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60세쯤 되는 아줌마들이 산티아고 순례길 800㎞를 닷새 만에 330㎞를 자전거로 내달리는 ‘대한민국 아줌마의 힘’을 과시하고 돌아왔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보통 하루에 20여㎞씩 40일간 걸어서 800여㎞의 여정을 끝을 낸다. 그것을 절반 가까이 자전거로 마쳤으니, 대한민국 아줌마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
양천 어머니회 자전거팀들이 산티아고 순례길 도로길로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다.
서울서 ‘양천 어머니회 자전거’팀 이야기다. 자전거 회원은 120여명 가량 된다. 매주 화, 목요일 두 차례 모인다. 한 번 모이면 30~40명 정도. 수다 떨기 위해서 모이는 게 아니라 자전거 라이딩(riding)을 위해서다. 오전 10시, 도시락을 싸매고 집을 나선다. 양천에서 나선 자전거팀은 과천으로, 안양으로, 팔당으로, 파주 통일전망대로, 미사리로 안 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두루 다닌다. 짧게는 40~50㎞씩 길게는 120㎞씩 하루 5시간을 온전히 자전거 타는 데만 보낸다. 하루 평균 이동거리는 80㎞쯤.
점심은 뷔페다. 식당에서 한꺼번에 나오는 뷔페가 아니라 아줌마들이 제각각 가져온 밥과 반찬을 내놓으면 그게 바로 진수성찬 뷔페다.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고 건강식이다. 한 번 나가면 뷔페식에 소풍 나온 기분을 만끽하고 돌아간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힘차게 밟고 가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항상 다니는 곳만 가면 지겨우니 전국을 누비기로 했다. 공식적으로는 1년에 4번 국내여행을 겸한 라이딩을 가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수시로 간다. 친한 아줌마들끼리 번개모임 하듯 번개 같이 다녀온다. 여행보다는 순전히 자전거 라이딩이 위주다. 아줌마들의 장기(長技)인 수다도 빠질 순 없다. 자전거 타다 쉬면서 틈만 나면 한다. 지난 2000년 결성된 뒤 열심히 자전거를 탄 아줌마들은 60이 넘은 나이에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고 자랑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힘들면 중간중간에 쉬었다 간다.
“건강 검진 받았는데, 체력과 근육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라. 폐활량도 늘었다고 해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자전거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사람이 좋아서 계속 모임에 나가고 있다.”
또 어떤 아주머니는 “허리 디스크수술을 하고 한의원 다니면서 자전거를 탔는데, 지금은 보약 먹을 일도 없고, 허리도 아프지 않다”고 자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 있는 예수 제자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대부분 애들 대학 보내고 난 뒤 노후에 뭔가 할 일을 찾다 운동을 겸해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주부들이다. 이들에게는 자전거 타는 일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수십 년 동안 애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했는데, 자전거 모임에 나가보니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하는 첫 감동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차를 타고 다니며 느끼지 못했던 강원도 산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보는 메밀밭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고, 이름 모를 꽃들이 여기저기서 부르는 듯했다. 50세 넘어서 새로운 감성이 새록새록 샘솟는다.
양천 어머니회 자전거팀들이 라이딩 도중 떨어진 밤을 줍기 위해 일제히 멈췄다. 어딜 가나 알뜰한 한국의 아줌마들이다.
‘금남(禁男)의 자전거 모임’이라 남편들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온라인 카페에 올라오는 사진을 한 번씩 보는 남편은 순전히 여성들만의 광경을 보고 “언제든지 나가라”고 독려할 정도라고 한다. 주부들이라 출근한 남편이 집으로 오기 전에 돌아오려고, 해 지기 전에 자전거 라이딩을 마친다.
국내는 안 가본 지역이 없을 정도지만 해외로 라이딩 간 적은 별로 없었다. 기껏 중국과 대마도 정도. 어디를 가든지 본인 자전거를 가지고 있다. 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사람은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갈 때가 대부분이다. 관광버스로 갈 때는 보통 40명 정원인데, 순식간에 신청자가 쇄도해서 마감한다. 인원이 넘치면 아예 트럭에 실려서 가기도 한다.
라이딩 3일차에 힘겨운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다.
