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물검역소
강지영 지음 / 네오픽션 / 2017년 4월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얼리어댑터 라는이름으로 누구보다 빨리 신제품을 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만일, 시대를 거꾸로 거슬로 올라가 조선시대에 이러한 일들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가히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를 상상하는 것부터가 여러모로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는데, 이 소설이 바로 그런 궁금증을 조금이나 풀어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유행하는 말로 브로맨스~ 란 말이 떠오를 만큼 지금은 이성 간의 로맨스뿐만이 아니라 남자들의 이러한 조합들이 좋은 현상을 보이곤 한다.
함복배란 주인공은 과거에 급제를 했지만 갑, 을, 병의 순서에 따른 성적 결과 간신히 급제를 한 경우, 그렇기에 배정받은 지역이 바로 제주도다.
삼다도라 불리는 지역인 만큼 타 지역보다는 월등히 좋은 곳은 아닐 터, 그가 받은 직함은 신문물 검역소 소장이란 직책이다.
신문물이라고 하니 당연히 새로운 문물일 것인데, 이 신문물이란 것이 왜 나라에서 건너온 배에 있던 상자에 담긴 물건들을 관찰하고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고? 에 해당되는 것을 찾는 책임을 맡은 자리이다.
한편 배가 난파되어 간신히 살아남은 코쟁이 한 서양인이 들어오게 되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 가운데 그를 박연이란 이름으로 지어 부르면서 신문물에 대한 도움을 받게 된다.
책은 유쾌하면서도 결정적인 흐름에는 추리가 가미된다.
불아자, 치설, 만앙경, 곤도미, 코길이, 로손…
지금이야 언뜻 보면 대강 짐작하고도 남을 이름이지만 저자의 상상력은 이 신문물에 대한 이름이 지어지기까지의 한문을 이용한 그럴듯한 조합이 재미를 준다.
첫 물건인 불아자를 양반들이 햇빛을 막기 위해 쓰면 좋겠단 취지로 머리에 쓰고 다닌 함복배, 이를 본 박연이 나름대로 설명하는 장면은 웃음을 준다.
이밖에도 선풍기에 대한 궁금증은 나름대로 저마다 설을 풀어나가는데, 특히 죄인을 심문하기 위해 쓰일 수도 있다는 대목, 곤도미를 설명하는 부분에선 가히 뭐라 말할 수 없는 웃음 연발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설레는 연지에 대한 사랑을 품은 함복배의 청춘의 사랑, 범인의 잔악한 여성을 죽이는 방법들은 이 소설이 가볍게 흘러 들어갈 수도 있었을 요소를 다른 한 편의 무거운 신분제도의 결함을 보이는 살인범의 의도와 당시 아편이 주는 피해를 통해 또 다른 제도와 신문물의 신선함 너머엔 이러한 좋지 못한 물건도 함께 들어옴으로써 인간의 삶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들여다보는 계기를 보인다.
신문물이란 이름하에 코끼리에게 존대를 하는 장면이나 사랑엔 국경도 없다는 의미를 상징하는 박연의 사랑, 책은 역사적인 토대의 실존 인물을 함복배란 가상의 인물과의 조화를 내세워 당시의 분위기를 잘 그려내고 있으며, 그 뒤에 다시 만나게 되는 하멜이란 등장인물을 보임으로써 조선이란 나라의 개방이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되, 저자의 상상력이 동원된 책인 만큼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책 속의 주인공들이 끙끙대며 물건의 실체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의 마침이 아쉽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