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沿海州), 러시아 시베리아 동해연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러시아 말로는 프리모르스키주라고 한다. ‘프리’는 연안, ‘모르스키’는 바다의 뜻이다. 따라서 프리모르스키주는 ‘바다의 연안’이다. 해안선이 무려 1350㎞나 뻗어 있다. 주도(州都)는 블라디보스톡이다. 러시아 시베리아 철도의 동쪽 종착지이기도 한 곳이다. 서쪽은 상트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이다.
한러 유적합동발굴단에 의해 발견한 발해 토광묘터.
원래 이 땅은 돌궐, 말갈, 여진족이 살던 지역으로 중국을 지배한 청나라로 인해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러다 1858년 아이훈조약에 의해 청‧러시아의 공동관리하에 놓였다가 1860년 베이징조약에 의해 러시아령이 되어 군사기지로서 블라디보스톡가 건설되었다.
바다의 연안이란 뜻의 프리모르스키. 블라디보스톡 항구의 모습.
그러나 한민족과도 상당한 인연을 갖고 있다. 돌궐, 말갈, 여진족이 지배하기 이전 고구려가 이 지역을 먼저 차지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고구려가 멸망했지만 이후 발해의 대조영이 이 지역에서 세력을 키워 국가를 세웠다. 지금도 이 지역에서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이 발굴되곤 한다. 발해 멸망 이후에 사실상 한민족에게는 잊혀진 땅이었다.
블라디보스톡 인근 피단산에 있는 발해 석관묘로 추정되는 곳. 역사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
연해지방은 구한말 이래 한국 교포들의 망명지가 되어 상당수 블라디보스톡과 그 주변에서 거주해왔다. 특히 일제시대 초기 독립운동의 근거지로도 유명하다. 한인들의 첫 이주는 1860년으로 올라간다. 한인들의 이주역사에 대해서는 다음에 별도로 한번 다루겠다.
발해외성인 토성으로 추정되는 터. 동해로 흘러가는 강이 토성 외형을 둘러싸고 있다.
연해주에서 발견되는 유적들은 주로 발해의 것들로 추정된다. 현재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 등과 공동발굴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중국은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고 있는 실정에서 우리의 발굴작업에 방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발해토성터 안에는 성과 관련된 아무 유적은 없고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만난 러시아인은 “우리는 발해의 유물을 인정한다. 그건 그들의 역사다. 하지만 지금 현재는 우리 땅에 있다. 유적 발굴에는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중국은 남의 나라 역사까지 자기네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고 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성 발언을 했다. 러시아와의 공동발굴작업으로 지난 1994년 크라스키노 지역에서 금동보살입상‧아미타수인 등 1000여점을 발굴해내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와. 바로 발해 유적지에서 나온 기와다.
현재 일반인들이 확인할 수 있는 유적지는 발해외성인 토성과 거북이공원의 거북이, 피단산에 있는 발행석관으로 추정되는 묘 등이 있다. 지금 자유로이 방문이 가능한 블라디보스톡과 우수리스크 등 연해주 지역에서 무관심 속에 방치된 우리 한민족의 역사와 유물 및 흔적을 제대로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발해인들이 사용하던 토기
블라디보스톡 인근 도시 우수리스크 공원에 있는 거북이상. 이 상을 두고 발해유적이라는 설과 금나라 유물이라는 설이 엇갈리고 있다.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다. 지금 한창 공사중이다.
거북이상을 정면에서 잡았다. 어딘지 모르게 친근한 느낌이 드는 것으로 볼 때 우리 유적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발해의 절터로 알려진 자리. 절터 흔적은 아무리 찾아도 없고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있을 뿐이다.
발해 외성인 토성으로 가는 길.
발해 은귀고리와 옥환
만년 중년 !!
12.12,2012 at 6:06 오전
푸틴과 잘 협의해서 연해주를 돌려받는 방안을 생각해야합니다
일부라도 그러지안으면
우리가 고토를 회복할가능성은없읍니다
이것은 통일을 염두에 둔 장기포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