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따로 없습니다. 엄 대장의 삶, 그 자체가 교육의 산 증표입니다. 미래의 우리 사회를 책임질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에 걸쳐 엄청난 교육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수많은 실패를 딛고 성공을 이뤄냈습니다. 아마 보통 사람들이면 중도포기 했을 겁니다. 그러나 엄 대장은 또 일어나서 결국에는 성공 했습니다. 그가 실패를 통해 쌓은 경험과 그 과정에서 당한 고통은 일반인들에게 ‘당신이 겪는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엄 대장의 등반인생 중 성공은 극히 일부분 입니다. 많은 실패를 통해 성공을 일궜다는 사실이 교육적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실패가 성공으로 가는 자양분이 되고 원동력이 된 거죠. 그래서 그는 산선(山仙)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인의 경지를 벗어난 거죠. 산에서 신선의 경지를 터득했다고 봅니다. 그 다음 단계가 성인(聖人)입니다.”
김신일 전 교육부총리와 엄홍길 대장이 도봉산에 올라 주변 산세를 조망하며 활짝 웃고 있다.
허튼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한때 대한민국 교육계의 최고 수장을 지낸 김신일(金信一․71) 전 교육부총리의 말이다. 그와 함께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도봉산을 올랐다. 도봉산은 엄 대장이 어린 시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산악인의 꿈과 자질을 키웠던 산이다. 엄 대장이 살았던 집으로 올라가며 추억을 되새겼다. ‘교육계의 최고수’와 ‘산악계의 최고수’ 두 사람의 대화는 도봉산을 오르면서 계속됐다.
김신일 전 교육부총리와 엄홍길 대장이 나란히 도봉산을 오르며 주변에 핀 꽃을 보며 즐거워 하고 있다.
“엄 대장은 실패할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실패를 냉엄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다음에 꼭 와서 성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비장한 각오를 하죠. 준비할 동안 실패의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 원인의 대처상황․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 사항, 즉 기상상황, 대원들 심리상태 등 주변 조건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히말라야를 오를 때 기술과 체력, 두 가지 요소가 크게 작용하겠지만 어느 요소가 더 중요합니까?
“정신, 즉 근성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흐리멍덩한 정신자세로는 어떤 일이든 못 합니다.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일단 70~80%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나머지는 기술적이고 세부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김신일 전 교육부총리와 엄홍길 대장이 도봉산 자락에 올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맞아요, 요즘 교육은 기술만 강조하는, 무조건 외우라는 주입식 교육을 하니 애들이 재미없어 하고 창의성, 상상력이 없어집니다. 자연을 통해 서로 부대끼며 인간적․인격적 관계를 체험하고, 가슴과 가슴이 부딪히는 정신을 키우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교육 방향은 점점 더 전인교육이나 인격형성과는 멀어지고 있습니다. 빨리 방향을 제대로 잡아줘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엄 대장이 교육의 표본이며, 교육계에 할 일이 많다고 봅니다.”
‘교육계의 대가’와 ‘산악계의 대가’가 도봉산에 올라 잠시 쉬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역시 엄 대장은 어디를 가든 팬들의 성화가 대단하다. 대중적 인지도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김 전 부총리가 조금 겸연쩍어 했다. 만나는 등산객들마다 “허허, 엄 대장 팬들이 이렇게 많으니…”로 하다가 나중에 아예 등산객을 만나면 “엄 대장과 사진 한 장 찍고 가세요”라며 먼저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어느 덧 엄 대장이 어릴 적 살던 옛 집터에 도착했다. ‘세계 첫 히말라야 16좌 등정’이라는 안내판에 16개 봉우리 이름과 연혁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곳이 엄 대장 놀이터였군요. 몇 살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습니까?”
“3살 때까지 살았습니다. 아주 어렸지만 여기서 뛰어다녔던 기억은 뚜렷합니다. 바로 여기 이 나무에 올라가 매달려 놀았습니다. 조금 더 커서는 바로 저 위 두꺼비바위에서 암벽 훈련을 했습니다. 오버행 구간도 있어 암벽훈련하기 좋은 바위죠.”
“도봉산이 엄 대장 암벽훈련장이었군요.”
김신일 전 교육부총리와 엄홍길 대장이 도봉산 계곡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예, 우리나라 산은 대부분 화강암질이어서 훈련하기 아주 좋습니다.”
“몇 년 전 일본 암벽 등반가 2명이 인수봉을 찾았어요. 이들이 인수봉을 보더니 일본의 암벽 질과 너무 다르다며 감탄을 하더군요. 일본인들이 한국 산을 그렇게 좋아합디다.”
김신일 전 부총리는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으로부터 히말라야 그림 한 장을 선물 받았다는 얘기를 꺼냈다. 그 그림이 하도 장대해서 엄 대장이 쓴 책에 나오는 히말라야의 봉우리들과 비교하면서 ‘이 봉우리인가, 저 봉우리인가’ 유심히 살펴봤다고 설명했다. 이인정 회장과는 이재후 엄홍길휴먼재단 이사장 겸 김&장 대표변호사와 같이 ‘4월회’ 회원이다. 엄 대장은 4월회에서 수여하는 ‘4․19 문화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그 때 스쳤던 인연이 지금에야 확실히 인연을 턴 셈이다.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오늘 부총리님 만난다고 하니 날씨까지 도와줍니다.”
