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춘향전>. 어느 따뜻한 봄날 이팔 청춘 남녀가 처음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눴던 내용을 소설로 만든 작품이다. 신분을 뛰어 넘는 청춘 남녀의 사랑이야기와 부패한 수령에 대한 통쾌한 응징 등 시대를 넘어 공감되는 요소들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당대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그 <춘향전>이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일까? 많은 사람은 뜨거운 사랑이야기와 부패한 관료를 응징하는 문제에 사로잡혀 소설에 나오는 모든 내용을 진실로 또는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춘향전이 허구적 상황을 담은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 알다시피 소설은 적당한 팩트에 허구와 과장을 적절히 섞어놓으면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물론 가장 있음직한 상황들을 설정하고 있어, 독자들이 속아가기 쉽도록 하고 있다.
춘향전 마당극에서 변사또는 밧줄에 걸려 벌을 받고 있고, 오른쪽 춘향과 이도령은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춘향전>에는 어떤 허구들이 숨어 있을까? <춘향전>은 퇴기(退妓)의 딸 춘향과 남원부사의 아들로 잘 나가는 양반집 선비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다. 신분의 벽을 극복한 남녀의 결합이지만 신분사회가 무너져가는 조선후기 사회에서도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춘향전>의 대표적인 허구적 상황은 이도령이 춘향과의 만남 후 1년여 만에 과거에 장원급제한다는 설정이다. 조선시대 과거제도는 3년마다 한 번씩 뽑는 식년시(式年試)와 특별한 경우 실시하는 별시(別試)로 구성되어 있다. 문과 급제자가 33인이다. 식년시는 3년에 전국에서 33인이 뽑히는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만큼 힘든 관문이다. 또한 문과에 급제하려면 소과에 해당하는 생원시나 진사시를 거쳐 성균관에서 일정기간(대개 4~5년) 수학해야만 한다. 이몽룡이 문과를 거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명승 제33호인 광한루원에 있는 춘향의 영정
그럼 별시 합격의 가능성이 남는다. 이몽룡이 별시를 쳤을 가능성은 시험 문제가 ‘춘당춘색 고금동(春塘春色 古今同)’으로, 창덕궁 춘당대에서 실시한 시험이라는 점과 시험을 치룬 후 바로 왕이 급제자들을 시상했다는 기록에서 나타난다. 이몽룡이 별시에 장원급제했다는 설정을 해도 천하의 인재가 모여드는 과거시험에서 1년여 만에 수석 합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처녀가 그네 뛰는 것을 충분히 감상하고 적당한 로맨스를 즐겼던 위인인데도 말이다. 물론 점찍은 여자 춘향을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어쨌든 <춘향전>은 극적 효과를 위해 한 천재를 탄생시키고 있다.
비록 장원급제이긴 하지만 신출 관리 이도령이 바로 암행어사로 나가는 것도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다. 대개 과거에 급제하면 종9품이라는 최하위직에서 출발하는데 장원급제인 경우는 품계를 더해서 종6품직을 제수했다. 따라서 장원급제자는 동기생 보다 보통 4~5년 정도 승진 시기가 빠르다. 암행어사로 파견될 수 있는 최소한의 직급이 종 6품직으로 이것도 가능한 설정이긴 하지만, 암행은 말 그대로 비밀리에 왕이 지시한 업무를 처리하는 것으로 왕의 시종신(侍從臣)을 파견하였다. 과거에 급제한 신참을 바로 암행어사로 파견할 만큼 조선왕조가 엉망이지는 않았다.
광한루원에 있는 완월정의 모습
이도령이 남원에 파견된 사례에서는 소설적 허구의 극치를 이룬다. 조선시대에는 상피제가 엄격히 적용되어 자신의 출신지에 암행어사를 파견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연고지역에 나가 안면이 있는 벼슬아치들의 청탁을 받는다면 공정한 암행의 업무를 어찌 수행할 수 있겠는가. 상피제의 적용은 부정과 청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조선시대 내내 지켜졌다.
<춘향전>에서 독자의 가장 큰 공분을 자아내는 부분은 바로 춘향이 투옥되는 부분이다. 특히 영화로 제작된 <춘향전>에서는 춘향은 머리가 헝클어진 채 긴 칼을 목에 두른 처참한 상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낸다. 과연 수청을 들지 않는 춘향이 살인을 당할 만한 대역죄인로 설정한 점도 지나친 허구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거의 나타날 수 없는 설정이다. 조선시대에는 수령이 함부로 사법권을 집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며, 단지 자신에게 수청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목에 칼을 씌우는 죄는 더더욱 줄 수 없었다. 물론 실록에 이런 사례들이 일부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은 그만큼 특수한 경우임을 반증한다.
춘향과 이도령이 처음 만났던 광한루원의 그네
고전소설이건 현대소설이건 소설은 모두 그 시대의 거울 같은 역할을 한다. 소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시대의 부조리와 모순을 과감히 폭로하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대리만족감을 불러 일으켜 준다. <춘향전>은 수령의 부패와 탐학, 청춘남녀의 사랑, 선비의 출세와 여성의 절개 등 당시 사회에서 중시되던 덕목과 시대상을 적절히 반영하면서 사람들의 가슴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설에서 설정된 장면들이 모두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보다 극적인 효과를 담아내기 위하여 과장되고 허구적인 사실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된 것도 주목해야 할 사실들이다. 소설을 읽을 때 ‘옥(玉)의 티’를 찾듯 역사적 인식이나 배경을 갖고 있으면 소설을 읽는 재미가 더욱 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