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 민간신앙인 노고 할미가 있고, 어머니의 산의 유래가 된 지리산 자락에서 한국 최초로 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열리고 있다. 9월6일 막이 올라 10월20일까지 45일 간 축제는 계속된다. 한국전통의약, 즉 한방의 우수성을 확인하고, 그 효능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는 축제다.
한국전통의약은 한방이다. 한방은 만병의 근원을 인체의 균형이 무너진 데서 찾는다. 인간과 자연을 동일시 하고,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연의 상태로 돌리는 데서 치료가 시작된다. 그 조치로 침과 약초가 다양하게 활용된다.
4월 동의보감촌 모습
지리산은 약초의 본고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리산은 한국에서 자생 약초가 가장 많이 있는곳 중의 하나다. 1000여종에 이르는 약초가 지리산에서 자생한다고 한다. 사실 지리산과 약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지리산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러 신하 서복을 대장으로 ‘불로초 원정대’를 보낸 산이다.
서복은 제주 한라산과 남해 등을 거쳐 섬진강을 따라 지리산에 도착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전설 속의 신비의 삼산이 있다. 그 3개의 산은 방장․봉래․영주산을 가리킨다. 그중 방장산이 바로 지리산이다. 봉래는 금강산, 영주산은 한라산을 말한다. 지리산은 그만큼 신비의 산인 것이다.
9월 2013 산청 세계전통의약엑스포
신비의 산에서 자라는 약초를 산청군에서 축제로 특화시켜 발전시켰다. 2001년부터 시작한 산청한방축제다. 산청이 ‘한방약초의 본고장’ ‘한의학의 메카’로 사실상 선언한 셈이다. 지리산 자락의 산청은 가야시대에는 왕실의 휴양지로, 조선시대에는 28종의 약초를 왕실에 진상했던 고장이었다.
영험한 약초의 자생지라는 사실과 더불어 이를 잘 활용해서 한방의술을 발전시킨 수많은 한의학자들을 배출한 고장이 산청이기도 하다. 한방 의약의 경전이라 불리는 <동의보감>을 집대성한 허준(1537~1615년)의 스승인 류의태가 산청에서 태어나, 많은 백성에게 의술을 베풀었다고 전한다. 류의태는 당시까지 조선 최고의 신의(神醫)로 추앙받았으며, 자신의 몸을 제자인 허준에게 해부하도록 맡김으로써 해부학의 효시를 이룬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동의본가 힐링센터 모습
조선 숙종 때 어의를 지낸 유이태(劉以泰 또는 爾泰․1652~1715)도 있다. 유이태는 거창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외가가 있는 산음(지금의 산청군 생초면)으로 옮겨와 의술활용을 했다고 전한다. 홍역(마진․痲疹)에 대한 예방․치료의학 전문서인 <마진편>을 펴냈을 뿐만 아니라 <실험단방><인서견문록> 등의 저서를 남겼다.
<마진편>에는 ‘산청에 있는 스님들이 홍역에 걸려 샘물을 반복해서 마시게 해 치료했다’는 글이 나와 있다. 이는 산음의 맑은 물이 병 치료에 특히 효능을 봤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그는 거주지를 거창에서 산청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의 의술은 나중 왕실에까지 알려졌다
1710년 숙종이 머리에 종기가 나고 열이 가시지 않는데도 어의들이 처방이 신통찮자 조정에서 전국의 유명 의사들을 불러 진찰케 했다. 유이태는 아산 현감 신우정, 안동의 박태초와 함께 조정으로 불려갔다. 이른바 전국의 3대 명의에 속했던 셈이다. 그는 이후 청나라 고종의 천연두를 고치는 등 중국의 명의 편작에 비유될 정도로 중국에까지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동의보감촌 안에 있는 산청약초관에는 자생약초를 식재해서 자라게 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이태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도 전한다. 영남지방에서는 유이태탕이라고 있다. 이는 유이태가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약을 달이고 있었다. 근데 약봉지에 유이태탕이라고 적혀 있었다. 본인을 숨기고 왜 그 글자를 써놓았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아버지의 병을 고치려면 명의인 유이태가 있어야 하는데, 그를 만날 길이 없어 그 대신 약봉지에 유이태라고 쓰게 됐다고 한다. 유이태는 그 정도 명의였다.
약초관안에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능선들을 돌조각으로 만들어 놓았다
초객 허영(1751~1812년)과 초삼 허언(1754~1809년) 형제와 초삼의 아들 허제도 의술로서 명성을 떨쳤다고 전한다. 초객은 약 처방에 능했으며, 초삼은 신의 경지에 이른 침술로 이름을 떨쳐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 화타(華陀)와 편작(扁鵲)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들은 전국을 떠돌며 동생이 먼저 침으로 치료하면 형이 약을 써서 병의 뿌리를 뽑아내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초객이 저술한 의학서 <晉陽神方(진약신방)>은 생생한 경험의학 자료로 조선 후기 지방의학 발전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지리산의 자생약초와 명의들이 배출된 ‘전통 한방 본고장’ 산청에서 한국 첫 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개최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출발은 산청이 아닌 정부의 발상에 의해 나왔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006년 앞으로 7년 뒤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2013년)을 맞아 기념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고민하다 시작됐다.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세계전통의약엑스포를 개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농촌 지도사가 약초관에 약초들을 살펴보고 있다
2009년에 <동의보감>이 공중보건의약서로는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자랑거리가 생기면서 전통의약엑스포에 가속이 붙었다. 정부는 어느 지역에서 개최할 것인가가 고민거리가 생겼다. 충북 제천, 전북 익산, 전남 순천․장흥, 경북 영천과 경남 산청 등 전국 6개 지자체가 경합했다. 인구, 지자체 규모, 서울과의 거리 등 모든 면에서 산청은 꼴찌에 가까울 정도로 열세였다.
그러나 오직 하나 ‘어머니의 산’, ‘신비의 산’, ‘자생 약초의 산’ 지리산이 있었다. 거기에다 산청은 2001년 정부로부터 ‘전통한방휴양관광지’로 지정을 받아 매년 5월 ‘지리산 한방약초축제’를 개최하고 있던 터였다. 2005년엔 재정경제부로부터 산청읍 정곡리 일원이 ‘지리산 약초연구발전특구’로 지정받기도 했다. 꼴찌에 가까운 열세를 ‘지리산’ 하나로 역전시켰다. 심사위원들의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약초의 고장, 지리산 힐링의 고장’ 산청에서 세계전통의약엑스포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지해범
10.08,2013 at 4:38 오후
산청 한방타운으로 상주 한방촌이 다 죽게 생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