 포즈를 취한다. 졸지에 등산객들이 모여들어 사진 찍는 순서를 기다리는 실정이다. 평일 낮에 사람 없는 시간을 고른다고 했는데도 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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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씨와 엄홍길 대장이 북한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엄 대장님, 네팔에 학교를 얼마나 지었어요?”

“3개는 완공해서 개교했고, 지금 4개째 짓고 있어요. 내년 3월2일 완공식을 합니다. 총 16개 지을 계획입니다. 3번째 학교는 아웃도어 업체 ‘밀레’에서, 4번째 학교는 밀레와 KOICA(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한국국제협력단)에서 반반씩 부담했어요.”

“다 했네요. 시작이 반이고, 4분의 1이 넘었으면 다 된 거예요. 긴급구호에는 4가지 원칙이 있어요. 숨 쉴 공기와 마시는 물, 먹을 식량, 피난처와 보건의료 제공 등이예요. 그리고 항상 학교를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의 합니다. 저는 학교는 꼭 지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들이 학교를 통해서 꿈을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밥만 먹고 살 수 없고, 꿈과 희망을 가지게 하려면 학교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맞아요. 천막을 쳐서라도 교육은 시켜야 합니다. 교육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애들이 학교 다니면서 꿈을 이어갑니다. 어린이들의 꿈이 없으면 국가의 미래도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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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 중에 눈 덮인 설악산 구간을 지나고 있다. 사진 한비야 제공

두 ‘의지의 한국인’의 대화가 끝날 줄은 모른다.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또 하기로 하고 하산길로 방향을 틀었다. 갑자기 한비야씨가 무릎에 뚝 하는 소리가 나더니 다리를 움직이질 못한다. 한참을 주무르더니 겨우 발걸음을 다시 옮긴다.

“무릎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 같아요. 다른 신체부위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적게 나오는데, 무릎만 더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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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는 계절을 몇 번이나 바뀌는 걸 경험한다. 사진 한비야 제공

그럴 만도 했다.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돌고 한국과 중국을 온통 누비고 다녔으니…. 무릎이 성하면 거짓말이지. 그녀도 이제는 무릎연골주사를 맞고 다니는 처지가 됐다. 마음은 백두대간을 한 번 더 종주하고, 지구를 세 바퀴 반 정도 더 돌 수 있지만 몸은 지구 반 바퀴도 못 돌 처지가 됐다. 세월의 무상이다.

하지만 그녀의 시계는 지금도 돌고 있다. 7월20~26일까지 네팔 히말라야를 다녀와서 7월28일부터 영남알프스에서 야영을 하고, 돌아오자마자 내년 1월6일 귀국 예정으로 8월6일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떠났다. 에너지가 넘치는 행군이다. 그녀의 말 대로 지도 밖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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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곰넘이재~화방재 구간을 넘어면서. 사진 한비야 제공

잠시 카페에 머무는 사이 한 사람이 교사라고 신분을 밝히며 아는 체 하며 두 사람의 사인을 받아 한 마디 건넨다. “얘들한테 교사인 저희들이 얘기하면 먹히질 않아요. 한비야씨가 이렇게 하더라고 하면 훨씬 효과가 있어요.”

그것이 현실이다. 한비야씨도 거든다.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지속 가능한 도전과 모험심을 심어주고, 자신감과 성취감을 갖게 할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엄 대장님과 저가 힘을 합치면 앞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들의 도전과 모험은 계속된다. 이젠 본인의 도전과 모험보다 봉사를 통해 미래의 세대에 전승해야만 한다. 이들이 어떻게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도전과 모험과 봉사를 펼칠지 두 모험가의 앞으로의 삶이 기대된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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