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초 7대륙 정상 최고령 등정하고, 아시아 두 번째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김명준씨가 남극 마라톤 참가했을 때는 이미 전 세계 가보지 않은 데가 없었고, 비행기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 이 대회는 사위와 함께 갔다. 마라톤을 거의 완주했을 무렵, 비행기 한 대가 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저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기상 때문에 남극에서 12일 동안 발을 묶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기록은 중요치 않았고, ‘저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완주하자마자 바로 짐을 챙겨 사위와 함께 비행기를 탔다. 사위는 “힘들다”고 투덜거렸지만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그 비행기를 타지 않은 사람은 정확히 12일 동안 남극에 갇혀 있었다.
세계 각지로 찾아다니는 마라톤, 등정 등으로 그는 언제, 어떻게 사업을 할까, 궁금했다. 한 마디로 누구보다, 어느 사업체보다 정상적으로 사업은 잘 진행되고 있다.
그린랜드 최고봉 에니 베이스캠프에서 세계적인 탐험가 벤 사운더스(Ben Saunders)와 함께 기념촬영 했다.
2012년 그의 외국 방문기를 한번 들여다봤다. 공장이 중국에 있기 때문에 자주 방문했다. 1월11~21일 홍콩 방문, 4월30~5월10일 중국과 베트남 방문, 6월29~7월16일 중국 방문, 8월26~9월4일 중국 방문 등은 사업상 일정이었다.
마라톤은 3월18일 LA마라톤, 4월14일 무어트레일 산악마라톤, 4월31일 다이아몬드 밸리레이커 마라톤, 5월19일 비숍 하이시에라 울트라마라톤, 7월29일 샌프란시스코 마라톤, 8월18일 아일랜드 레이크자빅 마라톤, 10월7일 롱비치 인터내셔널 마라톤, 11월10일 카타리나 에코 산악마라톤 등에 참가했다. 등반한 산은 7월12~13일 중국 태산, 10월30일 인도네시아 세메루, 11월24일 카메룬 카메룬산, 12월1일 우간다 머그헤리타 등이다. 도대체 철인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빡빡한 일정을 보낼 수 있을까,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김명준씨가 2006년 당시 세계 7대륙 최고령으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있다.
지난 9월7일 중국 가는 길에 잠시 한국에 들렀다. 17년 전에 첫 지리산 종주 기억을 잊지 못해 다시 하고 싶다고 친구들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당연히 친구들도 “OK”였다. 내심 체력도 테스트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당시엔 19시간 걸렸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될까 싶었다.
서울고 동문산악회 4명과 함께 나섰다. 9월7일 오후 10시10분 서울에서 진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8일 새벽 3시 중산리에 도착해서 3시40분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일행 중 김명준씨가 제일 컨디션이 좋은 듯 발걸음이 빨랐고 가벼웠다. 바로 어제 서울 왔는데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싶어 한 명이 “잠을 편안하게 주무셨는가 봅니다?”하고 물었다. 이틀 동안 4시간 정도 잔 게 전부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차도 안 맞을 텐데 4시간 잔 사람이 몸이 저렇게 가벼울 수 있는지 다들 의심할 정도였다. 8일 새벽 3시40분 중산리를 출발한 지리산 종주는 노고단에 오후 5시55분 도착, 화엄사에 9시10분 도착을 끝으로 마쳤다. 그리고 구례구역에서 무궁화호 승차하고 익산역에서 KTX로 갈아탄 뒤 9일 오전 1시30분 용산역 도착해서, 그날 오후 4시 LA행 비행기로 서울을 떠났다. 철인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일정이었다. 지리산 종주(중산리~천왕봉~노고단~화엄사)도 50대 초반(1995년)에 19시간 걸린 것을 70대(2013년) 들어서 17시간 반 만에 끝내는 철완을 과시했다. 오히려 더 젊어지고 체력이 좋아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미국으로 간 것이다.
그린랜드 최고봉에서
산을 다니면서 전혀 의외의 소득도 있었다. 재미 한인산악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북한의 명산 등반계획을 세웠다. 단장을 맡아 10명이 방북하기로 했다. 뜬금없이 안내원이 단장을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순간 60여 년 전 피난 올 때 생이별한 아버지와 형님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했는데, 그 생각이 그대로 맞았다. 형님과 조카들을 극적 상봉한 것이다. 산 때문에 북에 두고 온 형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꿈보다 더한 현실을 맞이했다. 산이 고맙고 감사할 뿐이었다.
인도네시아 최고봉 케린치 정상에서.
또 있다. 제대로 체력훈련을 하고 등정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대한 수기 공모에 ‘아! 에베레스트’란 제목으로 월간 <신동아>에 응모했다. 원고지 230매 가량 쓴 수기가 우수작으로 당선되어 10월24일 상금 500만원을 받기 위해 또 한국에 한 번 더 오게 됐다. 산이 그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줬다.
세계 7대륙 최고령 등정 기록을 보유했던 김명준씨가 자신의 등정기록과 마라톤 기록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는 왜 산에 갈려고 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도 사실 이에 대한 뚜렷한 답이 없는 형편이다. 답이 궁색한 것이다. 하긴 정확한 답이 없으니 세상 어느 누구도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으리라. 그는 히말라야에 잠든 ‘영원한 산악인’ 박영석 대장을 히말라야에서 만났을 때 일화로 대신했다. 그가 먼저 박 대장에게 물었다.
터키 최고봉 아라랏다 정상에서.
“자네는 너무 무모하게 등정하는 것 아닌가? 자네는 왜 산에 갈려고 하는가?”
“저는 팔자니까 합니다. 근데 선배님은 왜 오르려고, 이 고생을 하십니까?”
그는 말했다.
“그 때 저는 뚜렷한 답을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글쎄요, 해야되나보다 해서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가 박 대장과의 일화를 소개한 건 박 대장의 말이 일부 그의 심정을 대변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근데 그는 사업가이지 산악인이 아닌데, 팔자는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이란 최고봉 다나만드 정상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하실 계획이십니까?”
“이번 지리산 종주에서 내 체력상태를 확인했으니 당분간 더 해도 될 것 같아요. 힘 닿는데 까지 할 생각입니다. 마라톤도 뛸 수 있는데 까지 뛸 것입니다. 주변에서는 70세가 넘었는데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안 하면 아무 것도 안 되더군요. 세계 50개 독립봉 전부는 다 못할 것 같고, 무리하지 않게 되는 데까지 할 겁니다.”
인도네시아 최고봉 세머루 정상에서.
목표가 뚜렷해야지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외견상 전혀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달성한 그의 기록을 보면 목표가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한 눈 부신 성과를 거뒀다. 정말 강해도 너~무 강하다. 드러내 보이지 않은 그의 ‘내공’덕분일까. 정말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