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도, 사상도, 학문도 아닌 것이 수천 년 동안 상하계층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마 풍수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과학도 아니고 더더욱 미신도 아니다. 시대를 거치면서 때로는 과학으로, 때로는 미신으로, 때로는 사상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도대체 풍수의 정체는 뭘까? 왜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의식을, 사상을, 문화를 그렇게 지속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을까? 또한 서민들의 삶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요인은 뭘까?
풍수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중국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모든 학자들이 인정한다. 언제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수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자생풍수는 900년 전후 고려 말 도선(道詵)국사에 의해 창건됐다는 사실만큼은 정설이다. 도선이 지리산 이인(異人)으로부터 구례 섬진강변 사도리에서 풍수를 전수받아 한국 자생풍수를 체계화했다고 전한다. 이는 도선이 자생풍수를 만들기 전에도 한국에 풍수란 개념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셈이다. 이같이 풍수는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흔히들 누구나 한두 번쯤 언급했을 좌 청륭, 우 백호, 남 주작, 북 현무도 풍수의 초보이론쯤 된다.
도대체 풍수가 뭘까? 한마디로 ‘땅의 모양을 해석하고, 실제 토지 이용 과정에서 어떻게 응용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고 학자들은 정의한다. 한국 자생풍수의 창시자 도선이 쓴 것으로 알려진 <道詵踏山歌(도선답산가)>의 일부 내용을 살펴보면 풍수에 대한 대충의 감이 떠오를 수 있다.
‘주작사는 북소리 은은히 일어나듯 그 산등성이 원만하고 현무사는 두 물길이 모이는 사이에 우뚝 솟았네. 그 안에 명당은 가히 만마를 싸안을 만하고 좋은 산곡은 평탄함과 첨예함이 조화를 이루어 바르고 온순하구나. 청룡사는 뱀이 꿈틀거리며 고개를 치켜든 듯하고 백호사는 조급하지 않아 사나운 줄 모르겠구나. (중략) 명당 뒤에 돌이 있으면 관직이 더 할 것이오. 명당 앞에 있는 돌은 마침내 형옥을 당할 징조일세. 안산 앞의 흉한 돌은 도병으로 망함이네. 묘 주위에 돌이 있으면 마음의 근본은 이룰 수 있으나 자손은 팔옥사를 면키 어렵다. 미방에 괴석이 있으면 장녀가 음란하고 태방에 흉석이 있으면 막내 딸이 음란하다. 쌍석이 무덤을 쏘는 듯하면 후에 저자거리 되기 십상이며, 이석이 흘러내리면 필경 객사하리라. 오방에 삼석이 있으면 필히 귀인이 난다. 주산 위에 둥그런 봉우리 있으면 세 명의 장사가 나는데, 그 중 높고 두터운 곳이 바로 명당일세. 청용이 중첩하여 누옥과 같은 형세를 이루면 자손에 응당 왕후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다. 산봉우리 세 개가 서로 마주하여 우뚝 솟아 있으면 문장과 필재가 높은 인물이 나타나리라. 산세가 공읍하는 듯하고 가득차게 둘러 있으면 부귀와 공명이 함께 하리라. (중략) 산꼭대기에 삼봉이 있으면 세상에 이름 있는 문장이 난다. 청룡이 큰 배와 같으면 부귀가 따르고, 백호가 노끈을 가로 지른 듯 보이면 여자가 목 매달아 죽는 일 생기리라. 백호가 굴곡하여 엎어질 듯 보기 싫게 달아나면 자손이 오래도록 저자거리에서 구걸 삶을 면치 못하리라.’
<도선답산가>는 누구나 알기 쉽게 간단한 내용으로 산세와 발복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산세와 발복의 매개체가 되는 고리가 바로 명당(明堂․bright court)인 것이다. 풍수는 자연과 인간을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준다. 자연은 풍수에서는 산수, 즉 산과 물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룬 곳이 풍수에서 생기 가득한 명당이다. 풍수의 모든 내용은 산과 물의 조화, 그리고 산수로 대표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살피는 데로 모아진다. 그래서 풍수는 산과 물의 조화를 살피는 지리학이다. 풍수를 영어로는 지리를 뜻하는 ‘Geo’와 예언이나 점(占)을 의미하는 ‘mancy’가 합쳐져 ‘Geomancy’가 된 것이다.
