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서 신년 일출을 미리 봤다. 백담사에서 소청대피소를 거쳐 중청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날이 아직 채 밝지 않은 새벽(시간상으로는 새벽이 아니다) 6시50분 대청봉을 향해 출발했다. 중청대피소에서 대청봉까지는 불과 600m. 거리는 짧았지만 초속 10m 가량 부는, 몸이 날아갈 것 같은 바람 때문에 발걸음을 제대로 옮길 수 없었다.
체감온도 영하31도에서 본 설악산 대청봉 일출. 신묘년 새해에도 이와 똑 같은 해가 뜰 것이다.
기온은 영하 10.9℃. 이 기온에 풍속이 초속 9~10m 정도면 체감온도는 영하 31℃정도 된다고 했다. 체감온도 영하 31℃에서 대청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도착한 시간은 7시 10분. 전날 내린 눈으로 올라가는 길은 눈으로 뒤덮여 있는 등산로로 겨우 올랐다. 일출 예정시간은 오전 7시26분이었다.
소청대피소에서 내려다 본 공룡능선과 주변 봉우리들.
소청대피소 출발하기 전에 기념촬영을 했다. 추워서 칭칭 감은 오른쪽 두 번째가 필자.
소청대피소에서 중청대피소로 올라가는 길.
서서히 솟아오르는 붉은 해를 향해서 연신 셔터를 눌렀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른 것도 잠시, 손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꽁꽁 얼어붙었다. 한쪽만 장갑을 끼고, 다른 손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위해 그냥 맨손이었다.
일출 전의 주변 전경. 구름에 잔뜩 가린 봉우리와 바다가 절묘하게 어울려 있다.
쓴 모자는 이리저리 날리었고, 콧물도 절로 나왔다. 말은 바람따라 금새 날아갔고, 고함을 쳐야 겨우 옆에 있는 사람이 알아들었다. 체감온도 영하 31℃,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찔하다. 그걸 못 가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에 담아왔다.
드디어 오전 7시25분부터 서서히 해가 구름 사이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전 7시 26분. 설악산 대청봉의 일출.
이젠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구름 위로 완전히 드러낸 일출.
이제 날도 서서히 밝아온다.
사실 설악산은 예로부터 눈으로 유명한 산이다. 문헌에서 그 기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中秋如雪至夏至而消故名(중추여설지하지이소고명)’ 이라고 설악산을 가리켰다. ‘한가위에서부터 이듬해 하지에 이르기까지 눈이 스러지지 않으니 그 이름이 설악이라’는 것이다. 음력 8월에서 6월까지 10개월 동안 눈이 있다는 얘기다.
대청봉에서 바라 본 공룡능선의 장엄한 산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서도 ‘峯巒聳列石色皆雪故名(봉만용렬석색개설고명)이라 하여 ‘봉우리 위에 줄지어 솟은 바위 빛깔이 모두 눈빛이라 이름 하여 예로부터 설악이라’고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청봉에서 화채능선으로 내려다 봤다. 화채능선 끝이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권금성이다.
설악산의 천불동, 구곡담 계곡과 거기서 흐르는 토왕폭, 대승, 천당폭포 등은 어디 내놔도 전혀 손색없다. 서북주능이며 화채능선의 우람한 맛,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의 걸출한 암릉이 풍겨주는 역동감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위압감을 준다. 주봉인 대청봉을 비롯하여 30여개의 높은 봉우리가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산이 너무 깊어 아직도 이름 없는 폭포와 봉우리가 많다고 한다.
바람이 너무 불어 모자가 날아갈 것 같은 대청봉. 하긴 몸도 날아갈 것 같았다.
조선시대엔 김시습이 숨어서 살았고, 일제 때는 한용운이 설악산에 들어와 지내며 <님의 침묵>을 완성했다. 백담사엔 한용운 선생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전두환 덕분에 더 알려진 절이기도 하다.
대청봉 정상에서 일행과 함께. 바람이 너무 불어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대청봉 올라가기 전에 하룻밤을 보낸 중청대피소. 중청대피소 소장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寒菊忍
12.10,2010 at 1:00 오후
고생이 정말 많았겠습니다.
젊어서 많이 오르던 길이군요.
일출, 공룡능선, 화채능선…
참으로 아름다운 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