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은 임도가 산허리를 휘감고 있다. 그 둘레가 마라톤 완주거리와 비슷한 43㎞가 조금 더 된다. 임도 중간 지점에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활강코스가 건립될 예정이다. 1990년대 후반 한때 수렵장을 추진했던 흔적인 임도 아래쪽으로 철망으로 둘러쳐져 있다. 그 위쪽이 산림자원보호구역(이하 보호구역)이다. 보호구역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노란색과 빨간색 리본, 번호 붙은 나무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표시가 된 초본과 목본들은 전부 이식대상들이다. 최대한 서식환경과 동일하게 조성하기 위해 깊이 60㎝ 이상 면적 1㎡의 흙을 같이 옮길 계획이라고 한다. 슬로프는 좌우 폭이 50m 내외 정도 된다고 한다. 그 좌우 끝에 연속해서 리본으로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리본 안쪽이 산림훼손이 되는 지역인 셈이다.
정선 국유림관리소 유동우씨가 이식대상 수종 옆에 앉아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자생수종인 뱀고사리도 리본을 걸고 있다. 어디론가 이식대상이다. 왕제비꽃, 졸강제비꽃도 이식준비를 하고 있다. 풍부한 식생은 숲에 들어서는 순간 느낄 수 있게 한다. 교목과 관목 등 목본과 초본들이 층층이 자라고 있다.
고사리와 투구꽃 등 여러 나무들을 한데 묶어 표시되어 있다. 가리왕산의 고유수종들은 전부 이식된다. 왕사스래나무도 옮길 채비를 하고 있다. 새 서식지에서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릴지 미지수다. 사스래나무와 거제수나무는 보통 독자적으로 군락을 이루지만 가리왕산에서는 혼재림을 이루고 있다. 가리왕산의 고유수종인 왕사스래나무는 다른 곳에서는 흔치 않은 수종이다.
중봉과 하봉 사이에 바위를 뚫고 나온 주목이 강인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꽃이 피면 노루오줌 냄새가 난다는 노루오줌도 리본을 달고 있다. 달음나무, 애기나리, 국수나무, 함박나무, 은대난초 등도 다들 이사를 준비하는 듯 들떠있는 듯하다. 마치 학교에 갓 입학한 초등학생들이 이름표를 달고 선생님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 같다.
이들의 사정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딱따구리가 연속으로 나무 쪼아 댄다. 나무 쪼는 소리가 여러 차례 들린다. 요즘은 딱따구리가 개체수가 늘어 도심 가까운 북한산에서도 가끔 딱따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때는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됐으나 지금은 형편이 많이 좋아졌다. 4음절로 우는 검은등뻐꾸기도 울고 있다. 듣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홀딱 벗고~ 홀딱 벗고~’라 들리기도 하고, ‘빡빡 깎고~ 빡빡 깎고~’라 들리기도 한단다.
가리왕산의 희귀식물이자 최종 보전대상인 병풍쌈과 산마늘도 어김없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말라리와 산앵두 등도 풀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 이는 바람에 살짝 모습을 내민다. 참나무에 기생하는 표고버섯도 여러 개가 동시에 보인다. 환경지표종으로 자연환경이 뛰어난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것들이다. 숲 한쪽엔 멧돼지 집도 있다. 풀로 아담하게 덮여 있어 새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 같다. 가리왕산에서 멧돼지가 흙을 파헤친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멧돼지는 얼레지 뿌리를 좋아하고, 노루는 얼레지 꽃을 좋아해 초봄이면 얼레지가 수난을 당한다고 한다.
연결도로가 개설될 하봉과 중봉 사이의 능선은 의외로 평평한 지역이며, 우거진 숲에 다양한 식생을 자랑하고 있다.
가리왕산은 사실 국제스키연맹 관계자들이 현장에 와서 보고는 워낙 자연적으로 조성이 잘 된 지역이라 나무를 이식하고 돌만 걷어내면 바로 스키장으로 활용하는 있는 천혜의 활강장이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때로는 급경사, 때로는 완경사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고 한다. 아마 그 천혜의 조건 때문에 지금 가리왕산이 위기에 몰려 있는 형국이다.