최창조 선생은 풍수의 목적에 대해서 “좋은 지기(地氣)를 얻기 위한 것이다. 특히 지기 중에서도 기(氣)를 얻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는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멈춘다. 따라서 생기의 지기를 얻으려면 그것이 흩어지지 않고 멈추게 해야 한다. 기가 흩어지지 않으려면 바람을 갈무리할 수 있는 산이 필요하고, 멈추게 하려면 물이 필요하다. 이로부터 풍수라는 용어가 생겼다”고 밝혔다. 따라서 풍수는 산과 물과 관련된 풍토를 판단하는 지혜로 정리될 수 있다.
풍수에서 말하는 명당이란 뒤에 찬바람을 막아줄 산이 있고(배산․背山), 앞은 탁 틔어 햇볕이 잘 들며(안산․案山), 좌우 양쪽에는 낮은 산자락이 비바람을 막아주고 포근하게 둘러싸인 안쪽을 냇물이 휘감아 흐르는 곳이다. 이른바 청룡, 백호, 현무, 주작의 사신사(四神砂․Sands of Four Spirits)를 갖춘 배산임수의 지형을 말한다. 풍수에서 사신사는 전후좌우에 있는 네 개의 산을 가리킨다. 이 사신사의 중심에 장풍(藏風․storing wind)과 득수(得水․gaining water)를 모으는 기(氣)가 응집된다.
물은 명당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기는 물을 만나면 멈춘다. 멈춤이 있어야 뭉침이 있다. 그래야 명당이 된다. 물은 크게 둘로 나뉜다. 명당수와 객수다. 명당수는 내수(內水․inner water)를 말하며, 서울로 치면 청계천이다. 사신사에서 흘러내려 모인 물이 명당 밖으로 빠져나가는 물길이다. 우리나라처럼 동고서저의 지세에서는 동출이 바람직하다. 객수(客水․unwelcoming rain)는 외수(外水․outer water)를 말하며, 서울에서는 한강이다. 이는 명당수를 받아들이고 명당을 감싸 안는다. 서출이 바람직하며, 이런 지세에서는 홍수 때 침수피해를 덜 수 있다.
풍수에서 산은 땅기운(地氣)이 발원하고 흘러다니고, 그리고 땅기운을 내뿜어내는 생명의 원천이다. 이른바 살아 꿈틀거리는 용(龍)으로 본다. 중국의 고대 문헌 <說文解字(설문해자)>에서 ‘산은 베푼다. 능히 기를 베풀고 퍼지게 하여 만물을 생성하게 한다’고 하고 있다. 이는 풍수의 산 관념이 동양적인 산에 대한 관념의 주류임을 잘 보여준다.
산은 물을 만나야 생명력을 충만하게 하는 생기(生氣)가 만들어진다. 풍수는 생기를 찾고, 생기를 설명하는 내용이 중요하다. 그래서 산과 물이 어떻게 배치되는가를 살피고, 이 배치에 따라 땅기운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살핀다. 풍수에서 땅에 대해서는 한의학에서 말하는 경락체계를 그대로 적용한다. 송나라 때의 채원정(蔡元定)은 “풍수사가 땅의 맥을 살피는 것과 의사가 사람 몸의 맥을 살피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훌륭한 의사는 맥의 음양을 잘 살펴 약을 조제하고, 훌륭한 풍수사는 땅에 있는 맥의 상태를 잘 살펴 혈(穴)을 정하게 되는데, 그 이치는 하나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맥의 음양을 따지는 것이 가장 중요시되는 대목이다. 청나라 풍수서 중의 하나인 <山法全書(산법전서)>에 ‘지리가의 핵심은 음양으로, 이것을 이해하면 어려운 일이 없다. 지리의 도(道)란 결국 음에서 양을 구하고, 양중에서 음을 찾는 일에 불과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풍수 논리의 핵심을 이루는 말이다. 결국 풍수가 찾으려는 명당은 음양이 조화를 이룬 땅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선조들은 땅을 통해서 발복을 구하곤 했다. 집터를 선택하고, 묘지를 정하고, 주거지역을 선정할 때도 항상 사신사를 잘 살피고 음양을 따져서 결정했다. 자연스럽게 알게 모르게 생활 깊숙이 풍수가 녹아들 수밖에 없었다. 현대 들어서 정치인들이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조상묘지를 이장하는 등의 행위도 강렬한 발복행위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던 안 되던 간에 심리적으로는 상당한 긍정효과를 거두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산수와 조화를 이루면서 인간생활의 안정을 꾀하는 토대를 풍수에서 구했다. 즉 풍수의 핵심이 바로 산수였다. 산수란 개념도 동양에서는 그냥 산(山)과 수(水)를 합치면 되지만 서양에서는 ‘mountain(산)’과 ‘water(수)’가 합쳐진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개념에서부터 근본적 차이를 보인다.