“신록과 파릇한 소나무가 섞여 숲을 이룬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저 바위 보십시오. 저게 바로 암벽훈련장소인 두꺼비 바위입니다. 맞은편 능선은 다락능선이고요.”
60대 접어든 10여 년 전 암벽등반 배워
“내가 10여 년 전 수유리 인공암장에서 암벽을 배웠습니다. 몇 주 간 훈련받고 전주 인근 할미바위에서 졸업등반까지 마쳤습니다. 이후 인수봉을 수차례 올라갔죠. 두 번이나 정상 초가지붕바위에서 야바위 비박까지 했습니다. 처음 인수봉 오를 때 중간쯤 됐는데, 아무리 봐도 잡을 때가 없었어요. 그래서 선등자보고 ‘어떻게 해야 하나’ 물어보니 ‘그냥 올라오세요’라고 대답하더군요. ‘누군들 올라가기 싫어서 안 올라가나, 나도 빨리 올라가고 싶어 방법을 물었는데, 그냥 올라오세요 라니…’ 싶더군요. 다시는 인수봉 안 온다고 다짐했죠. 그런데 하산주 하면서 내가 먼저 ‘우리 다음에 어디로 가지’라고 묻는 거예요. 그렇게 암벽타기를 익혀갔습니다.”
김신일 전 교육부총리가 도봉산 자락 엄홍길 대장이 어릴 적 살던 집터 앞에 있는 엄 대장의 약력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암벽을 왜 하십니까?”
“꼭 집어 말할 수 없어도 분명 매력이 있고, 마력도 있어요. 몰입하다 보면 정신집중의 쾌감을 느끼고 무아의 경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정도면 암벽의 매력과 마력의 경지를 아는 사람 같다. 김 전 부총리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 산행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오히려 엄 대장 숨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보통 산행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한다. 친구와 후배들과 어울려 다니는 산모임 ‘삿갓’을 결성한지 30년쯤 됐다. 최근에는 은퇴한 친구들과 매월 셋째 화요일에 산행하는 ‘세화회’를 조직해서 10여명이 어울려 산행을 다니고 있다. 또 집안 형제들이 함께 가는 ‘형제산행’도 매달 한 차례 이상 한다. 단체 산행이 없을 때는 혼자 마음 내키는 대로 간다. 그것도 나름 매력 있다고. 한 마디로 “산이야 언제 어디를 가도 좋지요”라고 말한다.
바위 틈에서 나오는 샘물을 마시려 잠시 기다리고 있다.
“현행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책임자 중의 한 명이고 죄인인 기분”이라는 그와 교육계의 대가인 그에게 자연이나 등산이 주는 교육효과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현 교육의 문제점은 지나친 경쟁과 성적순으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등만 있고, 2~3등은 없는 현 교육체제는 모든 얘들을 무한경쟁․비인간적 경쟁으로 몰아가 인간성은 더욱 각박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탈락한 학생들은 견딜 수 없는 증오심이 생기고, 사회․제도적으로 나타낼 방법이 없으니 폭력적으로 표출한다는 게 그가 말하는 현행 교육 문제점의 요지다.
이에 대한 단기적 대책은 없다.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자연과 접촉을 늘리고 가깝게 지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연체험이나 특별활동 시간을 입시로 없앨 것이 아니라 대폭 늘려야 한다고 했다. 자연을 통해 서로 부대끼며 활동할 때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배려심․양보심도 아울러 키워진다고 주장했다. 청소년기에는 잠재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공부만 하기보다는 학생들을 풀어줘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 자아정체성을 확인하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요즘 얘들은 놀 줄을 모른다”고 일침 했다.
김신일 전 교육부총리가 도봉산을 오르다 잠시 쉬고 있다.
옆에 있는 엄 대장도 연신 “맞습니다”며 맞장구를 친다. 그도 사례를 하나 들었다. 서울 모 고교에서 학교장 재량으로 점심시간을 늘렸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놀 줄을 몰라 잠을 자거나 빈둥거렸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운동장에서 뛰노는 학생들이 늘어나더니, 그 결과 학업성취도도 눈에 띄게 상승했고, 폭력도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보듯 얘들을 풀어줘야 능률도 오른다고 강조했다.
김신일 전 교육부총리와 엄홍길 대장이 도봉산을 오르고 있다.
그는 한국사회를 위한 바람직한 교육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할 과제는 평생학습사회 건설입니다. 선진국과 우리의 결정적 차이의 하나는 그들에게는 대학에 바로 진학하지 않아도 다른 여러 길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대학 이외에도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학습의 통로들이 많고 패자부활의 교육기회도 마련되어 있지요. 말하자면 다양한 평생학습의 통로가 마련되어있다는 겁니다. 평생학습체계가 발달하면 교육제도만 가지고 해결하기 어려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는 사실은 선진국 사례에서 보여주고 있지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그겁니다. 다행히 ‘평생교육법’을 제정해서 우리도 지금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미래의 청소년들에게 자연과의 친화적 활동, 즉 등산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등산을 통해 자아정체성을 키우고, 이해와 배려와 양보심, 나아가 독립심을 키우는 장이 된다고 강조한다.
엄홍길 대장이 쓴 책을 선물로 받은 김신일 전 교육부총리가 엄 대장의 약력이 적힌 대형 수건을 함께 들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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