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하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박경리의 ‘토지’, 그 토지를 배경으로 지은 마을이 하동 최참판댁이다. 실재하지 않았던 마을을 소설 속에 나온 배경을 그대로 본떠 지은 가상 속의 마을인 셈이다.
최참판댁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이정표가 방향을 가리킨다.
소설 ‘토지’는 최참판댁의 가족사를 중심축으로 19세기말에서 해방까지의 시간적 배경 속에, 경상도 하동 평사리에서 시작해 만주와 서울․도쿄 등지로 옮겨가는 공간적 배경을 넓힌 소설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한국인의 삶을 규정한 파란과 격동의 역사를 담은 대하소설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소설가 박경리는 무려 26년 동안 이 소설을 집필했으며, 한국 근․현대사의 전 과정에 걸쳐 여러 계층 인간들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최참판댁 집 안에서 평사리들판을 내려다봤다.
최참판댁 집 안에 있는 소설 토지에 대한 설명과안내도.
소설 속의 최참판댁을 실재화 시킨 곳이 평사리 최참판댁이다. 최참판댁은 박경리씨가 세상을 떠난 2008년 준공했다. 최참판댁이 탄생한 배경은 순전히 박경리씨 덕분이다. 1985년 모 방송에서 드라마 ‘토지’를 방영할 때 박경리씨가 PD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당시 박씨는 PD들에게 “섬진강과 지리산, 악양 평사리 들녘 등 아름다운 자연은 모두 갖춘 곳이다”며 “내 작품보다 영상에 더 치중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최참판댁 안에는 박경리 선생을 추모하는 문학관과 다양한 건물이 있다.
그 때 모인 사람들은 “작가 박경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고,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작 평사리에 최참판댁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하동 평사리 문학관 최영욱 관장을 포함한 하동군 관계자들이 뜻을 모아 최참판댁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3천여 평 규모를 예상했으나 점점 커져 지금의 1만3천여 평 규모가 됐다.
최참판댁은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 집과 같이 지었다.
박경리 선생에 대한 간단한 연보.
박경리씨의 딸 김영주 관장도 “악양 평사리는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되는 3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다”고 했다. 먼저 지리산을 업고 섬진강을 안은 지역 중에서 만석지기 2~3명은 낼 수 있는 넉넉한 농토가 있는 지역이고, 둘째로 민족적 역사적 상처를 안고 있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함께 있으며, 마지막으로 박경리씨의 고향인 진주말, 즉 경상도 방언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하동엔 박경리씨와 절친하게 지낸 언니가 거주했으며, 박씨도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그래서 탄생한 명소가 최참판댁인 것이다.
하동 최참판댁에는 지금 봄이 오고 있다.
최참판댁의 연 방문객은 약 60만~70만 명에 이르며, 박경리토지길 1코스 종점이자 2코스 시작점인 화개장터는 연 130만 명에 달한다. 화개장터는 무료지만 최참판댁 입장료는 1,000원이다. 최참판댁 수입만 연 4억 원 정도 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최참판댁은 소설 속의 가상의 세계가 실재를 먹여 살리는 셈이다.
소설 속의 배경에 맞게 지었으며, 마치 사람이 살고 있는 집 같다.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며, 평일에도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드라마 토지를 촬영할 때 사용했던 세트장도 최참판댁 바로 앞에 있다. 초가집이 꽤 운치있어 보인다.
최참판댁에 있는 연못과 정자.
안채로 사용했던 집채엔 각종 주렴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