이들이 산티아고로 바람이 분 것은 2013년 초 무렵. 혜초여행사 윤익희 이사에게 “자전거를 타고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비용이 얼마 들며, 어떻게 수송을 하는지, 의견을 타진했다. 서로 메일을 주고받으며 조율 했으나 합의를 못하고 아줌마들은 자전거는 내버려두고 여행만 다녀왔다.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문제는 자전거였다. 아줌마들은 본인의 자전거를 가져가기를 원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윤 이사가 8월 다시 전화를 했다. 따로 일정을 만들어 본인 자전거를 가져가서 타고, 백업 차량으로 나머지 짐들은 전부 수송하겠다고 제의했다. 갑자기 다시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그 의견은 아줌마들에게 일제히 전달됐고, 환갑여행 갈려고 적금 들어둔 돈까지 해약하면서 다시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그렇게 15명이 모였다. 졸지에 1년에 두 번이나 스페인을 다녀오게 됐다. 이번에 그렇게 원했던 자전거를 타고 간다. 모두 설레는 꿈을 안고 소녀 마냥 들뜬 기분으로 출발을 기다렸다.
라이딩을 중간에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서 바에서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11월8일, 대망의 출발일이다. 14시간을 날아서 스페인 바라하스 공항에 착륙했다. 순례길 출발지인 레온까지 다시 차로 4시간 이동해서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레온은 16세기 완성된 레온 대성당과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모티네스 대저택이 있는 곳이다. 우아한 건축물들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며 대장정의 각오를 다졌다. 드디어 산 마르코스 광장에서 출발을 했다.
도심을 벗어나 순례길로 접어들었다. 바람을 가르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달린다. 도보길과 도로는 구분돼 있다. 평행선으로 달리는 도로로 간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다는 얘기는 익히 듣고 있던 터였다. 동양인이 보인다. 한국인인가 싶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하니 “네, 안녕하세요”라고 바로 답이 돌아온다. 손을 흔들며 짧은 인사를 뒤로 하고 다시 바람을 가른다.
스페인 레온 시내 산마르코 성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추울까 싶어 몇 겹의 옷을 껴입어서 바로 땀이 난다. 잠시 옷을 다시 추스르고 출발한다. 구간마다 순례길 확인 도장을 받는 장소가 있다. 커피숍에서 찍어 준다. 그 앞집에는 청포도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커피나 도장은 내팽겨 치고 모두들 담벼락에 청포도 따먹느라 정신없다. 역시 아줌마들이다. 근데 포도 먹은 뒤 마신 커피가 예사 맛이 아니다. 원래 이렇게 맛있는 커피인지, 전부 감동이다.
라이딩 도중 만나는 외국인들마다 신기해한다. 같이 사진도 여러 장 찍는다. 헤어질 땐 손을 흔들며 인사도 한다. “올라”하며 어색한 말을 하며 지나친다. 순례길에는 예수의 제자들이 순례를 한 길이라 그런지 십자가와 예수 제자의 동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스트로 대성당과 역시 가우디가 설계한 대주교 사택 등 건축물들이 장난 아니다.
많은 돌탑과 다양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다시 인증샷을 찍었다.
자전거로 오르막길을 가를 땐 정말 힘이 든다. 땀을 뻘뻘 흘린다. 오르막길 정상이 1,495m로 끝인 줄 알았는데, 그 뒤에 1,505m가 있다. 헉헉 거리며 젖 먹던 힘까지 내서 페달을 밟는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내리막길은 신나게 달린다. 시원한 바람에 헬멧을 썼지만 머리를 가를 정도다.
나무 십자가 밑에서 일제히 만세를 외치고 있다.
벌써 라이딩 3일째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긴 칸타브라이스 산악지역을 오른다. 아침부터 단단히 각오를 한다. 전부 “화이팅”을 외치고 힘차게 출발이다. 가는 길에 밤나무 군락이 나온다. 밤들이 땅에 떨어져 있다. 가던 자전거 내팽겨치고 일제히 밤을 줍기 시작한다. 일부는 헬멧을 벗고 밤을 주워 담는다. 시간이 촉박한 윤 이사는 “시간 없어요. 빨리 가셔야 됩니다”라고 고함을 친다. 아줌마들은 “아까워서 어떻게 놓고 갑니까. 잠시 기다려요”하며 밤 줍기에 여념 없다. 정말 알뜰한 한국의 아줌마들이다.
양천 어머니회 자전거팀들이 레온 시내 광장에서 산책을 하다 한자리에 모였다.
