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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실크로드 1만2000㎞를 4년간 걸어 횡단한 베르나르에게 왜 걷느냐 물어보니… - 마운틴
실크로드 1만2000㎞를 4년간 걸어 횡단한 베르나르에게 왜 걷느냐 물어보니…

사람들은 왜 걸을까? 쉬우면서도 심오하고 철학적인 질문이다. ‘왜 산에 오를까’ 만큼 어렵기도 하다. 무슨 답을 기대할 수 있을까? “가기 위해 걷는다.” “발이 있기 때문에 걷는다.” “목적지가 있으니 걷는다.” “살기 위해 걷는다.” “그냥 걷고 싶어 걷는다.” “건강을 위해서 걷는다.” 수많은 답이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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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가 제주 ICC에서 전시된 각국의 트레일 상황에 대해서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주올레 제공

세계적인 도보여행가 베르나르 올리비에(Bernard Ollivier․75)가 한국에 왔다. 이번이 세 번째지만 그가 방한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뉴스가 된다. 그는 세계 최초로 1만2000㎞에 가까운 실크로드를 4년여에 걸쳐 혼자서 걸어 횡단했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나는 걷는다>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왜 걷는가?’ 아니 ‘왜 실크로드를 걸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걷는 문제에 관한한 ‘절대 권위가’에 가까운 그를 제주에서 만났다. 만나기 위해 제주로 갔다. 지난 10월 30일 열린 월드트레일콘퍼런스 포함 세 차례나 조우했다. 기자들만을 위해 기자간담회에서, 대중강연에서, 그리고 그에게 따로 메일을 보냈더니 친절하게 바로 답장을 보내줬다. 간담회와 강연은 불어로, 메일은 영어로 했다. 간담회에서 임순정 동시통역가의 세심하고 꼼꼼한 통역으로 프랑스어가 훌륭한 우리말로 되살아났다.


걷기를 성찰과 치유의 차원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그와의 첫 만남. 170㎝ 남짓 돼 보이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포근하고 인상 좋은 벽안의 노년 같은 중년이 제주 국제컨벤션센터(ICC) 연단 위로 올라섰다. 세계적인 도보여행가라는 강건할 것 같은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어디선가 본 듯한 캐주얼 복장에 등산화, 언제든지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 있는 그런 차림이었다.


첫째 며느리가 한국인… 한국과 인연 깊어


서툰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말을 건네고는 곧장 불어로 이어갔다. 한국이 첫 방문이 아니라며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는 정말 한국과 인연이 있어 보였다. 그의 첫 방문은 2004년 <나는 걷는다> 한국어판이 처음 나왔을 때였다. 그때부터 한국과의 인연이 훨씬 깊어졌다. 둘째 아들이 한국의 모 방송 국제기자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두 번째 방한했다. 이어 첫째 아들은 한국여자와 결혼하는 인연으로 이어져 가족이 모두 모이면 한국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소재가 된다고 전했다. 이번 한국행도 국제트레일컨퍼런스에서의 대중강연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친근한 이웃집에 다녀오는 자연스런 여행이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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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가 제주올레길을 걸으며 잠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조선일보DB

이어 그의 ‘걷기 이야기’로 넘어갔다. 방한기념으로 서명숙 이사장과 함께 제주올레길을 걸어보니 너무 감동적이라는 인사말로 서두를 꺼냈다. “바다와 어우러진 해안 절경은 마치 조각 작품들을 세워놓은 것 같았다”며 “화산절벽은 세계 유명 경매시장에 내놔도 금방 팔릴 수 있을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바다와 어우러진 제주올레 절경은 조각품 같아


한국에 관한 서두에 이어 자연스레 그의 도보여행으로 이어졌다. 그의 첫 걷기는 초보자들에게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우리 백두대간의 몇 배나 되는 거리를 걸으려 나선 것이다. 왜 그런 파격을 시도했는가를 알기 위해선 그의 이전 생활을 알 필요가 있다.