올림픽 활강경기장의 기본요건인 표고차 800m 이상, 평균 경사도 17도 이상, 슬로프 길이 3000m 이상이라는 3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대상지는 가리왕산이 가장 뛰어나다는 결론이 이미 났다. 환경단체가 대체지로 제기된 두위봉, 만항재, 상원산 등을 대상으로 자문위원회에서 대안지 검토에 착수한 결과, 하나둘씩 제외되고 남은 지역이 가리왕산뿐이었다. 먼저 서울대 이차복 교수가 제안한 상원산은 주경기장에 가까운 대안지라는 장점이 있었으나, 관중석 등 시설부지 확보에 산림훼손과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제외됐다. 만항재는 폐광지역 복구라는 장점이 있었으나, 지형훼손과 남서사면으로 설질관리에 대한 위험부담이 높아 부적합하다는 판정이 나왔다. 두위봉은 산림청에서 제시한 대안이었으나, 자문위원회에서 현지 방문 후 하단부의 완경사가 길어 부적합다고 평가했다. 결론은 가리왕산뿐이었다.
유동우씨가 조경용으로 몇 억원을 호가한다는 돌배나무를 보고 있다.
능선 위로 올라섰다. 중봉과 하봉의 중간지점이다. 의외로 평평하다. 곤돌라 리프트와 헬기장 등이 건립될 예정이라고 한다. 당초 중봉에 시설물을 조성할 예정이었으나 주목이 너무 훼손되어 위치를 대폭 하향 조정했다. 주목 군락도 없는 곳이다. 만병초, 눈측백나무, 주목 등 희귀종 90% 이상이 중봉 근처에 서식하고 있다, 그래서 스키활강장 건립장소를 1㎞가량 내려 산림훼손을 최소화 했다.
중봉과 하봉 사이에 바위를 뚫고 나온 주목이 강인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이 주목 양쪽으로 연결도로가 날 예정이며, 길이 개통될 경우 명물이 될 전망이다.
하봉으로 가는 중간쯤에 바위를 뚫고 나온 주목 한 그루가 단연 눈에 들어온다. 그 주목을 보호하기 위해 주목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연결도로를 개설할 방침이다. 스키장이 개통되면 명물이 될 것 같다. 최대한 보호할 수종은 보호하고, 수종 훼손은 최소화 하는 원칙을 고수했다고 한다.
이어 조경용으로 몇 억원 호가한다는 돌배나무도 보인다. 흔히 명이나물로 불리는 산마늘도 서식하고 있다. 다 다른 지역에서보다 가리왕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종이다.
남자 활강장이 건립될 예정인 하봉 정상 이정표.
하봉에 도착했다. 하봉에서 하산길로 빨간색 리본이 걸린 나무들이 줄이어 있다. 그 안쪽이 슬로프 조성예정지역이다. ‘정선 국유림관리소’ ‘정선군 산림환경과’라고 적힌 리본도 걸려 있다. 이곳의 식생도 올라갈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임도까지 2㎞ 남짓 내려왔다. 철망 펜스가 쳐진 곳에 남자 활강코스 예정지역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이 철망도 올 하반기에 시작될 공사로 없어진다.
조경용으로 몇 억원을 호가한다는 돌배나무를 지나치고 있다.
산림청은 활강경기장 건설 이후에도 가리왕산의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산림청은 올림픽 이후 원칙적으로 산림을 복구시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녹색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에서도 “국가 대사에 무작정 반대하기엔 무리인 부분이 있다”며 “올림픽 이후 경제적 가치를 따져 영구 스키 시설로 갈 것인지, 완전 생태복원을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산림청과 환경단체는 가리왕산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다가 ‘산림훼손 최소화’와 ‘국가 대사인 올림픽의 성공’에 상당히 접근한 모양새다. 과연 그 결과는 어떻게 더 근접한 결론으로 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여자활강코스가 들어설 예정지역을 알리는 이정표.
남자활강코스가 들어설 예정지역을 알리는 이정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