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에 가면 돌탑을 자주 볼 수 있다. 도대체 누가, 왜, 어떤 심정으로 이런 돌탑을 쌓을까? 지나칠 때마다 궁금했다. 옛날의 돌탑은 마을 어귀 서낭당 근처에 길을 떠나는 길손들이 안녕과 무사귀환을 기원하면서 돌을 하나씩 쌓던 것에서 유래했다. 그러면 지금은?
대모산 서울둘레길에 돌탑이 있다. 몇 기(基)가 무리를 지어 있기도 하고, 5분 간격마다 한 기씩 쌓여 있기도 하다. 총 20기 가까이 된다. 그 탑을 쌓은 사람은 임형모(68)씨다. 그를 통해서 돌탑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풀었다.
대모산 돌탑 아저씨로 불리는 임형모씨가 망치를 돌탑을 쌓고 있다. 그는 돌탑 쌓는 일이 하루 일과이다시피 하며, 뒤에는 그가 쌓은 돌탑들이 보인다.
#1. 저의 자식이 이런 사람이 되게 하여 주소서! 일 할 때 자신을 잘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정직한 패배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태연하고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고통과 고뇌의 길목에서 항거할 줄 알게 하시며, 폭풍우속에서도 일어설 수 있으며, 패한 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을 깨끗이 하고 목표는 항상 높게 하며, 남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리게 하며, 미래를 지향하는 동시에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중략)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함에 있다는 것과 참된 힘은 너그러움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인 제가 헛된 인생을 살지 않았노라고 나직이 속삭이게 하여 주소서!
임형모씨가 쌓은 돌탑을 망치로 다듬고 있다.
임씨가 돌탑을 쌓기 시작한 건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취미는 사진촬영이다. 산은 이미 다니고 있던 터. 산의 아름다운 장면과 산에서 보는 일몰과 일출은 너무 신비스러웠다. 특히 6월과 10월, 운무가 낀 산은 신비, 그 자체였다. 그 장면을 렌즈에 담기 위해 사진 촬영 세트장 삼아 돌탑을 쌓았다. 그런데 돌탑을 쌓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정성과 노력, 집중이 필요했다. 많은 공을 들여야 가능했고, 그냥 무의미하게 탑을 쌓기가 아까웠다. 탑 쌓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정립하자고 마음먹었다. 먼저 자식을 위한 기도를 하자고 했다. 내가 못 배우고 공부를 못했는데, 자식들만큼은 잘 배워서 훌륭한 사람으로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했다.
임형모씨가쌓은 돌탑.이곳에만 전부 7개가 있어 칠성탑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는 탑을 쌓으면서 기도를 올린 이후부터 자식 교육을 위해 절대 외부 저녁약속을 잡지 않았다. 사업을 하더라도 저녁만큼은 집에서 먹었다. 얘들한테 부모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는 지금도 TV를 보지 않는다. 아예 집에 TV조차 없다. 책을 찾아 열심히 기도문을 찾았다. 마침 맥아더 장군의 ‘자식을 위한 기도(A Father Prayer by General Douglas MacArthur)’가 눈에 띄었다. 그걸 참조해서 기도문을 작성했다. 정성을 다해 탑을 쌓을 때마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식을 위한 기도문을 외우는 것도 이젠 습관이 됐다.
강남구청에서 세운 돌탑전망대 앞에 임형모씨 부부가 나란히 섰다.
임씨의 정성이 그대로 현실화 됐는지 자식들이 모두 훌륭하게 컸다. 세 자매가 모두 서울대, 연세대 등 명문대를 나와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 그는 하나의 돌탑을 가리키며 “저 탑을 쌓을 때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조금 엉성한 느낌이 있어요. 둘째 아이 초등학교 때 쌓은 돌탑인데, 그 아이를 위해 기도를 많이 올렸죠. 그 아이와 꼭 닮았어요. 화장도 않고 부모에 전혀 요구를 하질 않아요. 그래서인지 37세인데, 아직 결혼을 않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임형모씨 부부가 사각형의 돌탑 옆 대모산둘레길을 걷고 있다.
탑을 쌓으면서 인생의 지혜도 얻었다. 무너지고 다시 쌓은 탑은 더욱 튼튼해졌다. 그는 실패의 교훈이라고 말한다. 자식들도 옆길로 세면 바른 길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줘야 더욱 건강하고 올바르게 큰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하나의 돌이 모여 아름다운 탑이 되듯이 세상살이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임형모씨가 쌓은 돌탑 앞에서 한 등산객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2. 오늘 저의 가족이 지난날 지은바 온갖 허물을 깊이 참회하옵고 큰 원력으로 발원하옵나이다. 저의 가족들 모두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집안은 평온하고 화목하며 자손은 창성하고 학업은 계속 발전하며 사업과 관운이 번창 하여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인재로 키워 주시옵소서. (중략) 저의 가족들이 가는 곳마다 이웃을 배려하고 덕을 베풀어 우주 안의 모든 에너지가 연결되어 모든 재앙이 사라지고 나날이 서원 굳세어지는 가피력을 내려 주시옵소서!
