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국사가 수도했던 지리산 ‘청학동’ 쌍계사 佛日庵

우리나라에는 십승지(十勝地)가 있다. 중국에서는 신선이 살만한 이상적인 명당을 동천(洞天), 복지(福地)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십승지라고 부른다. 10여 군데의 뛰어난 장소를 꼽아본다면, 지리산 운봉, 봉화군 춘양, 공주 유구․마곡, 예천 금당실, 충북 영춘면 의풍리, 상주 우복동, 풍기 금계동, 무주군 무풍면, 변산 호암(壺岩), 경기 가평 설악면, 단양군 단성면 적성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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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에서 내려다보면 섬진강 건너 백운산이 아담하게 눈 높이에 보인다. 도인들이 수도하기 딱 좋은 장소다.

십승지는 난리를 피할 수 있는 깊은 산골이다. 산골이기는 하되 최소한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토가 있는 곳이다. 십승지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난세에 피난할 수 있는 피난지라고 한다면, 평화 시에 도를 통할 수 있는 이상적인 땅이 또 있다. 그게 바로 청학동(靑鶴洞)이다. 청학동은 십승지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땅이라고 할 수 있다. 목숨을 부지하는 차원을 떠나 도를 통하고 해탈할 수 있는 신령한 땅이 청학동인 것이다. 가히 신선들이 사는 이상세계가 바로 청학동이다. 이 청학동이 어디인가에 대한 많은 토론과 주장이 있었다. 각종 풍수지리 비결서(秘訣書)에 보면 ‘여기가 청학동’이다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일단 청학동은 지리산 어디인가에 있다고 되어 있다.


가장 일반적인 청학동으로는 악양이 거론된다. 지리산을 배산으로 하고 섬진강을 임수로 한 천혜의 지역이 악양이다. 뒷산에서 산나물과 각종 약초, 과일을 채취할 수 있고, 섬진강에서는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거기에다 섬진강은 흘러가는 방향도 서출동류(西出東流) 아닌가! ‘서쪽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물’인 섬진강은 명당수이다. 서출동류는 햇빛 일조량을 가장 많이 함유한다. 그래서 명당수라고 한다. 악양에는 들판도 넓다. 농사가 충분하다. 현재도 전국에서 귀촌하고 싶은 첫 번째 선호지역이 악양이라고 한다. 악양에 가보면 삼면을 1천m가 넘는 지리산의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고, 그 앞을 섬진강이 감아 돌면서 남해 바다로 흘러가고 있으니 가히 ‘서민 청학동’이라 할 만 한다. 서민들이 살만한 이상적인 땅이라는 의미에서 ‘서민’자를 넣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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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 대웅전의 모습.

‘중산층 청학동’은 지리산의 ‘세석평전’이 아닌가 싶다. 세석평전은 1500m가 넘는다. 서민이 살기에는 높은 고지이다. 어느 정도 세상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중산층’이 살 수 있는 곳이다. ‘중산층 청학동’을 지나면 한풀선사가 말 타고 다니던 청학동이 있다. 푸른색의 학(鶴)이 지붕을 장식하고 있는 이곳은 ‘도사 청학동’이라고나 할까.


쌍계사 뒤로 1시간쯤 올라가는 자리에 나타나는 1만평 규모의 평전이 하나 나타난다. 그게 ‘불일평전’이다. 여기도 청학동이다. 쌍계사에서 불일평전 올라가는 중간쯤에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고, ‘환학대’(喚鶴臺)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바위언덕이 있다. ‘학을 부르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말기의 최치원이 여기에서 학을 불렀다고 한다. 최치원이 환학대에서 학을 불러 타고 가야산 홍류동으로 날라 가곤 하였다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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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불일암의 현판.

