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길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서명숙 이사장이 직접 말하다

제주와 한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길을 내는 여자’ 서명숙 이사장을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청계산에서 만나, 제주올레를 조성하게 된 계기와 그 이후의 근황, 삶과 산 등에 대한 얘기를 듣기 위해 함께 산행했다.

청계산 입구에서 반갑게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바로 산으로 향했다. ‘길을 내는 여자’ 서 이사장은 먼저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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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을 낸 서명숙 이사장이 길을 걷고 있다. 사진 제주올레 제공

“이렇게까지 반향이 클 줄은 몰랐죠. 제가 그만큼 큰 일을 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예요. 저는 잘 삐지고, 꾸준하거나 끈기와는 거리가 먼 감정기복이 심한 여자예요. 아침에 이랬다, 저녁에 저랬다 하거든요. 더욱이 장시간 걸어야만 하는 등산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기껏 좋아하는 길을 걷는 정도였어요. 월악산 정상 가서 오죽 힘들었으면 헬기를 부르면 안 되냐고 했겠어요.”


그런 여자가 어떻게 길을 내게 됐을까? 운명이었을까. 맞다, 그건 운명이었다. 길을 통해서 운명을 맞은 것이었다. ‘운명의 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과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에서 운명을 맞았다. ‘운명에 순종하는 사람은 운명을 이끌고 가고, 운명에 거역하는 사람은 운명에 이끌려 간다’는 ‘셰익스피어의 운명’ 같이 특히 산티아고 순례길을 그녀의 인생을 바꾼 절대적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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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이사장이 엄홍길 대장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에서 20여년의 기자생활은 그녀에게 정신적 피폐와 육체적 피로감만 남겼다. 시사종합지 여성 첫 편집장이란 타이틀도 허울뿐이었다. 모든 걸 벗어던지고 훌훌 떠나고 싶었다. 사표를 낼 기회만 엿보다 있었다. 2003년 시사저널 편집장은 과감히 사표를 던졌지만 다시 오마이뉴스에 발목이 잡혔다. 그것도 잠시, 2006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도 더 이상 미련 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끝냈다. 20여년의 기자생활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곤 미련 없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떠났다. 바쁘고 치열하고 경쟁적으로 산 삶을 보상받고 싶었다. 무작정, 아무 생각 없이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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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 엄홍길 대장이 청계산 자락을 올라가다 바위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무례 800㎞에 이른다. 하루에 20㎞씩 걸어도 40일 걸린다. 그녀는 작정했다. 끝까지 걸어보기로. 꼬박 38일 걸려 완주했다. 20여년의 기자생활보다 훨씬 더 한 만족감을 느꼈다. ‘아,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돌이켜보니 완주했다는 기쁨보다 순간순간이 더욱 가치 있었고 행복했다는 충족감으로 가득 찼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많은 사연과 사람을 접했다. 올레길을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도 순례길에서 만난 영국 여성 때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례길을 걸으면 ‘까미노통신’을 듣게 된다. 이는 길을 지나는 사람끼리 정보를 교환․공유하는 의미도 있지만 ‘누구는 어떤 사람이니 조심하라’ ‘어떻게 생긴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는, 지나가는 사람끼리 말과 말로서 건네지는 소통수단이자 ‘길 위의 통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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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이사장이 엄홍길 대장과 산행하면서 제스처를 써가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녀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지 33일째 되는 날, 사람 그림자조차 보기 쉽지 않은 스페인의 한 오지마을에서 영국 출신의 한 여성을 만났다. 수백㎞의 길을 걷는 것은 자신과, 그리고 외로움과의 싸움이다. 당연히 지나치는 사람과 인사를 나눌 수밖에 없다. 영국 여성은 까미노통신을 통해 들은 바 있었던지 서씨를 만나자마자 “너가 한국의 숙이냐?”며 쉽게 대화를 건넸다. 며칠 전 잠시 스쳐 지나쳤을 뿐인데 다시 만나자 살갑게 대했다.


올레길은 정신적․육체적 안식처


서씨의 그날 아침 행동은 까미노통신에 충분히 오르내릴 만 했다. 그녀는 어딜 가든 잘 먹는다.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지론이 ‘한 번 지나간 끼니는 다시는 오지 않는다’였다. 한 마디로 ‘끼니는 절대 거르지 말자’는 거다. 이번에 발간한 새 책 ‘식탐’도 오랜 음식의 관록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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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이사장과 엄홍길 대장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청계산 자락을 올라가고 있다.

