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국가의 안녕을 위해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상악(묘향산)․중악(계룡산)․하악(지리산) 중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악단은 계룡산 끝자락 신원사와 나란히 있다. 풍수적으로 다 연결되는 지맥인 것이다. 산지가 아닌 평평한 들판에서 바라보는 계룡산은 태산교악(泰山喬嶽)의 느낌을 준다. 그 계룡산의 지맥이 논산의 들판 쪽으로 내려올 때에는 둥글둥글한 모습의 야산들을 만들어낸다.
많은 사람들이 조용헌씨를 따라 중악단의 설명을 듣고 있다.
중악단(中嶽壇)은 보물 제1293호. 보물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아 지금 국보로 지정해 달라고 문화재청에 청원한 상태라고 한다. 조선시대 국가에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한반도의 세 곳, 즉 묘향산에 상악단, 계룡산에 중악단, 지리산에 하악단을 만들었다. 한반도의 남, 북, 중앙에 한 곳씩 세운 것이다.
조선시대 국가에서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건립한 중악단.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1651)에 제단이 폐지됐다. 그 후 고종 16년(1879)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지어 지금까지 전한다. 상악과 하악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라졌고, 유일하게 중악만 남아 있다. 그래서 한반도의 대표적인 산신 유래를 찾을 수 있는 곳이라 국보로 지정해 달라고 올린 것이다.
신원사 대웅전 바로 옆에 중악단이 있다. 오른편 뒤쪽 살짝 보이는 게 계룡산 정상 능선이다.
신원사 대웅전 앞에 섰다. 계룡산 정상 위에 우뚝 솟은 철탑이 보인다. 정상 봉우리 위에 그대로 꽂혀 있다. 마치 일제가 한민족의 기를 뺐기 위해 꽂아놓은 흉물스런 쇠막대기보다 더한 철탑 같아 보인다.
신원사 대웅전 바로 오른쪽에 중원전이 있다. 그 뒤편 희미하게 솟은 철탑이 계룡산 정상이다.
조용헌씨는 “산에 오면 바위를 보아야 한다. 계룡산은 전체가 바위 덩어리이며, 그 기운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다”며 “그 중 가장 기운이 센 능선이 오른쪽으로 휘감아 내려오더니 중악단을 감싼 그 자리에 멈춘다”고 설명했다. 조씨 뒤에서 말을 듣고 있던 신원사 스님도 “계룡산 어느 지역보다 가장 기가 센 곳일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중악단 입구 오른쪽에 있는 주련. 삼일수심천재보, 사흘 간 닦는 수양은 천년 동안 보배가 된다는 뜻이다.
중악단 왼쪽에 있는 주련이다. 백년탐물일조진, 백년 탐한 재물은 하루 아침 티끌이다는 뜻. 좌우 주련은 재물에 욕심 부리지 말고 수양하는 자세로 세상을 살아라는 메시지다.
“이런 산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암벽 하는 사람들이 바위의 기운에 빠져 쉽게 중독상태에 이르는 것도 그런 이치다. 산의, 바위의 기운을 받으려면 2~3시간 힘들게 오르는 것보다 4~5시간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오래 있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꼭 많이 걷는다고 좋은 건 아니다. 오래 머물며 기운을 받는 게 더 좋다. 그것이 일종의 ‘마운틴 오르가즘’이다.”
중악단 산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다. 산신은 누구일까?
그러면서 그는 “4000m 넘으면 데드마운틴(dead mountain)이고, 우리나라 산높이 정도가 오르기에, 마운틴 오르가즘을 느끼기에 딱 좋다”고 강조했다. 바로 옆의 신원사 보다 기운이 더 센 곳, 이성계가 계룡산 정기를 받아 나라를 건국한 곳, 한반도 유일하게 현존하는 산신기도를 위한 장소, 그곳이 바로 중악단이다.
조용헌씨가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