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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후야오방 동상 제막으로 복권작업 시작 - China Inside
후야오방 동상 제막으로 복권작업 시작

<조선일보 보도>

천안문사태 촉발한 후야오방 前총서기 26년만에 복권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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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국의 정치 개혁을 추진하다 실각한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전 총서기의 동상이 중국 내에 건립돼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체제하에서 그가 복권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청년보는 "지난 6일 중국 저장(浙江)성 동부 타이저우(臺州)시 해안에 있는 섬 다천다오(大陳島)에서 후 전 총서기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고 7일 보도했다. 후 전 총서기의 동상은 후난(湖南)성 그의 생가에 조성된 기념관 등지에도 있지만, 실외 공간에 건립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중국청년보는 동상의 구체적인 위치와 제막식 참석 인사 등은 자세히 보도하지 않았다.

다천다오는 후 전 총서기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제1서기를 지낼 당시인 1956년 청년들에게 황무지 개간을 호소했던 곳이다. 그의 호소에 부응한 청년 467명이 자원 봉사에 나서, 1960년까지 4년 동안 이 황무지를 개간했다. 지금은 11.89㎢에 이르는 섬의 50~60%가 울창한 삼림으로 덮여 있고, 대규모 항구까지 갖춘 아름다운 섬으로 변했다. 후 전 총 서기는 총서기로 재임 중이던 1985년 이곳을 방문해 황무지 개간에 앞장섰던 자원봉사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후 전 총서기는 1980년대 대표적인 개혁파 인사이다. 1929년 공청단에 가입하며 공산 혁명에 뛰어든 그는 대장정, 항일전쟁 등에 참여했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과 같은 후난성 출신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개혁 성향이 강해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박해를 받았다. 문화대혁명 종료와 함께 일선에 복귀한 그는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신임을 받아 1982년 공산당 총서기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1987년 민주와 인권을 요구하며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학생 시위에 유화적으로 대처하고, 정치 개혁 차원에서 덩샤오핑을 비롯한 당 원로들이 일선에서 은퇴할 것을 주장했다가 당내 원로 회의에서 실각당했다. 2년 뒤인 1989년 4월 정치국 회의 도중 급성 심근경색이 발병해 숨졌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학생들은 ‘노인 정치 청산’을 외치며 베이징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고, 결국 그해 6월 중국 공산당이 군대를 동원해 학생 시위를 유혈 진압하면서 톈안먼(天安門)사태가 일어났다.

중국 내에서는 그의 동상 건립이 후 전 총서기의 복권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앞서 중국 공산당은 지난해 11월 18차 당대회 때 베이징 시내 미디어센터에 역대 당대회 사진을 전시하면서, 후 전 총서기가 등장하는 사진을 내걸기도 했다.

후 전 총서기는 생전에 청렴하면서도 친서민적인 행보로 지금도 중국 국민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그의 정치적 제자이자 공청단 후배인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집권한 2000년대부터 그의 복권설이 계속 나돌았다. 중국 최고지도부는 그의 탄생 90주년인 2005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기념 좌담회를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후 전 총서기의 유족과 함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쩡칭훙(曾慶紅) 국가 부주석 등 현직 최고지도부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그의 복권이 톈안먼사태의 재평가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중국 최고지도부는 결국 그에 대한 공식 복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후 전 총서기는 시진핑 총서기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勛) 전 부총리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 1978년 문화대혁명으로 박해를 받고 지방에 쫓겨가 있던 시 전 부총리를 복권해 광둥(廣東)성 서기에 발탁한 이가 바로 후야오방이다. 시 전 부총리가 광둥성에서 경제특구를 추진할 때에도 이를 적극 지지했다. 시 전 부총리도 1987년 덩샤오핑 등 원로들이 후 전 총서기를 실각시킬 당시, 앞장서서 반대했다가 한직으로 밀려났다.
시 총서기는 이런 인연을 감안한 듯, 총서기 취임을 수개월 앞둔 지난해 7월, 후 전 총서기의 아들로 중국 내 유명 개혁파 이론가인 후더핑(胡德平) 중국정치협상회의(정협) 경제위원회 부주임을 따로 면담하기도 했다./북경=최유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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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뉴스>

胡耀邦铜像落户台州大陈岛

【多维新闻】中共已故开明派领导人胡耀邦的铜像1月6日在浙江台州大陈岛揭幕。据悉,1956年尚为共青团中央书记处第一书记的胡耀邦曾发出号召呼吁青年豋岛垦荒,此后胡耀邦担任中共中央总书记时亦曾豋岛访问。

胡耀邦一直被视为中共党内开明派人士,由于1987年被指处理资产阶级自由化问题而被邓小平等元老级人物迫使下台。1989年胡耀邦病逝于心肌梗塞,不满社会现状的青年学生随即以此为契机触动六四事件的发生。

官方评价其是久经考验的忠诚的共产主义战士,伟大的无产阶级革命家、政治家,我军杰出的政治工作者,长期担任党的重要领导职务的卓越领导人。但在官方的活动中,胡耀邦被赋予更明显的符号意义,因此几乎一直缺席官方报道中。据称,最近胡耀邦的画像被搬上了十八大新闻中心。

媒体报道称,1月6日,浙江台州,胡耀邦铜像在大陈岛揭幕。大陈岛位于浙江省中部沿海台州湾东南,1956年1月,时任共青团中央书记处第一书记的胡耀邦向温州青年发出了“组成志愿垦荒队,开发建设大陈岛”的号召。同年1月31日,首批227名青年队员登上大陈岛开始了垦荒生活,至1960年,共有4批467名垦荒队员上岛。1985年12月29日,时任中共中央总书记的胡耀邦登上大陈岛看望了老垦荒队员。

大陈岛为台州列岛106个岛礁中的主岛,总面积11.89平方公里。经50余年的建设,海岛环境已得到很大改观。昔日皆为童山秃岭,现今林木葱郁,森林覆盖率达50至60%以上,成为省级海岛森林公园、国家级渔港、国际避风港和鲜活水产品出口交货点。

(穆尧 编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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