그녀는 순례길을 걸으면서 줄곧 현지식을 먹었다.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려 왠지 싱숭생숭했다. 걷기도 영 내키지 않았다. 매일 먹던 바케트에도 별로 손이 가지 않았다. 부침개에 막걸리가 머리 속에 어른거렸다. 막걸리는 없더라도 부침개는 해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즉시 밀가루 반죽을 야채와 버무려서 올리브유를 붓고 부침개를 부쳤다. 그 자리에 있던 다국적 사람들 눈길을 끄는 건 당연했다. 모두 조금씩 맛을 보고 감탄했다. 까미노통신은 ‘한국의 숙이가 부침개를 해서 모든 사람에게 돌렸다’는 내용이 순식간에 퍼졌다. 영국 여성은 그 자리에 없었지만 까미노통신을 듣고는 그녀와 자연스럽게 재회해서 긴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헤니(Henn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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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이사장이 산행이 힘든 듯 잠시 밧줄에 기대서서 쉬면서 얘기를 하고 있다.

“순례길을 걸어보니 너무 좋다. 난 이 길을 최소한 5년마다 한번씩 오겠다. 직장생활 하는 25년 가까이 휴가다운 휴가 한 번 못가는 일중독자였다. 이젠 다시는 그런 생활 안 할 거다. 앞으로 정규직은 절대 안 할 것이며, 비자발적 실업자인 프리랜서 같은, 여행을 업으로 삼는 일을 하겠다. 길은 종합병원이고, 길을 걷는다는 것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행위다. 길을 걸으니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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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우정의 길’ MOU를 맺으면서 서명숙 이사장이 스위스 관계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제주올레 제공

“한국은 걷기 길 조성이 시급한 나라다. NGO국제대회로 한국을 두 번 방문했다. 그 때마다 한국은 ‘미친 국가(crazy country)’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24시간 미친 듯이 일하고, 미친 듯이 술 마시고…. 오로지 한 가지 표준(목표)을 향해서만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경쟁하고, 다른 표준은 하찮게 여기고…. 한국은 너무 숨 막히는 사회더라.”


그녀는 경쟁․압박 속에 살아왔고, 이런 생활 때문에, 이런 생각을 벗어나기 위해 순례길을 갔던 것인데, 생면부지의 영국 여성에게 한국을 비판하는 얘기를 들으니 무지하게 기분은 나빴지만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 맞는 말이었다. 헤니의 얘기는 계속됐다.

“한국사회는 지금 끔직하다. 난 순례길을 걷고 나서 영국에 돌아가서 걷기길을 만들 것이다. 너도 한국에 가서 사람들이 육체적․정신적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걷는 길을 만들어라. 지금 한국사회에 꼭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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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이사장과 엄홍길 대장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청계산 자락을 올라가고 있다.

그녀는 무언가에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50년을 넘게 살았지만 그냥 앞만 보고 달려와 정작 우리 사회와 개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던 터에, 고작 한국에 두 번 온 영국인에게 한국사회의 정확한 문제점과 처방을 듣게 되다니 참담하기도 하고 절박감까지 느꼈다. 한국에 돌아가면 기필코 길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녀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녀에게 제주올레길을 만드는 결정적 계기를 준 건 영국 여성 헤니였다.


바다 볼 수 있는 트레일, 세상 어디에도 없어


38일 간의 순례길 여정을 끝내고 돌아왔다. 길을 만들겠다는 작정으로 제주도로 내려가서 한 번 휙 돌아봤다. 헤니의 말을 들었을 땐 각오도 생겼고,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작 실제 부딪혀 보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갑갑하고 난감했다. 그게 2006년의 일이다.

그녀의 에너지도 만만찮았다. 산에 올라가면서 쉴 새 없이 얘기했다. 인터뷰에 필요한 내용을 많이 얘기 해주려는 기자에 대한 배려도 물론 포함됐겠지만. 그녀도 오르막길에 숨이 찼던지 잠시 쉬면서 한 주제에 대해서 마무리하고 올라가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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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이사장이 대화를 나누면서 활짝 웃고 있다.

“온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났죠. 서명숙이가 제주도에 길을 낸다고.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시간이 지연되니 여기저기서 ‘제주도 언제 내려가나’ ‘길은 언제 만드나’ ‘왜 길을 안 만드나’ 등등 주변의 압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친한 ‘10자매’를 데리고 한 번 내려갔죠.”

그 10자매는 가수 양희은, 한의사 이유명호, ‘바람의 딸’ 한비야 등등 전부 자기 분야에서 내로라는 여자들이다. 그들은 서명숙씨가 이끄는 대로 제주도로 갔다. 어릴 때 다니던 그 길로 그녀들을 안내했다. 모두 뿅 갔다.

“아니 이런 길을 왜 여태 감춰두고 있었나. 이런 게 바로 제주속살이다. 지금 당장 길을 만들어라. 즉시 내놔도 세계적인 트레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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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이사장과 엄홍길 대장이 청계산 자락을 올라가면서 뒤를 돌아다 보고 있다.