풍수의 본질은 비슷하지만 풍수의 발원지 중국에서 중요시되는 개념은 물(水)과 기(氣)였다. 중국 풍수(Fengshui)에서 말하는 길지(吉地․auspicious inhabitation)는 풍부한 기를 함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기는 땅 밑으로 흐르면서, 바람에 흩날리고, 구름으로 솟아오르고, 또한 비가 되어 내리는 순환과정을 거친다. 중국인들에게 최고의 길지는 풍부한 기를 안고 있으면서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을 꼽는다.
일본의 풍수(Husui)는 본토는 화산지대라 별 다른 특징을 보이지 않지만 오키나와지역에는 중국 풍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화산과 태풍이 잦은 관계로 마을을 보호하는 산림풍수(Mountain Forest Husui)에 관심을 가졌다. 일종의 풍수림이었다. 산림풍수는 살기 좋고 경관 좋은 마을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기 좋은 마을에서부터 시작됐다. 태풍과 화산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산림을 조성하면서 풍수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오키나와 지역에서는 산이나 숲으로 기(氣)의 누설을 막는 ‘호우고(Hougo)’개념으로 발달했다. 호우고는 나무를 심어서 육성하면서 거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복합적인 개념으로 활용됐다. 오키나와 마을에서는 이런 호우고를 구체화하기 위한 숲이 매우 많이 만들어졌고, 이를 중심으로 마을도 형성됐다. 일본 풍수지리서 <北木山風水記>에서는 ‘산이 외면하고 물이 달아나면 호우고의 정(抱護之情)이 없고, 묘지나 도시․마을을 세우지 못한다. 산이 마주보고 물이 만나면 도시․마을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와 같이 일본에서 풍수는 ‘호우고’ 개념이 핵심 키워드다.
중국이 풍수이론을 만든 기원지라면 한국은 풍수를 꽃 피운 나라였다. 풍수학자 최원석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풍수의 영향은 불교와 유교보다 강력했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하며, “풍수가 일본에서 문화적 요소의 하나로, 오키나와나 베트남에서 공간적 패러다임을 제공했다면, 한국에서는 문명사적 전환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동아시아에서 풍수는 사람들의 삶 속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수천 년 동안 자리 잡아 왔다.
그러면 현대적 의미에서 풍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몇 년 전 최창조 선생은 “옛날에는 명당을 찾거나 비보를 해서 조성을 했지만 지금은 마음에 드는 땅이 명당”이라고 할 정도로 명당의 기준을 바꿨다. 현대는 자연만으로 명당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건축이나 토목 조경기술로도 명당을 만들 수 없다. 양자가 조화를 이뤄야 명당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땅은 없다. 먼저 땅에 정을 주면 그 보답을 한다’는 말은 의미가 깊다. 백두대간 곳곳이 잘려나간 지금 생기의 통로가 끊겼기 때문에 명당이 있을 수 없다. 그러면 현재 명당의 개념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영어에서 볼 수 있듯 예언지로서의 지리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의 문제를 현대적 관점에서는 숙제로 남는다.
풍수의 앞으로의 과제는 미신적 요소를 제거하고 산세와 발복의 상관관계를 철저히 규명하면서, 이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문제다. 미래 풍수의 영원한 과제인 셈이다. 만약 풍수가 지형의 형세와 발복과의 상관관계를 과학적으로 명확히 규명하는 날이 온다면 풍수의 대변혁과 더불어 전 세계인들이 한국풍수를 배우러 오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이것도 한류다.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세계문화사상적 한류다.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