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서울은 예로부터 명당이었다. 고려시대 수도인 개성이 개경이었고, 경주는 동경, 평양이 서경, 한양이 남경으로 정해질 정도로 이미 풍수적으로 인정받은 땅이었다. 한국의 자생풍수 창시자로 알려진 도선은 고려가 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새 왕조를 열 것으로 예언했지만 도선이 개성의 지리를 살필 때 날씨가 흐려 삼각산의 모습을 미처 보지 못했다는 우스개 같은 일화가 있다. 그래서 고려 왕조는 500년으로 끝나고 한양에 새로운 왕조가 세워질 것이라고 다시 예언했다고 전한다.
그 예언 때문인지 어쩐지 ‘길지’ 한양은 조선 왕조의 새 도읍지가 됐다. 한양은 그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한양(漢陽)이 기록에 처음 등장한 건 신라 35대 경덕왕 때(755년)다. 고을 이름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부터다. 한양의 ‘한(漢)’은 한강을 말하고, 양은 음양의 ‘양(陽)’이며, 곧 따뜻한 땅이다. 풍수에서는 산의 남쪽을 양이라 하고, 물의 북쪽도 양으로 본다.
따라서 산의 남쪽이면서 동시에 물의 북쪽에 위치한 한양은 풍수적으로는 완벽한 땅이었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도 한양을 “일국산수의 정(精)과 신(神)이 다 모였다”고 말할 만큼 한양의 지리적 의의는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이미 삼국시대부터 고구려․신라․백제는 이 곳을 전략적 거점으로 두고 다투어온 사실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에 새로운 궁궐을 짓도록 하고 도성을 쌓았다. 도성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연결하는 산의 능선을 따라 축성했다. 둘레가 약 20㎞ 된다. 처음에는 어디서 어디까지 성을 쌓아야 할지 계획이 서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도성 공사를 하면서 큰 눈이 내렸다. 눈이 하나의 선을 따라 선 밖에는 눈이 쌓여 있고, 안쪽으로는 눈이 없었다. 이성계는 이는 우연이 아니고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그 선을 따라 축성하도록 했다. 사람들은 눈이 울타리를 만들었다고 해서 ‘설(雪)울’이라 불렀고, 설울이 ‘서울’로 발음되면서 오늘날 서울이 됐다는 설이다. 따라서 서울이라는 지명은 조선의 개국과 더불어 생겼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