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이미 알려진 둘레길 외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걷기 좋은 길이 어디 없을까? 등산이나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별로 붐비지 않으면서 걷기 좋고 호젓한 나만의 길이나 코스를 항상 찾는다. 하지만 누구나 다 비슷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코스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지리산 언저리에 사는 사람들은 남원 주천 구룡폭포길과 하동 화개 신흥~의신마을까지 이어지는 지리산옛길을 적극 추천한다.
신흥마을 옆으로 화개천 상류가 흐른다. 지리산의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화개천으로 일단 합류한 뒤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화개천 상류에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가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푸조나무라고 소개하는 바로 옆이다. 그 푸조나무는 최치원 선생이 세상을 등지며 신선이 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갈 때 꽂은 지팡이가 되살아나서 지금의 나무가 됐다고 전한다. 믿거나말거나 같은 얘기지만.
그 옆 하천 바위와 물소리가 심상찮다. 평평한 바위에 여기저기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사람 이름도 있고, 뭔가를 뜻하는 글자도 보인다. 눈에 띄는 글자가 하나 있다. ‘고운 선생 세이암(孤雲先生 洗耳岩)’이란 각석이다. 신라 말 최치원 선생이 속세에서 겪었던 온갖 번뇌와 망상을 씻어버린다는 뜻으로 바위에 새긴 글자다. 그 뒤 고운 선생은 신선이 되기 위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물소리가 세차다. 귀를 씻어버릴 만한 소리로 흐른다.
이곳이 바로 화개 신흥~의신마을까지 이어지는 지리산옛길 서산대사길이다. 신흥마을은 삼신동(三神洞)의 중심마을이다. 삼신동은 화개천 상류를 따라 신흥사, 영신사, 의신사 등 신(神)자가 들어간 절이 3개나 있어서 그렇게 불렸다. 마을 입구에 있는 큰 바위에 ‘三神洞’ 각자가 있다.
1,000여 년 전 신라 말 고운 선생처럼 귀를 씻고 출발해보자. 옛날보다 훨씬 더 귀를 씻을 일이 많은데 말이다. 귀를 씻고 출발하자. 계곡 위 출발지점에 들어서자 길은 숲터널을 이룬다. 전부 활엽수다. 이곳도 계곡과 어울린 활엽수라 제대로 단풍이 들면 정말 볼만 하겠다. 한쪽은 계곡, 다른 쪽은 산. 산에 있는 활엽수는 참나무와 밤나무, 그리고 감나무다. 길 위엔 밤송이들이 즐비하게 널려져 있다. 따다만 밤까지 보인다. 감나무에는 잘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은 산길과 계곡, 옛고개 등으로 벼랑길과 푹신푹신한 흙길로만 이어진 완벽한 옛길이다. 쑥부쟁이와 야생녹차와 각종 야생화도 꽃을 피워 눈을 어디다 둘지 모르게 한다. 여기저기 살피느라 눈이 호사하면서 바쁘다.
감감바위가 나온다. 높이가 26m나 되는 커다란 바위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찔할 정도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멀리서 보면 해골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해골바위라고도 한다.
한쪽은 절벽, 한쪽은 계곡이기 때문에 물과 기묘한 바위를 동시에 보며 걷는다. 이어 널찍한 공터가 보인다. 예전에 말발굽, 호미, 칼 등 생활용품이나 사찰의 범종을 만들던 쇠점터가 있었다고 해서 쇠점재라고 한다. 살짝 오르는 코스다. 이미 데크 로드를 만들어 전혀 위험하지 않다.
숲과 계곡, 깊어가는 가을에 명상과 호젓하게 즐기기에 딱 좋은 길이다. 아니나 다를까 길 옆 계곡에 널찍한 바위가 있다.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곧 이어 이 길을 있게 한 서산대사의 흔적이 나온다. ‘서산대사의 도술 의자바위’라고 적혀 있다. ‘이 의자바위는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쳐들어와 의신사를 불 태우고 범종을 훔쳐 가려는데, 그 모습을 내려 보고 있던 서산대사가 도술을 부려 범종을 의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서산대사(1520~1604년)는 조선 중기의 고승․승장으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한양 수복에 공을 세웠으며, 유(儒)․불(佛)․도(道)는 궁극적으로 일치한다는 삼교통합론의 기원을 이뤘다. 서산대사는 의신마을에 위치한 원통암에서 1540년 출가하여 휴정(休靜)이라는 법명을 얻었다. 이 길이 바로 서산대사가 출가하기 위해 원통암으로 걷던 바로 그 길이다. 그래서 서산대사길이라고 명명된 것이다.
서산대사는 우리나라 4개의 명산을 산의 규모가 큰 것을 ‘장(壯)’이라 하고, 산의 모양이 수려한 것을 ‘수(秀)’라고 평가했다. 구월산은 불장불수(不壯不秀), 지리산은 장이불수(壯而不秀), 금강산은 수이불장(秀而不壯), 묘향산은 장이수(壯而秀). 조금은 묘향산은 편향된 듯한 느낌이다. 이는 서산대사가 지리산에서 출가했지만 묘향산에서 수도하고 생활한 점이 작용한 듯하다.
조금 가파른 벼랑길인 사지넘이고개를 지나면 아담한 농가가 하나 나온다. 이게 옛주막터다. 이 길을 오가는 주민들과 소금장수 등 길손들의 휴식처였다.
돌담을 지나자 의신마을이 한눈에 확 들어왔다. 의신마을은 신(神)이 머물고 갔다고 할 정도로 경치가 수려하고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산지인 의신사, 서산대사가 출가한 원통암, 조상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담은 지리산역사관, 의병묘, 당산제 등 역사와 문화가 생생히 살아 숨 쉬는 곳이기도 하다.
화개천을 건너기 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최근에 건립한 베어빌리지가 있다. 반달가슴곰생태학습장과 같이 조성됐다. 각종 곰 모양의 조형물이 여기저기 눈에 보인다. 바로 뒤 능선과 봉우리가 반달곰이 주로 서식하는 형제봉 인근이다.
이어 마을로 접어들면 옛길이 끝난다. 지리산역사관도 있다. 빨치산들의 역사와 지리산 주민들의 어렵던 시절의 생활상을 그대로 전해준다.
서산대사가 출가하던 길은 화개천을 바로 끼고 있어 물소리에 세속의 잡념을 씻고 계곡과 어울린 단풍을 즐기기엔 더없이 좋다. 더욱이 계곡에서 뿜어져 나오는 풍부한 음이온은 걷는 이로 하여금 심리적으로도 안정을 주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