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부터 28년 동안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교장 선생님은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초등학교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등산을 한다. 다들 “아니, 어떻게 교장선생님이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참, 대단하신 분이네!”라고 감탄한다.
상명대 부속초등학교 안진언 교장선생님 이야기다. 지난 10월 9일 토요일, ‘과연 어떤 분이기에 싶기도 하고, 애들 분위기 파악을 위해 새벽 일찍 그 장소로 향했다. 동행키로 사전 약속을 한 상태였다. 새벽 6시 구기동 이북5도청 아래 치안센터 앞에서 항상 모인다. 여명조차 보이지 않은 어둑한 새벽, 오전 5시 45분쯤 한두 명씩 모이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눈에 띄더니 6시가 되자 순식간에 100여명으로 늘어났다. 중간중간에 학부모도 한두 명씩 보였다.
아침해가 뜨기 전에 구기동에서 출발한 상명대 부속초등학교 어린 학생들이 향로봉 가파른 바위길을 힘들게 오르고 있다.
새벽잠을 과감히 깨고 일어나 산행하려는 기특한 어린이를 위한 작은 배려로 흔히 쓰는 말로 코리안 타임을 10분 줬다. 6시 10분이 되자 어김없이 출발했다. 학부모 몇 명을 포함해서 100명이 훌쩍 넘었다.
서서히 밝아오던 여명은 6시가 조금 지나자 거리가 구분될 정도로 밝아졌다. 초등생 100여명은 삼삼오오 손을 잡고 일제히 출발했다. 이북5도청에서 왼쪽 향로봉 방향으로 가파른 길로 올랐다. 아직까지 시멘트 길이다.
교장선생님과 학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가파른 바위길을 오른 어린이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향로봉 가는 산길로 접어들자 마치 모처럼 물을 만난 고기가 날렵한 헤엄을 치듯 일제히 “야, 산이다!”라며 뛰기 시작했다. 원래 자연에서 생활한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보는 것 같았다. 넘어져도 스스럼없이 일어나 그대로 다시 내달렸다. 교장선생님은 연방 “조심, 조심”이라고 외치며 앞장섰다.
다람쥐처럼 계속 내달리는 애들과 뒤로 처지는 애들로 올라갈수록 줄은 길어졌다. 마침 선생님들 두 분이 동행하며 이들을 조정했다. 향로봉의 가파른 길도 이들은 거뜬히 올랐다. 다들 얼굴엔 비지땀으로 가득했다. 이들이 왜 힘든 등산을 사서 할까? 산이 주는 의미를 알까?
“1학년 때부터 거의 빠지지 않고 나왔어요. 교장선생님께서 풀피리 부는 법과 진달래꽃의 꿀을 빼 먹는 방법 등을 가르쳐 주셔서 너무 재미있어요. 마치고 라면 먹는 것도 좋아요.”
향로봉 바로 아래 바위에서 정상에 오른 양 힘차게 “야호”를 외치고 있다
가냘픈 체격의 4학년 유시은양의 말이다. 유 양은 매년 학년 말이면 산행에 가장 많이 참석한 학생을 대상으로 주는 문화상품권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받았다고 자랑했다. 간혹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매년 가장 많이 참석한다고 한다.
“힘들지만 좋아요. 교장 선생님이랑 같이 하지 못 할 때는 아빠랑 자주 등산해요. 요즘은 아빠가 피곤한 날이 많아 학교 산행에 자주 나오는 편이예요. 마치고 먹는 컵라면이 너무 맛있어요.”
든든한 체격의 4학년 이현민양의 말이다. 이 양은 정상에 오르면 자연과 함께 해서 너무 좋다고 덧붙였다.
하산길에서도 힘든 구간은 선생님이나 학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다들 땀은 흘리고 있지만 지친 기색은 별로 없어 보였다. 자연과 함께 하는 그 자체가 힘들고 지친 상황을 지배하는 듯했다.
