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정공원의 원시 편백나무와 야생화 만발한 유다센(관산+적지산)

등산객이 외국으로 산행을 갈 때 다양한 선택 기준이 있을 것이다. 다만 인지도가 높다고 해서 전부 좋은 산은 아니다. 인지도가 높은 산은 대부분 산 그 자체에 상징성이 있거나 의미가 있는 산들이다. 일본의 후지산, 대만의 옥산, 말레이시아의 키나발루 등은 이름만큼 숲이 좋거나 전망이 뛰어난 산은 아니다. 산 그 자체에 상징성이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조금 경관이 없거나 숲이 허접하다 해도 감탄해 마지않는다. 반면 알려지지 않은 산 중에서 상징성이나 의미는 없지만 숲이나 경관 그 자체가 뛰어난 산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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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마구치현의 관산엔 가는 곳마다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우거지고 등산로도 오래된 흙갈색으로 푹신푹신 했다.

일본 유다센은 편백림으로 이뤄진 숲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빽빽한 산림을 자랑한다. 넓게 펼쳐진 편백림에 천년은 넘어 보이는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아름드리 참나무와 소나무, 일본 국정공원(國定公園)으로 지정된 얼레지와 멸종위기종 야생 함박꽃천국, 박쥐들의 서식지인 동굴, 적지산(寂地山․자쿠지야마) 끝자락 5개의 용폭포, 식물․광물특별보호지구로 지정된 아름다운 식생과 생태 등 등산로를 따라 걷다보면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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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진 편백나무 사이로 한국의 등산객이 지나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적지산 정상엔 야마구치(山口)에서 열린 전국체전 성화를 채화했다는 기록을 새긴 비석이 두 개나 세워져 있다. 2011년과 49년 전인 1952년 전국체전 성화를 채화한 흔적이다. 비석 가운데는 조그만 산신각 비슷하게 만들어 관음보살상을 중앙에 모시고 있다. 한마디로 족보가 있는 산이란 의미다. 등산하면서 일본 문화를 살짝 엿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유다센이란 산 이름은 없고, 온천으로 유명한 야마구치현 유다(湯田) 지방의 산을 묶어서 유다센이라 부른다고 한다. 실제로 등산하는 산은 관산(冠山․간무리야마)을 거쳐 적지산으로 하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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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현과 히로시마현에 걸쳐서 국정공원이 지정돼 있다. 그곳에 얼레지와 함박꽃 같은 야생화가 우리의 천연기념물 같이 보호식물로 보호받고 있다.

관산 입구에서 차에 내리자마자 ‘冠山登山道(관산등산도)’란 커다란 푯말이 눈에 띈다. GPS를 바로 꺼내 위치를 잡고 고도를 확인했다. 무려 791m가 나온다. 한국의 웬만한 산 정상에 와 있는 셈이다. 전혀 고도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각종 시설과 식물채취금지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가만히 보니 야마구치현과 인근 히로시마현(廣島懸), 시마네현(島根懸) 등 3개 현에 걸쳐 ‘서중국산지국정공원’으로 지정돼 있고, 맞은편엔 ‘나한산현립자연공원’으로 지정돼, 시설 증설과 식물채취가 금지돼 있다는 설명이다. 식생과 자연생태가 그대로 살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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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가 있는 산사면에 자라는 편백은 나무 밑둥이 휘어져있다.

그러면 서중국은 또 무슨 뜻이고, 국정공원은 무엇인지. 국정공원이 국립공원과 자연공원과의 차이는 또한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선 일본 지형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열도는 전부 8개 지방으로 나뉜다. 홋카이도의 북해도지방, 홋카이도 바로 아래 일본 혼슈 북쪽의 동북지방, 동경을 비롯한 관동지방, 다테야마와 오오사카가 있는 중부지방, 그 왼쪽이 근기지방, 혼슈 왼쪽 끝부분이 중국지방, 혼슈 아래 섬인 시코쿠의 사국지방, 큐슈의 구주지방 등 8개 지방이다. 따라서 ‘서중국’은 중국지방의 서쪽에 해당하는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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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은 족히 된 듯한 아름드리 나무에 영지버섯 비슷한 버섯이 그대로 자라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없어졌을 텐데…

국정공원은 국가가 지정하나 관리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맡아서 하는 공원이고, 국립공원은 국가가 지정과 관리를 책임지는 공원을 말한다. 현립 자연공원은 현에서 지정 관리하는 공원을 말한다. 우리식으로 보자면 국립공원급 지역과 도립공원급 산을 동시에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관산으로 향하는 등산로 초입부터 숲이 범상치 않다. 8월의 숲은 녹음이 짙다 못해 푸른 녹색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관목과 교목, 초본식물들이 어울린 숲에서 뿜어 나오는 향기가 마치 빛을 발사하는 것 같이 상큼하다. 숲속의 분위기만큼이나 우리 일행도 여자가 두 명이나 있어 더욱 밝고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땅도 푹신푹신하다. 낙엽으로 뒤덮인 길은 흑갈색 빛을 띠어 건강한 토양을 보여준다. 유기물질이 풍부할 것 같다. 걷기에도 딱 좋다. 일행들은 힘든 줄 모르고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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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기생해서 자란 버섯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일본은 어딜 가나 편백나무, 일명 히노끼가 숲을 이룬다. 이곳도 예외가 아니다. 초입부터 쭉쭉 뻗은 편백나무가 첫 방문객을 맞는다. 편백나무는 여러모로 인체에 유익한 나무다. 침엽수 중에서, 아니 모든 나무 중에서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내뿜는다. 목욕탕이나 족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재로 만든 탕의 재료도 편백나무다. 편백나무숲 사이로 호젓한 등산로가 나 있다. 편백나무 밑의 초본식물들은 이끼와 어울려 마치 시계를 몇 세기 전으로 돌려놓은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혀 연출되지 않은 자연의 연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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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등산객이 아름드리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

