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말기의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야 말로 한 문파를 세운 장문인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정립한 풍수철학(風水哲學)은 10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어도 지금까지 한국 사람들의 집터 잡는 데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까 말이다. 서양철학의 트렌드가 길어야 100~200년이다. 그런데 1000년 이상 영향력이 유지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 아닌가!
지리산 끝자락에 있는 산인 오산에 자리 잡은 사성암은 백두대간의 기운이 흐르는 마지막에서 기운을 응집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선은 어디에서 풍수를 연마한 것인가. 그리고 도선의 스승은 누구란 말인가? 구례(求禮)의 사성암(四聖庵)은 도선이 풍수를 연마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도선은 이곳에서 풍수의 요체를 이해하고, 자신의 철학체계를 정립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초기 최유청(崔惟淸)이 지은 도선국사 비문에 의하면 도선은 젊었을 때에 구례의 사도촌(沙圖村)에서 지리산의 이인(異人)을 만났다고 한다. 그 이인(異人)은 수백 살을 먹은 인물이었다고 하니 아마도 지리산의 신선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도촌은 사성암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저 앞으로 보이는 동네이다. 섬진강의 모래가 쌓여 형성된 ‘사도촌’(沙圖村)은 모래로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상사도리(上沙圖里), 하사도리(下沙圖里)로 나뉘어 불린다.
오산의 정상엔 사자의 이빨처럼 암벽들이 총총하게 밀집되어 기운이 강한 지세를 띠고 있다.
사성암(四聖庵)이 있는 오산(鰲山)은 표고 350m 밖에 안 되는 낮은 산이다. 산은 높다고 장땡이 아니다. 당나라의 시인 유우석(劉禹錫)이 쓴 ‘누실명’(陋室銘)에 보면 ‘산부재고 유선즉명’(山不在高 有仙則名)이라고 했던가. ‘산은 높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다’는 뜻이다. 산만 높고 명인이 살지 않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명산에는 명인이 있어야만 명산으로서 가치가 빛난다. 오산은 지리산의 도사들이 어느 정도 공부가 되면 마지막으로 들러서 마무리 공부를 했던 산으로 전해져 온다. 그래서 ‘오산은 지리산의 형님 산’ 이었다고 도사들 사이에 회자되어 온다.
기운이 강한 암벽 옆에 섬진강이 바라다보이는 사성암이 자리 잡고 있다.
사성암은 4명의 성인의 공부했다고 해서 사성암인데, 그 4명은 원효(元曉), 의상(義湘), 도선(道詵), 진각(眞覺)이라고 한다. 이 4명도 여기에 와서 이 바위들의 정기를 듬뿍 받았을 것이다. 사성암에는 산신각(山神閣) 자리가 기운이 많이 뭉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왕전(山王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산신각이라는 명칭보다 더 높인 표현이 산왕전이라는 표현이다. 사성암의 ‘산왕전’이 자리 잡은 터는 아주 기막힌 지점이다. 좌우에 바위 암벽이 꽉 끼이는 여자들의 스커트처럼 양 옆으로 바짝 붙어 있다. 뒤쪽에도 또한 바위 맥이 내려오고 있다. 그야말로 기운이 빠질 수 없는 꽉 쪼이는 지점에 산왕전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서 기도를 열심히만 하면 7일만에도 소원 하나는 이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오산 정상 암벽을 둘러볼 수 있도록 나무데크를 설치했다.
산왕전 바로 옆에는 도선이 공부했다고 하는 도선굴(道詵窟)이 있다. 그 옛날에 이 높은 산꼭대기 지점에 법당을 짓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법당이 있기 전에는 이 자연동굴에서 수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바람을 막아주는 곳이 동굴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수도처는 동굴이 많다. 도선도 아마 이 자그마한 동굴에서 공부했을 것이다. 사성암은 약사도량이니까 기도하는 데가 산왕전이 아니라 약사여래 모셔 놓은 데서 해야 한다. 절벽에다 기둥을 세워서 지은 법당이 있다. 이 법당에는 바위 절벽에다가 손톱으로 그렸다고 전해지는 약사여래의 선각(線刻) 그림이 있고, 이를 유리창 너머로 바라볼 수 있도록 법당 구조가 되어 있다. 보통 사성암을 찾는 기도객은 여기에서 기도를 한다.
