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봄은 어디서 올까. 물과 바람으로 온다. 남녘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은 뭍에 상륙해서 봄꽃을 피우게 하고 여자의 옷깃을 여민다. 동시에 물은 강물을 타고 올라와 대지에 온기를 불어넣고 겨우내 언 땅을 촉촉이 녹게 한다. 섬진강 황어가 얼음 밑에서 상류로 오르며 봄을 알린다. 섬진강의 봄은 매화와 산수유의 꽃을 피게 함으로써 비로소 한반도 봄의 서막을 연다.
봄은 바다에서도 영락없이 신호를 보낸다. 봄이 되어 수온이 올라가면 새우가 많아진다. 이를 놓칠세라 주꾸미들이 서해 연안으로 몰려든다. 주꾸미들은 3~5월 이 때가 산란기다. 새우를 먹고 살이 더욱 쫄깃쫄깃 고소하고 통통해지며 알이 꽉 들어찬다. 특히 맛이 좋은 시기다. 옛날부터 ‘봄 주꾸미’라는 말이 그냥 붙은 것이 아니다.
서해안 서천이나 군산, 서산, 당진, 태안 등에서 매년 봄이면 주꾸미들이 풍성하게 잡힌다. 올해도 예외 없이 여기저기서 주꾸미축제가 열린다. 서천 동백꽃주꾸미축제가 3월21일부터 2주일 간 열린다.
봄이면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기지개를 켜며 봄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관성에 의해 활동을 줄였던 겨울을 기억한다. 활동하려는 신체와 움츠리려는 신체가 서로 충돌한다. 이 때 생기는 몸의 피로증세가 바로 ‘춘곤증’이다.
춘곤증을 해소하는 봄 음식들이 몇 가지 있다. 달래․냉이․두릅 등 봄철 야채들과 멍게․주꾸미 등이 대표적인 봄철 음식으로 꼽힌다. 이 중 주꾸미는 천연피로회복제인 타우린과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데도 효과가 있다.
이것들이 왜 좋을까. 특히 주꾸미는 어디에 좋고 어떤 성분이 있을까? ‘봄 주꾸미’의 효능 몇 가지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자. 우선 주꾸미에는 인과 철분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빈혈예방 및 치료에 효과가 있다. 둘째, DHA성분이 많아 기억력 향상, 두뇌발달,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 셋째, 타우린 성분이 함유돼 남자들 정력에 좋다. 넷째,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효능이 있어 동맥경화 및 고혈압에 도움이 된다. 다섯째, 칼로리가 낮고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지방이 1% 안팎이라 다이어트 식품으로 알맞다. 여섯째, 피로회복에 좋다는 타우린 성분이 풍부하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주꾸미 먹물 속에는 항앙작용과 위액분비 촉진작용을 도와주는 물질이 있다는 발표가 있었다. 옛날 어촌에서는 먹물을 이용해서 치질을 치료했고, 여성들의 생리불순을 해소하는 데 탁월한 효능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칼로리가 낮으면서 신체에 꼭 필요한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한 주꾸미는 그야말로 웰빙식품이 아닐 수 없다.
주꾸미축제는 주꾸미가 많이 잡히는 충남 서해안을 중심으로 주로 개최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게 서천 동백꽃주꾸미축제다. 올해로 벌써 16회째다. 애초에는 풍부한 수산물 판로를 위해 축제를 열었다. 이렇게 사람 몸에 좋은 주꾸미를 많이 잡지만 사람들에게 알릴 방법은 없고 판로는 막혀 가격은 내려만 갔다. 동네주민들은 서면발전위원회를 발족, 축제를 열면 홍보도 하고 판로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개최하게 된 것이다.
서천에는 각종 수산물이 풍부하다. 수산물 관련 축제만 5개가 될 정도다. 3월 동백꽃주꾸미축제, 5월 광어․도미축제, 10월 홍원항 전어․꽃게축제, 꼴갑(꼴뚜기와 갑오징어 줄인 말)축제, 그리고 연말에 마량포 해넘이․해돋이축제 등이다. 올해부터 김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서천개발위원회 김형천 사무국장이 말했다. 그러면 6대 축제가 된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보령이나 광천김은 전부 서천에서 공급한다. 서천에서 김 가공공장을 세우지 못해 원료를 보령이나 광천으로 판매하다보니 자연스레 보령 광천김이 유명하게 됐다. 서천에서는 뒤늦게 김의 원산지를 알리려고 축제를 개최하고 공장을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
동백꽃주꾸미축제는 마량리 동백나무숲 일원에서 열린다. 마량리 동백숲은 천년기념물 제169호다. 동백꽃을 보러 오는 사람들과 연계해서 주꾸미축제를 개최한다. 마량리 동백나무는 일종의 춘백이다.
동백나무는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개화시기가 조금씩 늦어진다. 동백은 원래 추백, 동백, 춘백으로 나눠진다. 개화시기가 이른 동백은 11월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 이듬해 4월까지 계속된다.
3~4월에 집중적으로 개화하는 마량리 동백숲은 바닷가 옆 덩그러니 솟은 동산을 뒤덮고 있다. 어떻게 이런 곳에 동백나무 군락이 형성됐나 의구심이 들 정도다. 재미있는 전설이 지금까지 전한다.
‘한 할머니가 젊었을 때 과부가 됐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사고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아들 하나가 있었다. 아들이 20세가 되던 해 아들도 뗏목을 타고 고기잡이 나갔다 역시 사고로 죽었다. 고난의 나날을 보내던 할머니는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바다에서 물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용의 꼬리를 보았다. 용왕이 살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시지를 않아 화를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용왕신을 모실 신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꿈에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 백사장에 밀려오는 물건이 있을 테니 그것을 가지고 신당을 마련하라고 했다. 뚜껑이 있는 널이 있었다. 그 속에는 서낭 다섯 분과 동백씨 한 되가 들어 있었다. 그 후 할머니는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난 곳에 동백씨를 뿌렸고, 지금의 동백정이 있는 곳에 신당을 지어 서낭 다섯 분을 모시게 됐다고 한다.’
지금 신당은 500여년 자리를 지키고 있고, 동백씨를 뿌린 그 나무들이 자라 지금의 군락을 이루고 있다.
동백꽃과 어우러진 주꾸미축제, 둘 다 봄을 상징한다. 이들과 어울려 즐기는 것도 봄맞이 하는 좋은 방법이지 싶다. 서천개발위원회 사무국장과 위원장을 역임하고 다시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형천 사무국장은 “지역주민 소득증대와 주꾸미 소비촉진사업 일환으로 시작한 동백꽃주꾸미축제가 매년 성공적으로 열려 큰 성과로 생각한다”며 “지금은 무분별한 낚싯배로 금어기간 단속을 받는 어민들만 주꾸미 어획량이 줄어 다소 피해를 보지만 그래도 매년 축제가 열리는 2주 동안 약 30만 명이나 방문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