청학이 사는 청학동은 한국인의 유토피아였다. 고통 없는 세상이 청학동이다. 그 청학동은 지리산에 있다고 생각했다. 옛 선인들은 지리산을 날라 다니는 학(鶴)으로 여겼다. 왜 학으로 생각하였을까. 학은 크기가 큰 새이다. 보통 새는 아니다. 사람이 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새를 타고 하늘을 나른다는 생각이 우화등선(羽化登仙)의 시초이다. 학술적으로는 신조(神鳥) 토템이라고 한다. 원시 시대에 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생각이 신선설화의 기본이 되었다. 그만큼 큰 새는 자유와 초월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지긋 지긋한 전쟁과 질병, 굶주림으로 시달리는 이 세상을 시원하게 떠나 버릴 수 있는 방법은 새처럼 나는 것이다. 더군다나 학은 색깔도 희다. 성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런데 청학은 백학보다도 더 특별한 학이다. 산을 우리는 청산이라고 하지 않던가. ‘청산’(靑山)에는 ‘청학’(靑鶴)이라야 궁합이 맞는 것인가. 우리 선인들은 지리산을 두 마리의 학으로 비유하였다. “남비청학쌍계사(南飛靑鶴雙溪寺), 북래백학실상사(北來白鶴實相寺)”가 그것이다. “남쪽으로 날아간 청학은 쌍계사가 되었고, 북으로 날아온 백학은 실상사가 되었구나”. 지리산의 남쪽을 대표하는 사찰이 쌍계사이고, 북쪽을 대표하는 사찰이 실상사이다. 쌍계사와 실상사는 두 마리의 학이 날아가서 된 사찰이라고 상상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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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불일암에서 얼마 가지 않아서 지리산 3대폭포로 꼽히는 불일폭포가 있다.

쌍계사 뒤로 올라가서 환학대를 거쳐 불일평전에 다다르고, 불일평전에서 약수를 한 모금 마시고 5분 정도 더 바위절벽 옆을 가면 불일암이 나온다. 불일암에서 300m만 더 가면 불일폭포이다. 그 터는 나이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내가 20대 후반에 이 불일암 터에 왔을 때는 좋은 줄 하나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 50대가 되어 이 불일암에 올라와보니 왜 진작에 이 터에 자주 오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된다.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물론 옛날에는 불일암에 터만 있었지 암자는 없었다. 근래에 암자는 복원한 것이다. 불일암 마당에서 보면 오른쪽에 바가지처럼 둥그런 바위 봉우리가 하나 서 있다. 왼쪽을 보니 역시 바위 봉우리가 하나 뭉쳐서 터를 받쳐 주고 있다. 암자 스님에게 물으니 왼쪽의 봉우리는 청학봉(靑鶴峰)이고, 오른쪽의 봉우리는 백학봉(白鶴峰)이라고 한다. 암자를 좌우로 청학봉과 백학봉이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좌청룡, 우백호가 아니라 좌청학, 우백학인 셈이다.


암자의 마당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산봉우리들은 광양의 백운산 자락이다. 1천m가 넘는 백운산의 봉우리들이 멀리서 이 터를 받쳐 주고 있다. 마침 불일암에 기도를 하러온 청곡(靑谷) 선생이 와 있어서 풍수를 이야기하다 보니, 저 멀리 보이는 백운산은 나는 비학(飛鶴)이라고 설명한다. 청학, 백학, 비학이 모두 이 터를 옹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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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 박사 조용헌씨가 불일암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곡에게 있어서 불일암 터는 특별한 터인 것이다. 그가 학성강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25년 만에 다시 이 불일암 터에 와서 머무르던 중에 필자가 청곡을 만나게 되었다. 하룻밤 자면서 청곡과 우리나라 도맥과 명당, 그리고 신비체험, 난치병을 치료하게 된 이야기 등등을 하게 되었다. 필자는 사업 이야기, 정치 이야기보다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가 우리나라 곳곳에 포진해 있는 명당과 그 명당에 얽힌 사연, 그리고 도사들의 기행이적(奇行異蹟)에 관한 것들이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를 나눌 상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날 불일암에서 청곡을 만나 도담의 재미를 만끽하였다.


원래 이 불일암은 진감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쌍계사를 짓기 전에 수도하던 암자터가 아닌가 추정한다. 그만큼 혼자서 도를 닦는 터로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불일’(佛日)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계기는 고려 후기의 불일(佛日)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여기에서 수도했던 인연 때문이다. 보조국사가 공부한 터이기 때문에 ‘불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리산의 도사들 사이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불일폭포 밑에는 호룡대(虎龍臺)라는 터가 있는데, 바위 절벽 속에 있어서 도를 닦기에 좋은 터라고 한다. 반야봉 밑에 있는 금강대(金剛臺)는 개운조사가 공부했다는 전설이 있고, 영신대(靈神臺)는 기도하기에 아주 좋은 터라고 한다. 호룡대는 험한 바위 절벽 속에 숨겨져 있어서 일반인의 눈에 전혀 안 뜨이는 지점이므로 숨어서 신선공부 하기에 좋은 터라고 전해진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엄마

    01.24,2013 at 10:17 오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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