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입은 채로 아찔한 암벽타기…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 당시엔 낭만”

“(경기)고등학교 때 정말 암벽을 많이 탔습니다. 1년 365일 중에 300일 정도는 산에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장비도 없던 시절에 교복 입은 채로 밧줄 하나 들고 바위를 오르곤 했죠.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위였어요. 그 당시엔 그게 유행이다시피 했으니까요. 몇 번 그런 경우를 겪다보니 생사의 문제가 구분이 잘 안될 정도였어요. 어떤 어렵고 힘든 문제가 생기면 ‘죽기밖에 더하겠어’라는 배수진을 치는 극단적인 자신감이 생겼어요. 엄청난 집중력으로 모든 일을 하는 힘이 생긴거죠.”

2. 군화나 운동화를 신고 인왕산 크랙을 오르는 1959년 경기고 산악부원들.jpg

경기산악부 학생들이 로프도 없이 암벽구간을 군화만 신고 올라가고 있다. 위험하기 짝이 없고, 쳐다만 봐도 아찔한 장면이다. 1959년에 찍은 사진인데, 사진 속 주인공은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당시 한창 활동했던 장승필 회장이나 이오봉씨가 아닌가 여겨진다.

장승필 한국산악회 회장의 고교시절 이야기다. 그는 61년 경기고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공대 61학번이다. 고2때까지 거의 매일 인왕산, 도봉산, 백운대 등지로 올랐다. “거의 1년 내내 바위만 탄 것 같다”는 게 장 회장의 말이다. 암벽을 타다보니 운동화가 쉽게 헐었다. 등반 운동화를 2주밖에 못 신을 정도였다. 용돈은 전부 등반 운동화를 사는 데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잠시 그의 경기고 산악부 시절 얘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2학년 때까지 공부도 별로 못했어요. 등수는 아마 뒤에서 세는 게 훨씬 빨랐을 거예요. 3학년 초까지 교복 입은 채로의 무모한 암벽타기는 계속 됐으니까요. 3학년 초 4월쯤 됐나 싶어요.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부터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고, 무사히 대학에 들어갔죠. 지금 돌이켜 봐도 암벽은 잘 못하면 목숨을 앗아가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고교시절 암벽을 탔던 게 그 이후 대학생활과 사회생활 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 교복을 뒤짚어입거나 그냥 입고 인왕산 오버행 S자 하강 연습.jpg

경기산악부 출신인 이오봉 전 조선일보 출판국 사진부장이 1959년 교복을 입은 채로 로프에 의지, 오버행 구간을 하강하고 있다.

장 회장의 고교 동기가 조선일보 출판국 사진부장을 지낸 이오봉씨다. 교복을 입은 채로 인왕산에서 오버행 구간에서 밧줄을 잡고 데롱데롱 매달려 있는 장면의 바로 그 주인공이다. 쳐다만 봐도 아찔한 장면이다. 당시엔 영웅처럼 이런 장면이 거의 매일 벌이지곤 했단다.


1954년 첫 사고가 터졌다. 북한산 만장봉 암벽훈련 중 불의의 사고로 당시 경기중 2년이었던 경기산악부 진행웅군을 잃는 비극을 경험한다. 경기산악부의 첫 사고이면서 주의를 주는 사건이었다. 조선일보 주필이었던 홍종인 당시 한국산악회 회장은 수습을 한 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어 장 회장과 이오봉씨가 한창 활동하던 1959년에도 임문웅군이 도봉산 주봉에서 추락사하는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산을 향한 젊은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포스코 2대 회장을 지낸 정명식 전 한국산악회 회장도 “1949년 한해에만 산악부 달력에 산에 가서 암벽을 탄 날을 체크해보니 100번이 넘었더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경기산악부는 암벽등반에 주력하는 정통 클라이머들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 산악부실에는 청계천에서 구입해온 등반 관련 헌책이나 등산영화 포스트, 장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전통은 한국산악회 회장으로 이어졌다. 정명식 회장에 이어 문희성, 남정현 회장이 한국산악회 17대부터 23대까지 7대 연속으로 회장을 역임, 한국산악 발전을 기여했다. 지금 장승필 회장이 그 바통을 이어받아 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안영일

    05.27,2014 at 11:32 오후

    인수봉 옆 백운대 정상의 뜀바위 의 업자일 (밧줄 4식)의 카루비나없이 밧줄만의 가랭이 허지나 어깨에 메고서 몸을 90도로 누우면서 뛰어내리는 1950년대의 우이동 깔닥고개건너의 인수봉 전면의 톱없이 각자 수직의 크랙까지 오르는 모습 마니라 삼줄로 생각됨니다 ,그시절에는 나이롱줄이 귀했고 인수봉 후면 하강코스에는 용중 산악부 (대한민국의 조난사고로 숨진 정인건 (동판 1호)의 친구가있었고 *산에는 마음이있어 산사나이의 보금자리 !어떤바보가 산사나이를 미친놈이라 욕을 했지만 그러나 산사나이는 웃으며 산에가오(업징;ㄹ의 사진 본인도 다시 찿아보아봄니다 ㅡ아–산 산 고마운글 읽었읍니다,본인은 성남 중학교떼에 미쳐서 산에들 다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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