전부 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자연의 풍광에 반하고 고무돼서 더욱 부추겼다. 서씨는 바로 서울에서 짐 싸들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물론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지만 이미 그녀의 방향은 정해진 상태였다. 운명의 주사위는 제주도로 던져졌다.

그녀가 제주올레길 조성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건 주변의 성화도 있었지만 그녀가 다녀본 세계적인 트레일 전부 바다를 볼 수 없었던 점이었다. 반면 제주는 세계자연유산에 빛나는 아름다운 산과 사방이 탁 트인 쪽빛 바다, 어느 것 하나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천혜의 자연경관들이었다. 그 산과 바다를 모두 볼 수 있는 자연의 길을 낸다면…. 명약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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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이사장이 엄홍길 대장과 함께 쉼터에서 물을 마시며 잠시 쉬고 있다.

2007년 그녀가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새벽에 일어나 하늘을 쳐다봤을 때 바로 머리위로 떨어질 것만 같은 주먹 같은 별들이 주는 아름다움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도 바다는 없었다. 요즘 말로 2% 부족했다. 그 이후 서명숙 이사장의 지휘아래 제주올레길은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그 길이 11월24일 21개 전 구간 총 425㎞를 연결하는 대미를 장식했다. ‘길을 내는 한 여자’에 의해 이뤄진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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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코츠월드 우정의 길을 개통하면서 현지 관계자들과 함께 자리를 함께 했다. 사진 제주올레 제공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이젠 올레길 조성도 끝났는데….”

“길과 관련된 답사, 국내외에서 견학 온 분들과의 만남, 올레 스피릿을 알리는 특강 등을 하지만 되도록 한가하게 지내려고 노력합니다. 기자 때 워낙 휴식 없는 바쁜 삶을 휘둘리면서 보낸 터라 ‘쉼과 휴식’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껴 일정을 가급적 적게 잡으려고 합니다. 나머지 시간에 독서, 산책, 음악듣기, 요리하기로 보내지요. 특히 제주의 신선한 식재료로 무언가를 만드는 시간은 아주 좋은 여가 선용이자 에너지 공급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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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햇살을 맞으며 청계산 자락 쉼터에서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등산의 출발이 걷기인데, 걷기와 등산은 무슨 차이가 있는지요?”

“치열하게 걷기와 평화롭게 걷기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세계 최고의 산악인 엄 대장님은 어떻게 걷습니까?”

“저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걷습니다. 절대 서두르지 않습니다. 산을 올라갈 때 서두르면 꼭 사고와 연결됩니다. 저희 대원들에게도 절대 서두르지 말라고 신신당부 합니다.”


“인간은 왜 걷습니까? 아니 왜 걸어야 합니까?”

“걷기는 제게는 명상이자 치유행위나 다름없습니다. 평소에는 잘 떠오르지 않던 아이디어나 잘 풀리지 않던 고민도 걷다 보면 스스로 해답이 나오거나 저절로 풀리는 경우를 종종 경험합니다. 방안에 틀어박혀서 아무리 끙끙거려도 집중할 수 없던 게 걸으면서는 신기하게도 절로 명상이 이뤄지는 것이지요. 걷기는 제게는 단순한 운동이 아닌 몸과 마음의 힐링인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말합니다. 자연에서의 걷기, 즉 길은 제게는 인생의 학교이자 병원이자 명상의 쉼터라고요.”


청계산 자락에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그녀도 이젠 인생의 뒤안길로 접어들고 있다. 기자생활 20여 년 동안 책 한 권 쓰지 못했지만 올레 관련 책만 벌써 3권이나 냈다. 이번에 음식 관련 책 빼고 그렇다. 그만큼 지금의 인생에 만족하고 있다. 그래도 앞으로의 목표는 있을 것 같다.

“목표라기보다는 희망이고 꿈인데요, 몇 년 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제주 최남단 올레길인 가파도(11-1코스)에 정착해서 바닷가 작은 집에서 테이블 하나짜리 레스토랑 해보고 싶어요. 가파도에 십 수차례 드나들면서 자연스레 그런 로망을 갖게 되더군요. 제가 <식탐>이란 책을 냈는데, 그만큼 평생 먹는 일에 집착하면서 엄청 열심히 먹고 돌아다녔거든요. 나머지 인생은 남들 밥 좀 해먹여도 괜찮겠다 싶어요. 아주 작은 식당, 언제든지 문 닫고 여행을 떠나도 되는 그런 식당 말입니다.”

그녀의 꿈은 어릴 적 소설가에서 기자, 이젠 식당주인으로 바뀌었다. 이번이 세 번째 꿈이다. 흔히 꿈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그녀가 낸 길을 통해서, 아니 길을 걸으면서 길(미래의 꿈)을 볼 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바로 ‘운명의 길’이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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