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터키관계는 한국과 일본 관계 못지않게 앙숙이다. 아니 한일관계보다 훨씬 더 심한 적대적 관계다. 지난해 12월초 영국언론은 그리스를 방문한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터키 총리가 안토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와 고위급 협력회의를 개최한 결과 무역과 관광, 에너지, 불법이민 근절 등의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공동성명은 “상호 존중과 신뢰, 국제법을 기반으로 좋은 이웃국가 관계를 촉진하자”고 밝혔다. 사실 이 정도의 보도라면 웬만한 국가에서는 별로 뉴스로 취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앙숙관계인 두 나라가 손을 잡고 좋은 관계로 나가보자고 하니 뉴스가 되는 것이다. 두 나라 관계는 그 정도다.
언제부터 그리스와 터키가 앙숙관계가 됐을까? 정확한 시점과 유래를 아는 역사학자들은 없지만 두 나라의 역사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알려진 대로 그리스는 서구문명의 기원이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아크로폴리스,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 소크라테스 등 서구문명은 그리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기원 전 강력한 도시국가를 건설한 그리스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인근 국가들로 진출한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터키는 당연히 그리스의 첫 번째 진출국이었다. 터키에 그리스와 유사한 신화가 많이 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통일된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터키 인도까지 진출한 알렉산더는 강력한 국가를 건설한다. 하지만 그의 사후 그가 지배했던 국가는 다시 산산조각 난다.
알렉산더의 뒤를 이어 로마가 등장한다. 로마는 그리스와 그 주변국을 점령한다. 거대한 국가는 동서로마제국으로 나눈다. 서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에 있고, 동로마는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수도로 정하고 통치한다. 수세기 동안 통치한 동로마는 서서히 힘이 쇠약해진다.
이슬람국가인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1453년 쇠약해진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면서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킨다. 이슬람국가인 오스만투르크는 수백 년 간 그리스가 있는 펠레폰네소스 반도를 지배한다.
그리스는 1821년부터 1829년까지 독립운동을 벌여 1830년 독립을 쟁취한다. 다시 그리스란 이름의 국가를 되찾은 것이다. 무려 400년간 오스만의 지배를 받았다. 이와 같이 근대까지 그리스와 터키는 서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계속 반복해왔다. 그 과정에서 민족도 상당히 중화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그리스의 역사와 터키의 역사가 상당부분 중복되는 측면도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400년간 지배를 받은 그리스가 터키를 미워하는 건 당연하다고 보는 측면도 있다. 마치 한국이 일제 36년을 겪은 뒤 미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더 결정적인 감정은 현대 들어서 폭발한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터키는 독일편에 가담했다가 패하고, 그리스는 연합국측에 가담해 전승국 대열에 선다. 여기서 터키는 많은 땅을 빼앗긴다. 발칸반도의 땅은 이스탄불만 남겨놓고 모두 넘겨준다. 이 때 400년간 터키의 지배를 받은 그리스는 결정적으로 터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사건을 일으킨다. 그리스는 과거 비잔틴 제국의 영광을 되돌리고 소아시아, 즉 아나톨리아 해안과 에게해 일대의 그리스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스탄불을 함락시켰을 뿐만 아니라 터키의 본토인 아나톨리아까지 원정을 가서 초토화 시킨다. 그리스 원정군은 열강의 도움을 받으며 별 어려움 없이 오스만 제국 영토로 진군하여 많은 영토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터키의 자존심을 산산조각 무너뜨린 진군이었다. 어쩌면 감정 대 감정싸움으로 벌어진 전쟁이었다. 하긴 전쟁 자체가 감정싸움인 측면도 있긴 하지만. 이로 인해 두 나라는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현재 터키의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에 의해 세력을 규합한 터키 독립군은 각지에서 그리스군과 전투를 벌여 대항했고, 결국 초반의 열세를 뒤엎고 터키군이 각지의 그리스군을 거의 대파하면서 마무리됐다.
지도를 보면 터키 코 앞에 있는 지중해의 섬까지 그리스의 영토로 표시돼 있다. 배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섬도 그리스령이다. 그러니 심심찮게 영토분쟁, 아니 섬분쟁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