출발한 지 한 시간쯤 뒤, 향로봉이 바로 뒤에 보이는 능선 바위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모두들 간식 먹는 순간이다. 어디서 났는지 이것저것 나눠 먹고 있다. ‘아, 그렇지. 산에서 이렇게 나눠먹는 것도 중요한 교육 중의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산행이 주는 또 다른 교육이다. 아마 나중에 커서 충분히 남을 위한 배려심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할 것 같은 예감이다.
지난 10월 9일 향로봉 하산길에 산행에 참가한 학부모와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뒤로는 향로봉, 앞으로는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바위 위에서 시원한 전경을 즐긴 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산길로 방향을 틀었다.
천천히 내려오는 산은 이들의 놀이터였다. 풀피리를 불거나 나무를 만지작거리는 등 완전히 자연과 동화된 어린이들이었다.
5학년 노경민양은 “정상에 오르면 산을 더 넓게 볼 수 있어 좋고요, 각종 꽃과 나무들도 있어 놀기에도 좋아요. 힘들지만 좋은 게 더 많아요”라며 등산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4학년 유시은 양이 풀피리를 불고 있다.
상명대 부속초교의 어린이들은 새삼스럽게 무척 복 받은 애들로 보였다. 등산 하면서 자연과 함께 자란 어린이들은 게임이나 TV만 보며 자란 애들보다 훨씬 더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참교육이고 전인교육’이라고까지 느껴졌다.
이들이 어떻게 산행을 하게 되었을까? 이들을 산으로 이끈 교장선생님은 언제부터, 왜 시작했을까? 상명대 부속초등학교의 산행은 안 교장의 교직생활 출발과 서울생활 시작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교장선생님이 제일 앞에 서서 하산길을 통제하면서 안전하게 내려오고 있다
안 교장선생님은 1971년 경북 예천에서 첫 교직발령을 받았다. 그곳에서 9년을 보내고 인천 사립초등학교로 옮겨 1년을 지낸 뒤 1981년 교직생활 10년 만에 지금 학교로 부임했다. 처음 부임해 왔을 때 도시 어린이들은 자신이 자란 농촌 애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나약하고 모험심과 도전의식이 약했다. 당시 안 교사는 나름대로 판단했다.
공부 부담이 없는 어릴 때부터 체력과 정신력을 키워놓으면 나중에 커서 무엇을 하든 써먹을 때가 있고 도움 될 것이라고. 그리고 학생들한테 “우리나라에서 왜 대통령이 시골출신들만 계속 나오겠느냐,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라서 기본 체력과 정신력이 뛰어나 고난을 이겨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택한 방법은 등산이었다. 그가 가진 교육철학은 인간관계에 있어선 합리,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선 순리, 인간과 절대자와의 관계에선 섭리이며, 이 가운데서 인간들이 순리를 가장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에 등산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1983년 부임한 지 2년 만에 반 학생들을 데리고 매주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맡은 반 애들만 데리고 올랐다. 점차 학생들에게 알려지고 반응도 좋아 참가자가 같은 학년으로 확대되면서 숫자도 점차 늘어났다.
잠시 휴식을 취할 때는 항상 교장 선생님이 사과를 가져와서 어린 학생들에게 직접 깎아서 나눠준다.
초기엔 산에 가서 시 낭송도 하고 언어를 순화시키기 위한 행사를 치렀다. 그러나 ‘산이라는 큰 스승이 있는데 쓸데없이 스승노릇을 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자연과 더불어 뛰어놀게 내버려 뒀다. 내심 ‘산 그 자체를 닮았으면…’ 하는 심산이었다.
산에 올라가면서 애들에게 “산이 주는 가르침이 뭐니?”라고 물으면 “글쎄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점차 성숙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애는 “나뭇잎에는 물방울이 스며들지 않는데, 그 성분을 이용해서 방수복을 만들면 되겠다”고 했고, 또 다른 애는 “독버섯도 분명 어딘가에 쓰임새가 있을 텐데, 그 독버섯을 이용해서 독한 암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자연이 주는 교육이고, 이 교육은 상상력과 창의적인 사고를 키우는 과정이었다.
