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명의 이홍식 교수와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의 ‘지리산 트레킹 산중대화’는 이 교수가 미래 한국사회의 문제를 예견하고 만든 자살문제로까지 이어졌다. 조 박사가 먼저 던졌다.
“자살은 인간의 근원적 문제이며, 결국은 본인의 문제입니다.”
“종교는 사후의 문제로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종교는 죽음의 공포에 대한 안식이죠. 종교는 인간의 현재 삶에 대한 답은 못줍니다. 더욱이 종교가 과학적이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믿으면서도 항상 의심을 하게 되죠. 절대 진리에 대한 강한 욕구가 생깁니다.”
“절대 진리에 대한 욕구, 그게 바로 고통의 원인입니다.”
“원래 부처는 종교가 없었고, 혼자서 명상에 잠겨 절대 진리를 찾았죠. 그래서 불교가 절대 진리에 조금 더 가깝다고 봐야겠죠.”
조용헌 박사가 지리산힐링트레킹 도중 섬진강과 구례 사성암이 나오자 정신과 명의 이홍식 교수와 일행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진리가 뭡니까? 저가 볼 때는 노병사(老病死)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생(生)은 어디서 왔는지 모릅니다. 생은 이전의 문제이니 별개로 치더라도 노병사는 미래의 문제이니 오는 대로 받아들이는 게 순리이고 참인간의 모습이라고 보여집니다.”
“그게 참된 진리이고 행복입니다.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돈, 권력, 지위 때문에 행복한 건 아닙니다.”
“한국사회가 추구하는 돈, 권력, 지위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가르쳐 줄 때가 됐습니다.”
지리산힐링트레킹 참가자들이 명상에 잠긴 듯 둘레길을 걷고 있다.
“실패, 장애, 고통을 받아 본 사람이 잘 삽니다. 힐링은 그런 상황을 없애거나 제거하는 게 아니라 최악까지 받아들이는 자세인 것입니다. 받아들여서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바로 해결책이죠. 최선의 해결책은 명상입니다. 명상은 현실적으로 가장 큰 가치죠. 명상의 첫 걸음은 자아존중(self-esteem)과 자애심입니다. 트레킹은 동적명상입니다. 걸으면서 스스로 위로 받으며 기분도 좋아지죠. 많이 걸으면 확장성이 넓어집니다. 그냥 걸으면 신체와 건강만 좋아지지만 집중해서 걸으면 어느 순간 명상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지리산 힐링 트레킹 참가자들이 하얀 꽃이 핀 조팜나무 옆을 지나고 있다.
“현대 교육은 실용과 효율을 가르칠지 모르지만 가치를 가르치지 않죠. 상대 마음을 좋게 해주는 게 감성이고, 가치이지 않습니까?”
“지도자는 감성과 이성을 균형 있게 갖춰야 합니다. 아이비리그 출신은 좋은 머리를 가져 이성(理性)은 뛰어날지 몰라도, 감성은 별로 발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대 마음을 좋게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그게 매우 부족합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혹진혹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혹은 용도 되고, 혹은 뱀도 된다는 얘기인데요, 포인트는 뱀입니다. 뱀으로 있을 때 인생의 쓴맛도 보고, 감성도 키워진다는 거죠.”
트레킹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체적 균형뿐만 아니라 정신적균형이 잡힌다고 한다.
“내가 살고, 가족이 살고, 사회가 살면, 회색이 좀 되면 어떻습니까? 사실 흑백논리가 제일 무서운 거죠. 회색이 부정적으로 비쳐지는데, 자연은 90% 이상이 회색입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착시현상에 의해 흑백으로만 보이는 거죠.”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때 흑백논리가 극성을 부립니다. 회색이 발붙일 틈이 없습니다.”
“양다리 걸치고 있으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냉정히 보면 고관대작들 대부분 양다리 걸치고, 우리도 회색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회색 짙은 사회를 부정하는 거죠. 회색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가 지리산힐링트레킹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걷고 있다.
“참된 색깔이 회색이며, 회색이더라도 갈등이 안 생겨야 진정 소통이 됩니다. ‘회색이 진정 고유의 색이다’라고 선언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모두들 ‘좋은 회색 인간’이란 표현에 박장대소했다. 이 교수와 조 박사의 트레킹 산중대화는 마치 그리스의 ‘소요학파’를 보는 듯했다. 이 교수는 길을 걸으며 나누는 대화가 더욱 균형적이라고 강조했다. 신체 내부는 확장되고, 혈액이 활발히 순환하고, 호흡이 규칙적이어서 더욱 균형감이 잡힌다는 거다. 이 교수는 “부부싸움도 길을 걸으면서 해봐라”고 적극 권한다고 덧붙였다. 공기, 바람이 감정을 자연 이완시켜 균형 잡히게 한다는 것이다. 조 박사도 “무의식적 조율이 이뤄지겠군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지리산힐링트레킹 참가자들이 다랭이논이 있는 지리산둘레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