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서 가장 험한 능선 중 하나가 소청봉 아래 용아장성능이다. 이름 그대로 ‘용의 이빨’처럼 생겼다 해서 지어졌다. 봉정암은 그 이빨의 잇몸쯤 되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험하면 험할수록 경관은 아름다운 법이다. 봉정암은 언제, 어디서 봐도 절경이다.
‘봉정암(鳳頂庵)’이란 이름도 험한 위치와 무관치 않다. 자장율사가 해동에 불법을 크게 일으키라고 부촉 받고 중국 오대산에서 가져온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양산 통도사와 경주 황룡사 9층석탑에 우선 봉안했다. 발길을 북쪽으로 돌려 신령한 장소를 찾았다. 먼저 금강산에 올라 기도했다. 기도를 시작한지 이레째 되는 날, 갑자기 하늘이 환해지면서 오색찬란한 봉황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봉황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더니 봉황새는 높은 봉우리 위를 선회하더니 갑자기 어떤 바위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사라진 그 곳은 부처님 이마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용아장성은 이 불두암을 중심으로 좌우에 일곱 개의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자장이 자세히 보니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었다. 자장은 바로 이곳이 사리를 봉안할 곳이라 판단했다. 부처님의 형상을 한 바위 밑에 불뇌사리를 봉안한 뒤 5층탑을 세우고 암자를 지었다. 절 이름은 봉황이 부처님의 이마로 사라졌다 해서 봉정암이라 붙였다. 신라 선덕여왕 13년(644)의 일이다.
설악산 봉정암은 한국 산신 신앙의 메카이다. 신라 선덕여왕 13년인 644년에 자장율사에 의하여 창건된 봉정암은 한국의 대표적인 기도처이다. 전국에 수많은 산신 기도처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첫손가락에 꼽는 기도도량이다. 물론 지금은 불교신앙의 성지로 바뀌었지만, 원래 밑바닥에는 토속적인 산신 신앙이 깔려 있었다는 말이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토속신앙은 불교로 옷을 갈아입었지만, 그 종교적 영성의 가장 밑바탕에는 한민족 고유의 산신이 자리 잡고 있다.
봉정암은 내설악 최고의 기암괴석 군이라 할 수 있는 용아장성(龍牙長城)의 바위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봉정암은 설악산 기운의 정수(精髓)에 해당한다. 먹을 것도 귀하고, 땔감도 귀했던 조선시대에는 접근하기 힘들었던 기도터가 봉정암이었다. 일반인은 쉽게 올 수 없었고, 올 생각도 못했다. 그 만큼 소수의 승려들과, 약초를 캐던 심마니들이나 올 수 있었던 암자였다. 1년에 반절은 눈이 쌓여 있어서 오기 어려웠던 것이다. 먹을 것도 없고 말이다. 접근이 어려웠다는 사실을 뒤집어 보면, 그만큼 신성한 도량이었다. 성지는 아무래도 접근하기 어렵다는데서 오는 신성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다가 산 전체가 거의 바위산이다. 엄청난 골산(骨山)에 해당한다.
봉정암은 그 터도 대단한 자기장(磁氣場)이 형성된 볼텍스(vortex)지만, 봉정암까지 올라오는 길도 굉장히 파워풀한 길이다. 백담사에서 출발하여 봉정암까지 오는 등산로는 통상 6시간 정도 걸린다. 이 6시간의 산길이 참 묘하다. 거의 계곡을 끼고 올라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계곡을 끼고 올라오다 보면 계곡에서 흐르는 물의 수기를 받을 수 있다. 바위의 화기와 계곡물의 수기가 합쳐지면서 그동안 쌓여 있었던 탁기를 배출시켜 버리는 작용을 한다. 물로 씻어내고, 불로 충전시킨다. 물과 불이 모두 필요하다. 인간의 건강은 결국 파고 들어가면 물과 불의 문제이다. 6시간의 계곡 산행길은 물 대포와 불 대포를 모두 맞을 수 있는 천혜의 힐링로드인 셈이다. 수화쌍포(水火雙砲)가 설치된 곳이 또한 영지이다.
용아장성의 이빨쯤 되는 자리면 올라가기도 만만찮다. 해발이 무려 1,244m. 웬만한 산 높이보다 더 높다. 그만큼 힘들다. 올라가는 버스는 없다. 오로지 걸어가야 한다. 그것도 계곡 옆 험한 바위길 따라서. 인제 용대리에서 출발한 버스는 종점이 백담사다. 봉정암 올라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거리는 약 10.6㎞. 당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그래도 간다. 지팡이를 짚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불심(佛心)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백담사를 거쳐 백담계곡 옆으로 간다. 처음엔 평이한 길이다. 수렴동대피소를 지나면 수렴동계곡에 이른다. 계곡의 끝자락부터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붉은색 철다리와 계단이 연이어 나온다. 지금은 이런 안전시설이 설치돼 있지만 옛날엔 계곡물이 철철 넘쳐흐르는 길을 그냥 건너갔다.
깔딱고개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쉴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오르막길은 계속 된다. 봉정암에 오르는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오로지 불심 하나로 오른다.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정말 궁금하다.
이들이 봉정암에 가는 목적은 뭘까? 자식과 손자의 대학합격을 위해? 집안의 평안을 위해? 남편의 승진을 위해? 이런 세속적인 목적이 이들을 이렇게 힘을 내게 할까? 참으로 세상은 알 수 없다. 그렇게 도착한 봉정암 5층사리탑(강원 유형문화재 제31호)에는 365일 기도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다람쥐까지 나와 기도객들을 맞는다. 다람쥐는 기도객들이 두고 간 쌀을 한 톨씩 훔쳐 먹는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놈들은 사람들 보고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봉정암에 원체 많은 기도객들이 몰려 100명 이상이 잠잘 수 있는 신도숙소를 만들었다. 거기서 1박한 후 다음날 한 번 더 기도하고 내려온다. 그만큼 봉정암은 한국의 대표적인 기도터이다. 자기 인생에 절벽이 가로 막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봉정암에서 가서 3일만 죽기 살기로 기도를 한번 해보기를 권한다. 한국 산신기도의 수천 년 전통이 어려 있는 영지가 봉정암이다.
봉정암 가는 길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속초행 고속버스를 타고 강원도 인제 용대리에서 하차해야 한다. 이곳에서 백담사까지 운행하는 마을버스가 있다. 절과 마을주민들이 협의해서 운행하는 버스다. 사람들이 몰리는 봄, 가을에는 증차한다.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10.6㎞. 보통 성인 걸음으로 6시간 이상 걸린다. 최소 7시간쯤 잡아야 한다. 문의 봉정암 033-632-59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