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蘭)의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꽃을 피우지 않고 포자로 번식하는, 잎도 뿌리도 없이 빗자루 같이 자라면서 세계적으로 단 두 종밖에 없는 식물, 솔잎란. 일명 ‘솔잎고사리’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가 북방한계선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문순화 사진작가의 눈은 비켜갈 수 없었다. 문 작가가 제주도가 아닌 전남 해안지방에서 자생지 군락을 처음 확인하고 알렸다. 학자들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제주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하는 <향토문화대전>에는 ‘제주도가 분포의 북방한계선인 아열대성 식물로서 천지연, 천제연, 돈네코계곡, 무수천, 김녕리 등지의 바위틈이나 나무줄기에 매우 드물게 자라며, 상록 다년초로 멸종위기야생식물Ⅱ급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 작가는 식물분류학자 현진오 박사와 함께 전남 해안지방으로 향했다. 현 박사가 이곳에서 자생군락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학계에 제주 이북의 지역에 자생지를 처음 인정하게 됐다.
문 작가가 처음 솔잎란을 확인한 건 1980년대 즈음. 야생화를 찍으로 전국을 한창 누비던 때다. 마치 한국 야생화는 전부 본인이 꼭 기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이라고 가진 듯 본인이 보지 못했고, 처음 보는 야생화는 무조건 렌즈에 담을 때였다. 본인 스스로 “식물원에는 웬만한 식물들이 다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문순화 사진은 식물원에서 나왔다라는 말을 아예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 식물원에는 아예 출입자체를 안한다”고 한다. 그 정도니 당연히 한국의 야생화가 있는 모든 곳은 그가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가본 제주도 김녕 바위틈에서 그날 솔잎란 대형군락을 발견했다. 당시 처음 본 야생화였으니 당연히 좌우, 앞뒤, 상하로 솔잎란의 모든 것을 렌즈에 담았다. 기록은 남았다.
하지만 문 작가가 몇 년 뒤 가본 제주 김녕의 솔잎란 군락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관상용으로 사람들이 마구 채취해갔던 것이다. 남아 있지를 않았다. 결국 발견한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군락은 없어져 버렸다. 덩달아 멸종위기야생식물Ⅱ급으로 지정됐다.
그 뒤 비슷한 개체가 전남 해안지방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지인한테 받은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2006년쯤 혼자 달려갔다. 하루 종일 그 근처를 찾아 헤맸다. 풍란 30여 개체를 확인했다.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샅샅이 뒤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솔잎란이 서식하고 있었다. 그 부근에 지네발란도 군락을 이뤄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산삼을 찾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몇 년 뒤 그곳을 다시 찾아가보니 풍란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고, 바위틈에서 자라는 솔잎란만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원색한국식물도감>에는 아직도 제주도에만 서식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난대의 수상이나 바위틈에 난다. 제주의 남쪽 해안에 나며 일본, 대만, 중국의 열대에서 아열대에 걸쳐 분포한다. 해안 근처에서 자라는 다년생 상록성 양치식물. 높이 10~30㎝. 균근이 발달하며, 겉은 갈색 헛뿌리로 덮이지만 진정한 뿌리는 없다. 줄기는 녹색이고, 밑에서부터 2개씩 계속 갈라져서 전체가 빗자루처럼 된다. 작은 돌기 같은 것이 잎이며, 2개로 갈라지고 겨드랑이에 포자낭이 1개씩 달린다.’
솔잎란이란 이름은 한자명을 번역한 것이며, 녹색 잔가지가 솔잎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속명은 그리스어 psilos(naked, smooth)에서 비롯됐다. 잎이 없는 매끈한 지상경(地上莖․땅위 줄기)을 비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