스페인도 고지대는 안개가 많이 낀다. 간혹 안개가 걷히지 않아 안개를 뚫고 가는 풍경도 예사롭지 않다. 산타마리나 성당의 기적의 성채를 보는 감동도 만만찮다.
어느 덧 라이딩 마지막 날 5일째가 됐다. 벌써 300㎞가 다 돼 간다. 이날은 드디어 산티아고 시내에 입성한다. 모두들 “산티아고를 위하여”라며 힘차게 외치고 출발이다. 시원섭섭하다. 벌써 자전거 여행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레온 대성당 앞에서도 기록을 남기는 사진을 찍었다.
‘여기가 산티아고 시내입니다’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조금 더 가서 산티아고 데 꼼포스텔라 대성당 앞 광장에 섰다. 자못 상기되고 흥분된 기분으로 기념사진을 일제히 찍는다. 무엇보다 사고 없이 목적기까지 무사히 온 것이 기쁘다. 거기에 뿌듯한 성취감까지 더한다. 일제히 순례자 사무소에 가서 순례증을 발급받았다. 이젠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증을 받기 위해 등록을 하고 있다.
돌아가기 위해 백업 차량 있는 곳으로 갔다. 이게 웬일인가. 차가 없어졌다. 여권이랑, 배낭이랑, 모든 짐이 거기 있는데…. 일순 긴장한다. 이리저리, 우왕좌왕, 손짓 발짓 모두 동원한 세계 공용어 바디랭귀지로 차를 수소문했다. 불법 주차로 견인되어 경찰서에 차가 있다고 한다. “휴~‘하고 한숨을 쓸어내린다.
산티아고 순례길 순례증을 받고 일제히 환호하고 있다.
다들 맥주로 건배 하며 산티아고 순례길 자전거 대장정을 끝냈다. 15명이 갔는데도 갈등이나 불협화음은 전혀 없었다. 다들 너무 행복한 순간이다. 감격에 겨워 울컥한 기분도 들었다. 여행을 못해서, 아름다운 길을 걷지를 못해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자전거로 순례길 장정을 무사히 마친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양천 어머니 자전거회의 원래 모습도 이랬다. 10년을 넘게 만나도 전혀 다툴 일이 없다고 한다.
양천 어머니회 자전거팀들이 아스토르가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우정옥씨는 “처음엔 가도 후회, 안 가도 후회할 것 같았는데, 갔다 와서 보니 전혀 후회할 게 없었다. 좋은 친구들 덕분에 너무 훌륭한 라이딩을 해서 행복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홍영덕씨는 “청포도를 먹은 뒤 마신 커피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향숙씨는 “얼떨결에 친구 덕분에 갔다 온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자전거 대장정을 잊을 수 없다”고 감격해했다.
이유호씨는 “다들 가고 싶어 하는 산티아고길을 내가 마음을 내야지 가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는 없다”고 뿌듯해했다.
이근순씨는 “험난한 고생길 준비하느라 모두들 고생이 많았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행복한 자전거 라이딩이었다”고 기뻐했다. 이들이 갈 때는 일주일 내내 날씨가 좋아 항상 “양천(陽天)이 떴다”고 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햇빛 쨍쨍한 하늘이라는 뜻이다.
무사 완주를 축하하며 와인으로 건배를 하고 있다.
산티아고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2월엔 남해로 라이딩 갈 계획이다. 산티아고는 이미 지나갔고, 이젠 앞으로 어디로 갈까를 고민한다는 거다. 잘 놀기 위해서 열심히 돈 벌었으니 돈 쓰는 일만 남았다고. 정말 노후를 열심히 재미있게 보내는 한국의 대표 아줌마들이다.
이들은 이 모임이 계속 되는 이유에 대해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로 분석했다.
아스토르가 성당 겸 주교 사택 건물이다.
어떤 아줌마는 “여자만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아줌마는 “이해관계가 없고 전부 뜻이 잘 맞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쨌든 자전거라는 공통 매개체를 통해 중년의 아줌마들을 한데로 묶는 ‘어머니자전거 모임’이다.
어떤 아줌마는 “태어나서 제일 잘한 게 내가 자전거를 탄 일”이라며 “초등학생 동창생 모임에 나갔는데 모두들 나를 제일 부러워하더라”고 자랑했다.
한국의 어느 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한 무리의 아줌마들을 보면 ‘양천 어머니회 자전거’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