또 이들은 산에 가면서 이해와 배려를 가르침 없이 터득했다. 험한 산길을 지날 때 평소 무섭기만 했던 덩치 큰 녀석들이 앞장서서 작은 친구들의 손을 잡아주기도 했고, 산에서는 작은 간식이라고 같이 온 친구와 나눠먹는 우정을 나눠 더욱 친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달에 네 번 이상 매주 등산은 아직 빠짐없이 진행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등산은 10년쯤 전의 일이다. 아침부터 억수같이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몰랐고, 교장선생님은 혹시 한 명이라도 나올지 몰라 비를 흠뻑 맞으며 약속장소에 나갔다. 딱 한 명이 나와 있었다. 너무 악천후라 그냥 집에 갔으면 했지만 이미 정해진 약속이라 둘이서 올랐다. 계곡물은 콸콸 넘쳐흘렀고, 옷에서도 물이 줄줄 흘렀다. 승가사를 거쳐 구기동으로 둘이서 무사히 내려왔다. 그 학생이 너무 기억에 남아 졸업이후에도 가끔 소식을 전해왔다.
상명대 부속초등학생들이 2008년 초겨울 향로봉이 보이는 능선 바위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얼마 전 그 애가 서울대 수시전형을 쓴다고 교장선생님에 추천서를 부탁한다고 찾아왔다. 당연히 ‘한결같은 내 제자’란 제목으로 추천서를 썼다. 그 애는 무엇을 하더라도 잘 할 학생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어릴 때의 등산은 커서도 잊혀지지 않아 성인이 된 지금도, 거의 30년 가까이 상명대부속초등학교에 계시는 교장선생님을 찾아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결혼 주례를 부탁하러 오기도 한다. 주례는 10월에 두 번, 11월에 한 번이 예정돼 있을 정도다. 이들이 때로는 등산에 동참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한다. 그만큼 어릴 때의 기억은 그들의 뇌리 속에 깊게 남아 있다.
2005년 교장으로 승진하면서 반에서, 학년으로 확대되던 등산은 급기야 전교생 모두 참가하는 매주 행사로 발전했다. 학교에서는 ‘주말산행 가이드’란 소책자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보급했다. 매월 학교 통신망에 등산예정코스와 시간 등을 게재하고, 등산결과는 사진과 함께 전 학생이 볼 수 있도록 올린다.
전교생이 등산에 참가하기 시작한 지 만 5년이 넘었다. 1980년대 초반 10명 내외였던 참가자가 이젠 100명을 넘길 정도로 커졌다. 어린 애들이 사고가 걱정스러웠지만 다행히 큰 사고는 한 번도 없었다. 딱 한번 하산길에 돌계단에 넘어져 이마에 상처를 입은 사고가 있었다. 승가사 짚차에 태워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큰 상처는 아니었다.
보통 학교에서 무슨 행사를 하면 교사들은 사고가 두려워 쉽게 결행하지 못하지만 상명초교에서는 학부모들의 호응이 적극적이어서 전혀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날 사고가 났을 때에도 그 학생 부모는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하다”고 말했을 정도로 평소 학부모와 교사 간에 신뢰가 돈독히 쌓여져 있다고 안 교장선생님은 자랑했다.
안 교장은 “초등학교는 밑거름을 주는 시기라고 봅니다. 거름은 체력과 인성이며, 그 밑바탕을 튼튼히 해놓으면 나중 커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학원과 과외 등 지나친 사교육에 시달리는 화학비료에 익숙합니다. 화학비료는 몇 년 가지 못하고, 비료를 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홀로 서기’ 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등산과 같은 자연과 함께 하는 운동을 어릴 때 즐겨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년이 2012년이다. 28년 간 해온 등산을 횟수로 꼬박 30년을 채우는 해이기도 하다. 정년을 2년 남겨 둔 노 교장은 “우리 미래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상명대부속초등학교에서 만큼은 등산하는 전통을 꼭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벌써부터 걱정했다. 그가 걱정하지 않아도 그가 뿌린 씨앗은 훌륭히 자란 인재에 의해 상명의 ‘등산전통’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사진 조선영상미디어 한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