그는 1938년 프랑스 망슈 지방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어려운 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1929년에 찾아온 세계적인 대공황은 생활을 점점 더 힘들고 궁핍하게 했다. 7남매 중에 유일하게 고교를 입학한 그는 도저히 학교를 계속 다닐 상황이 못 됐다. 결국 자퇴하고 공식적인 학교생활을 끝냈다. 이후 그는 외판원, 항만 노동자, 토목공, 웨이터 등 온갖 굳은 일을 마다 않고 억척스럽게 생활했다. 그의 이런 생활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줬고, 그 적응력은 나중 그가 기자생활 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1964년 뒤늦은 나이에 독학으로 바칼로레아(대학 입시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이어 CFJ(Centre Rormation des Journalistes, 프랑스 기자협회의 공인을 받은 저널리즘 부문의 그랑제콜)를 졸업했다. 30여 년 기자생활 동안 그는 ‘파리 마치’ ‘르 마탱’ ‘르 피가로’ 등 유수한 프랑스 신문과 잡지사에서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며, 사회․경제면 칼럼니스트로도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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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올리비에가 국제트레일컨퍼런스 대중강연을 마치고 도보객들과 함께 제주올레길을 걷고 있다.

베르나르는 기자생활을 마치기까지의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과 때로 힘겨웠던 젊은 시절, 그리고 부러울 것 없던 성인으로서의 삶. 아주 풍요로운 두 인생을 살았다. 당시 내 나이 예순 하나, 노년에 가까운 중년이었다. 처음엔 정치부, 나중엔 경제부 기자였던 내 직장생활은 1998년에 막을 내렸다. 인생의 세 번째 시기인 그 당시 나는 느림과 침묵에 굶주려 있었다.”

그는 은퇴 뒤 극심한 우울증과 아노미에 가까운 혼란상태에 빠졌다. 결혼 뒤 25년 간 같이 여행계획을 세웠던 아내와의 사별, 그리고 은퇴 뒤 찾아오는 공허함, 아들들의 독립 등은 그의 존재 자체를 뒤흔들었다. 삶의 의미가 없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미수에 그쳤다. 실제로 그가 할 일은 없었다.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걷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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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가 실크로드를 걸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전혀 남기지 않아 책 출간을 위해 출판사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걸을 때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서 걷고 있다. 사진 효형출판 제공

걷자고 작정했다. 은퇴 생활 첫 해에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산티아고 순례길)를 선택했다. 콤포스텔라는 유럽사, 특히 기독교 역사에 길이 전하는 중요한 길이었다. 노르망디에서 갈리시아(Galicia)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길 중의 하나이자 고난과 순례의 역사가 서린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2300㎞를 당나귀처럼 등에 가방 하나 메고서 출발했다. 파리를 떠날 때 우울했던 상황이 하루 25㎞씩 3개월을 걸은 뒤 점점 더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콤포스텔라 길의 끝에 도달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한창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순간 멈췄다. 더 걸을 만한 길이 없을까 고민했다. 반짝하는 순간 새로운 길이 머리에 떠올랐다. 바로 인간과 문명의 길이고, 인류 역사상 가장 긴 길인 실크로드를 발견했다. 걷기에 대한 갈증도 충분히 해결될 것 같았다. 역사는 어릴 때부터 그의 주요 관심사였다. 역사적 관심과 걷는 즐거움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이었다.

<세계적 도보여행가 베르나르, 그는 왜 실크로드를 걸었을까?>에 계속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3 Comments

  1. 한국인

    12.12,2012 at 7:28 오후

    실크로드를 혼자 걸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웬만한 용기와 인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게다가 새롭게 다가오는 다양한 모습은
    정신적으로도 유익한 점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2. 엄지와 검지

    12.13,2012 at 12:45 오전

    생각의 차이가 결과를 만들어 내는것 같습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다 이룰 수 있거든요!

    실크로드를 실현시키신 베르나르가님 화이팅!!! 임다   

  3. 인회

    12.13,2012 at 4:29 오후

    대단합니다.
    모든 인생이 동전의 앞뒤면같습니다.
    가치기준을 바꾸면 쉬어지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못하고 사니 생각만 가득하지요.
    그러다 하나씩 내려놓으면 뭐든지 할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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