미끈한 편백나무 사이로 간혹 참나무가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햇빛을 받기 위해 열심히 하늘을 향해 목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참나무는 별로 가지도 없이 키만 뻗어 있다. 곧이어 산죽군락도 나온다. 산죽의 번식력은 다른 어떤 나무보다 강하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세를 확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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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 어디를 가더라도 아름드리편백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서서히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편백나무숲 사이의 오르막길이다. 숲이 우거져 하늘이나 햇빛을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오르막길에선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뿌리를 드러낸 나무를 이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편백나무의 줄기가 아름드리 둥치로 변한다. 이름모를 새도 여기저기서 “쭈쭈쭈쭈~~”하며 울어댄다. 한적한 등산로에 한국의 등산객이 누비고 있다. 일본 등산객 한 명 없는 등산로에 일본 당국의 허가를 받아 한국인의 호연지기를 일본의 산에서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등산로는 거의 외길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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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등산객들이 나무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다.

등산을 시작할 땐 분명 야마구치현으로 올라왔는데, 어느새 히로시마현으로 넘어와 걷고 있다. 언제 현의 경계를 넘어왔는지 알 수도 없다. 나중 지도를 곰곰이 살펴보니 야마구치현에서 시작한 등산은 히로시마현으로 들어가서 다시 시마네현을 넘어 야마구치현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13.6㎞의 등산을 하면서 3개의 현을 넘나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일본 국정공원의 생태를 만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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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에 담은 나무와 산의 모습을 한자리에 모여 확인하고 있다.

올라갈수록 산림은 점점 더 우거졌고,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광활한 숲도 펼쳐졌다. 숲이 너무 깊어 때로는 겁이 날 정도였다. 아름드리나무에 낀 이끼는 예사였다. 이끼는 사실 자연생태가 매우 건강하다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한두 나무가 그런 게 아니고 눈에 띄는 나무 전부 밑둥에 이끼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그러니 더욱 원시림 같아 보인다.


그 중 한 나무가 눈에 띈다. 성인 대여섯 명이 에워싸면 겨우 마주잡을 정도의 아름드리나무에 지름 50㎝는 족히 될 법한 영지버섯 닮은 버섯이 큰 둥치에 다섯 개나 붙어 자라고 있다. 한국의 등산로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이미 망가지거나, 없어졌을 텐데. 등산객이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깊은 숲으로 봐서는 한국 등산객이 아주 좋아할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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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산, 즉 자쿠지야마 정상에 도착했다. 해발 1336m라고 안내하고 있다. 등산객이 제법 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

고도를 확인하니 어느 덧 1000m를 훌쩍 넘었다. GPS로 1281m가 나온다. 한국의 웬만한 산 정상에 와 있을 높이지만 출발 자체를 700m이상 고지에서 했으니 그리 많이 걸은 것도 아니다.

우거진 숲 사이로 살펴볼 것도 많다. 나무에 낀 이끼도 보고, 버섯도 보고, 나무에 패인 신기한 자국도 보고, 나무를 감고 있는 덩굴도 보고…. 그러는 중에 산죽 군락지를 만났다. 산죽이 무릎이 아니라 가슴 위에까지 얼굴을 가릴 정도였다. 갑자기 앞장서서 가던 일행이 발길을 멈추면서 조용히 손짓으로 불렀다.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가까이 다가갔다. 불과 1m앞 산죽잎 위에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뒤따르던 일행이 놀라 “엄마야!” 고함을 지르며 뒤로 내달렸다. 스틱으로 멀리 치우고 재빨리 지나쳤다. 그 순간 모두들 발걸음이 왜 그리 빠른지. 앞 사람 등을 떠밀다시피 하며 산죽군락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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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이정표 바로 옆에는 야마구치현에서 전국체전 성화를 채화한 기념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 중앙엔 산신을 모신 듯한 조그만 사당이 있다.

등산로는 경사가 급하지 않으면서 완만히 이어진다. 한국 등산객이 딱 좋아할 코스다. 얼굴까지 가릴 정도의 산죽만 살짝 정리한다면 호젓한 숲길 등산로로서 즐기기에는 완벽한 등산로다.

삼거리 등산로가 나온다. 동(오른)쪽으로는 관산으로 향한다는 이정표가 붙어 있다. ‘관산 정상 30분’이라고 가리키고 있다. 1㎞가 채 안되지 싶다. 히로시마에서 일본 전국체전 산악종주 코스로 이용했다는 푯말도 보인다. 히로시마현의 관산과 야마구치현의 적지산은 아마 각 현의 ‘모산(母山)’쯤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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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산 이정표와 식물채취금지 안내판을 붙여 놓고 있다.

우리는 서(왼)쪽 방향 적지산(寂地山)으로 향한다. 일본 가이드가 “여긴 정글의 법칙 같다”고 한마디 한다. 정말 울창한 원시림이 잘 보존된 이곳에 살면 정글의 생존방식 그대로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윽고 적지산 정상에 도착했다. ‘寂地山 山頂’이란 이정표도 보인다. 표고 1337m라고 적혀있다. GPS는 1373m로 나온다. 야마구치현에서 정리한 푯말이다. 히로시마현에서 다시 야마구치현으로 돌아온 것이다.

<일본 약수 100선에 속하는 적지산(자쿠지야마)과 약수, 야영장 모습>서 계속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まつ

    09.14,2012 at 10:00 오전

    멋진 풍경 잘 구경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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