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씨 왕조에 반역을 꾀하고 고려를 멸망케 한 조선 태조 이성계는 고려 태조 왕건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한다.역성혁명이지만 전 왕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춘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숭의전 전경.
그 사당이 사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기도 연천에 있다. 연천에 있는 그 사당은 원래 왕건의 원찰이었던 앙암사가 자리 잡고 있었으며, 왕건 사후인 조선 태조 6년 1397년에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으로 발전했다. 사당 건립이후 1399년 왕명(정종 1면)에 의해 고려 태조를 비롯하여 혜종, 성종, 현종, 현종, 문종, 원종, 충렬왕, 공민왕 등 고려 8왕의 위패를 봉안하는 숭의전이 되었다.
이후 1425년(세종 7년)에 이르러 조선의 종묘에는 5왕을 제사하는데, 고려조의 사당에 8왕을 제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하여 태조, 현종, 문종, 원종 등의 4왕 만을 봉향토록 했다.
왼쪽 사진은 왕건의모습이며, 오른쪽은 북한이 크게 다시크게 쌓은개성에 있는 왕건의 왕릉.
중앙에 있는 사진이 고려 태조 왕건의 재위시 모습이다.
숭의전이란 이름은 1451년 문종 1년에 전대의 왕조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숭의전(崇義殿)이라 짓고, 고려 4왕과 더불어 고려조의 충신 16명(복지겸, 홍유, 신승겸, 유금필, 배현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 등을 배향했다.
숭의전은 조선시대 1605년, 1727년, 1789년, 1868년, 1908년 등 크게 5차례에 걸쳐 개수와 중수를 반복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건물이 전소하여 1971년 숭의전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여 사적 제223호로 지정하여 오늘 날의 건물을 재건했다.
현존하는 건물은 숭의전을 비롯해 배신청, 이안청, 전사청, 앙암재 등의 부속건물과 내신문, 외신문, 협문 3동, 운조문 등 6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건의 제사를 지낼 준비를 하는 전사청. 제사상에는 삶거나 구운 음식은 올리지 않는다.
숭의전은 고려 4왕의 위패를 모신 정전이고, 배신청(陪臣廳)에서는 고려 16공신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안청(移安廳)은 숭의전의 청소 및 공사 시에 위패를 잠시 모셔 두는 곳이며, 전사청(典祀廳)은 제례 때 사용할 제수를 준비하고 제기를 보관하는 곳이다. 앙암재(仰巖齋)는 제례 때 사용하는 향과 축, 폐 등을 보관하고, 제관들이 제례 준비를 하며 머무는 곳이다.
신하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건물.
숭의전에 보관된 왕건의 영정은 북한에 있는 영정을 사본한 것이다. 북한에 있는 왕건의 왕릉은 북한 김일성이 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부풀려 허위로 크게 복원했다. 원래 고려 왕릉은 조선 왕릉과 달리 아담하고 작은 편이다.
임진강이 바로 앞에 내려다보이고, 바로 옆엔 천연기념물인 500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람하고 기묘한 자태로 숭의전을 지키고 있는 듯하다. 올 여름 휴가지로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고, 각종 유적이 있는 연천으로 가 보면 어떨까.
숭의전 입구.
숭의전 입구에 있는안내도 바로 옆에 하마비란 비석이 있다. 모든 사람은 말에서 내려 걸어오라는 말이다.
안내판 바로 옆에 약수터가 있다.
숭의전 전경.
왕건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는 숭의전.
왕건의 호가 천수라 숭의전 제일 큰 문이 천수문이다.
숭의전에 대한 안내문.
숭의전 바로 옆에 500년 이상된 고목이 전설을 간직한 채 숭의전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