좌우에 암벽이 꽉 끼일 정도로 바짝 붙은 곳에 자리 잡은 산왕전은 기운이 빠지려야 빠질 수 없는 곳이다.
사성암의 암벽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지리산의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왼쪽부터 견두산, 지초봉, 간미봉, 만복대, 성삼재, 차일봉, 노고단, 반야봉, 왕시루봉, 천왕봉 등이다. 다시 왼쪽으로 눈을 돌려보아도 백운산에 연결된 광양 일대의 고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사성암 주위를 1천m급 봉우리들이 삥 돌아서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사람도 자기 혼자 잘났다고 하면 덜 떨어진 인간이다. 주변 사람들이 잘났다고 해야 진짜 잘 난 인물이 된다.
오산 정상은 온통 암벽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성암 주위로 1천m급 봉우리들이 웅위(雄衛)하고 있으니까, 주변에서 사성암을 알아주고 있는 형국이다. 주변에서 알아주니까 외롭지 않다. 이처럼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는 국세라야만 좋은 터이다. 높은 봉우리가 둘러싸면 자칫 답답할 수 있다. 그런데 사성암 앞으로는 널따란 구례평야가 있다. 평야가 있으니까 쌀이 나온다. 어디든지 먹을 것이 나와야 명당이다. 배고프면 오래 못 간다. 금상첨화격으로 사성암을 섬진강이 활처럼 둘러싸고 흐른다. 이를 풍수에서는 금성수(金星水)라고 부른다. 활, 반달 또는 가락지처럼 둥그렇게 감아 돌면서 흐르는 물을 가리킨다. 사성암을 감아 도는 섬진강의 모습은 교과서에 나오는 금성수에 해당한다. 이렇게 명당터를 둥그렇게 감아 도는 모양은 사성암 아니면 보기 힘들다. 오산의 정상 바위들을 애무하는 섬진강이라고나 할까. 그 애무가 너무나 부드럽고 감미롭다. 곡성, 압록(鴨綠) 쪽에서 내려온 강물은 사성암을 활처럼 감아 돌면서 화개, 하동 쪽으로 흘러간다. 산왕전 뒤의 바위에 올라가서 보면 저 멀리 압록에서 흘러 들어오는 강물이 사성암 앞에서 감아 돌아가 화개 쪽으로 빠지는 모양 전체가 보인다. 거대한 에스(S)자의 모양이다. 이 S자 모양의 강물을 보는 것이 풍수교 신자인 필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장관이다. 1시간 이상을 이 모양을 바라다보았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다.
기가 응축된 신물인 바위가 많은 오산 정상이다.
S자로 감아 도는 물이 있으면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의 명당이 된다. 높은 지리산과, 구례평야, 그리고 섬진강이 3박자를 이루면서 조화를 이룬 곳이 오산 사성암 터이다. 산의 흐름, 평야의 인가(人家), 물의 방향을 알면 풍수공부의 골격은 다 마친 셈이다. 기기에다가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이 마주보는 산태극, 수태극의 형국이니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도선국사가 여기에서 풍수를 공부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학습장이었다.
<월간산>에 연재하고 있는 조용헌 박사의 ‘동양학자 조용헌의 영지기행’을 요약해서 실었다.
사성암 주위로 1천m급 봉우리들이 웅위하고, 섬진강이 활처럼 흐르는 바로 앞에는 구례평야가 있어 어디든 먹을 것이 많아, 한마디로 명당인 곳이다.
번역도우미
03.25,2012 at 10:17 오전
안녕하세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