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고도 긴 여름밤이다. 창문을 열어놔도 바람 한 점 없다. 욕심 같아선 에어컨이라도 켜고 싶지만 두 사람 잠자릴 위해선 과분한 것 같다. 선풍기를 돌려보지만 무덥긴 마찬가지다.
아예 침대 밑 방바닥으로 내려왔다. 엄청 시원하다. 하지만 딱딱한 방바닥에 누우니 불편하긴하다. 그래도 더운 것보단 낫다. 잠을 청해본다. 제법 잔 것 같은데 시침은 오전 한 시를 겨우 넘기고 있다. 티비라도 볼까 하다가 곤히 자는 옆사람에게 폐가 될 것 같아 참기로 했다. 이리뒤척 저리뒤척 해보지만 머릿속은 더 없이 맑아진다. 게다가 어린 시절 여름밤 풍경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 시절도 덥긴 요즘이나 진배 없었다. 6.25동란의 잔해가 부스럼딱지 만큼이나 남아 있던 50년대 중반, 여름밤이면 어김 없이 마당에 펴놓은 대나무 평상에서 더위를 피하곤 했다. 저녁밥이라곤 대개가 국수나 수제비로 때운 터여서 잠들기 전부터 배가 고파왔다. 마른쑥으로 매캐한 모깃불을 피운 어머니는 감춰두었던 감자나 옥수수를 쪄내왔다. 어머니 품처럼 향긋한 모깃불 냄새 속에 금방이라도 우루루 쏟아질 것만 같은 은하수 별들을 보며 먹었던 옥수수맛. 요즘 옥수수를 간혹 먹지만 그때 그 맛을 되새기기엔 어림도 없다. 어쩌다가 수박이나 참외, 삶은 고구마라도 내오는 날은 그렇게 기분 좋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 여름밤, 옆엔 할머니가 함께했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과 나는 할머니께 옛날 얘길 해달라고 졸랐다. 얘깃거리가 많지 않은 할머니는 했던 얘길 몇 번이고 들려주셨다. 떡장수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가 엄마로 변장해서 어린 남매를 찾아왔다가 썩은 밧줄에서 떨어진 얘기, 여우가 된 여동생이 오빠를 잡아먹으러 왔지만 오빠가 던진 세 가지 병으로 실패한 얘기들이었다. 지금도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야들아, 하늘작에(오래 전에) 새끌(대문간)에서 우떤 걸뱅이(거지)가 말이다. 할머니의 얘깃소리는 시냇물처럼 소근거리며 밤새 흘러내렸다.
여름밤이 무덥긴해도 절대로 밖에서 자는 일은 없었다. 손등으로 눈을 비비면 어머니는 우리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새벽녘에 내리는 이슬을 맞으면 사람도 ‘풀이 죽는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그래서인가, 평상에서 밤을 지새운 사람들이 동이 터도 일어나질 못 하고 늘어져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 시절엔 부채가 최고의 피서 도구였다. 모기를 쫓느라, 아니면 우리 남매가 더울세라 휘휘 부쳐주셨던 어머니의 그 손길이 그리워진다. 하지만, 에어컨에 먹거리에 부족함 없이 자란 우리 손주들이 내 나이쯤 되어 그 시절의 여름밤을 정겹게 추억할 수 있을까. 괜한 걱정이 앞선다.
산고수장
2016년 7월 26일 at 5:39 오전
그래요 모기불 피워놓고 평상에누워서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부채와 할머니 이야기로
더위를 이겨낸 어릴때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무식한놈이 용감하다고 하던데
그외 다른 행복이란거 몰라서 였을까요?
좋은 글 마음에 담아갑니다.
더운날씨에 건강하세요.
바위
2016년 7월 28일 at 11:15 오전
좋은 말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나이 먹으니 그 시절이 무척 그립군요.
무더위에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