칠성탑에 눈이 내려 쌓여 있다.
자식을 위한 기도를 계속 올렸다. 탑을 쌓으면서, 공을 들이면서 마음도 정리되고 안정되어 갔다. 좋은 일만 해야겠다는 마음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계기도 됐다. 기도의 범위, 생각도 점점 더 넓어졌다. 자식에서 집사람에게로, 가족을 위한 기도로 확대됐다.
다람쥐도 돌탑이 신기한 듯 물끄러니 쳐다보고 있다.
결혼 초기만 하더라도 부부싸움이 잦았다. 6개월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언성을 높여 다퉜다. 신혼이라고 별로 즐기지도 못할 정도였다. 냉랭한 부부관계는 같이 사업을 하면서, 탑을 쌓으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모든 일에 공을 들였고, 집밖의 일은 집사람이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해결했다. 집사람에게는 가정사 모든 일을 맡겼다. 휴대폰 전화번호까지 집사람이 관리할 정도가 됐다. 사업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통화 표정, 내용만 듣고도 누구랑 하는지 알 정도다. 지금은 무슨 일을 하던지 묵묵히 따라준다. 자식들을 잘 키웠고, 다 키웠으니 부부가 편안하게 여행 다니며 여생을 보내려고 한다. 아끼는 삶에서 쓰고 베푸는 삶으로 지내고 있다.
임형모씨가 작은 돌 위에 맥주박스를 쌓아두고 아슬아슬하게 돌탑을 쌓고 있다.
#3. 창조님 사은이시여! 오늘 하루 만나는 인연마다 서로 도움주고 서로 협력하는 상생선현들이 되게 하옵소서. (중략) 삿되고 거짓된 마음이 일어나면 그 마음을 돌려 바르고 참된 마음을 얻게 하옵소서. (중략) 창조 사은님의 크신 광명으로 저희 모두 도덕에 회양하고 바른 법에 귀의할 수 있는 오늘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은혜와 위력을 내려 주시옵소서!
임형모씨가 돌탑의 균형을 잡기 위해 돌 사이에 작은 돌을 넣고 있다.
자식, 가족에 이어 나를 위한 기도로까지 이어졌다. 산을 다니게 된 건 순전히 건강 때문이었다. 동대문 시장에서 섬유 도매자영업을 시작한지 40년 가까이 됐다. 소매는 돈을 바로 회수하지만 도매는 순환이 잘 되지 않은 때가 많았다. 외상으로 물건을 주고 월말에 수금이 안 되는 악순환이 계속 됐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결재를 하고 난 뒤 20일 동안은 그런대로 버텼지만 나머지 10일 동안은 가슴이 답답하고 하혈까지 해댔다. 그러다 결재를 하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런 생활이 반복됐다. 가족들에 유서까지 써 뒀다.
조카와 집사람에게 사업을 맡기고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대모산에만 다녔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형수옹의 <한국 220 산행기>를 보고 등산에 입문했다. 이후 신명호씨를 만나면서 전국의 산으로 다녔다. 안 가본 산이 없을 정도로 수십 년 동안 열심히 다녔다. 산에 가면 꼭 산신령께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얘들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살게 해달라’고.
나이가 들면서 멀리까지 등산 다니는 것이 힘들었다. 가까운 대모산에서 시작한 등산, ‘나이 들어서도 계속 할 수 있는 나만의 등산로를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길을 만들었다. 나를 위한 기도와 나만의 생활, 즉 탑쌓는 일이 대모산에서 이어졌다.
멀리 가기 힘든 등산, 가까운 대모산에서 등산을 다니며, 나만의 등산로를 만들며, 나만이 즐길 수 있는 돌탑, 그 돌탑에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는 생활이 지금 20여 년째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박종진
01.08,2014 at 1:59 오후
참으로대단한분이십니다. 가족을위하구 건강을위하여 저많은 돌탑을만들다니 저돌은어디서
가져왔을까요. 대모산에가보며는 돌도별로없는거 같은대요.
다른거는 몰라두 칠성탑에오르며는 마음이 편안해지는걸 느끼는거는 저만일까요.
산은참좋은곳입니다. 마음이편안해지구 기분전환으로는 최고인곳입니다.
더우기 돌탑부근에서는 나와우리 가족을위하구 돌탑을쌓은분에게두 고맙다는 기도을
드리면서 쉬었다가 가는곳이지요.
공든탑은 부너지지을 않는답니다. 산신령님두 복을주실겁니다.
이곳은 대모산에 명물이구 쉬어가는곳으로는 최고인거같습니다.
돌탑쌓으신 임형모씨에게 고마움을전하구요.
항상건강하셔서 더멋진돌탑을 구경하구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