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이탈리아 반도는 남쪽에 있는 항구다. 북쪽 지세와는 많이 다르다. 중부지역보다 산세가 가팔라진다. 높은 산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것도 바위가 돌출되어 있는 악산(嶽山)들이다. 이런 바위산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이탈리아 중부보다는 남쪽에서 훨씬 강골들이 많이 배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지 가이드도 “그렇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남부지역에서 장군들이나 강성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이탈리아를 통일한 가리발디 장군도 남쪽 출신이다. 이탈리아 역사에서 마피아가 등장한 이후 역대 마피아의 보스들이 태어난 지역도 역시 나폴리를 비롯한 남부지역이다. 독재자 무솔리니도 남쪽 출신 아닌가?
나폴리 쪽 조금 못 미쳐서 바위산이 하나 보인다. 산세가 힘이 있고, 앞에도 안산(案山)이 받쳐주고 있어서 기도발이 있어 보이는 산이다. 안산이 없으면 기운이 샌다. 기운을 못 빠져 나가게 모아주는 역할은 안산이 한다. 한국 같으면 저런 산 7부 능선쯤에 절이 들어설 지세였고, 그 절에서 고승이 많이 배출되는 풍수다. 영발(靈發) 있어 보이는 산이 나온다.
“저 산 정상부근에 건물이 하나 보이죠? 그게 유명한 베네딕트 수도원입니다. 얼마 전에 ‘침묵’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소개된 유명한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멀리서 눈짐작으로 볼 때 대략 1천m급의 산으로 보인다. 그 주변 일대에서는 가장 지세가 좋고, 기운이 뭉쳐 있는 곳이다. 베네딕트 수도원이면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수도원이다. 침묵 수도원으로 유명하다. 이런 위치에 어떻게 수도원을 세울 생각을 했을까? 이탈리아 사람들도 풍수를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기도를 하다보면 자연적으로 알게 되는 것일까?
풍수는 동양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정신세계에 들어가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알고, 느끼게 되는 것이 그 터에서 품어져 나오는 신성한 기운일 것이다. 지기(地氣)를 서양 사람들은 ‘가이아’(地母神)라고 표현했다. ‘가이아’는 지령(地靈)을 서양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서양도 동양과 똑 같이 알고 있었다. 단지 기독교가 로마 이래로 서양문명을 통일한 뒤에는 이러한 ‘지령’이나 ‘가이아’와 같은 개념들이 지하로 잠복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일신교(一神敎)의 통일성을 헷갈리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남부 높은 산세에서 나오는 지령이 종교적으로는 베네딕트 수도원과 같은 도인(道人)들을 양성하는 쪽으로도 작용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바위에서 나오는 강력한 기운들은 마피아를 양성하는 쪽으로도 흘러갔다. 나폴리 일대는 마피아의 본고장이다. 기운이 쎈 지역은 장군 아니면 조폭, 아니면 도인이 나온다. 가방끈이 길면 장군이 되고, 짧으면 조폭 오야붕이 된다.
현지 가이드에게 “마피아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물었다.
“‘불쌍한 내 딸’이라는 뜻입니다. 남부 지역은 고대부터 외세의 침입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침략자들이 시칠리아를 비롯한 남부 지역에 들어와 젊은 여자들과 딸들을 겁탈했죠. 겁탈 당하는 딸들을 보면서 그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르짖었던 절규가 바로 ‘마피아’라는 단어였습니다. ‘불상한 내 딸아!’라고 절규했던 것이죠. 그래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생겨난 무장조직이 마피아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마피아는 자기를 지키고, 딸들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이웃을 지키기 위한 자위대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자기 스스로 안 지키면 누가 지켜줄 것인가? 믿을 데는 자기 밖에 없고, 그러자니 주변 동지들과 피를 나누는 맹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탈리아는 수백 년간 이 마피아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정부 공권력을 대신해서 마피아가 그 역할을 수행했다. 이 마피아를 때려 부순 인물이 독재자 무솔리니라고 한다.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으면서 마피아 소탕 작업에 들어갔다. 마피아들이 무솔리니에게 쫓겨나면서 마지막으로 배를 타고 미국으로 탈출했던 장소가 바로 산타루치아 부두였다. 미국으로 가는 배는 여기에서 출발했다. 나폴리 해안의 항구가 산타루치아다. 노래 ‘산타루치아’는 마피아가 정든 고향땅을 떠나면서 부르던 노래였다. 이번에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려나! 마피아의 노래가 산타루치아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인간사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감미롭고 낭만적인 노래가 바로 조폭집단인 마피아 고향 노래라니 말이다.
나폴리는 그 지세가 유(U)자 형태의 커다란 만(灣)이다. U자의 가운데 지점에 있는 산이 베수비오산이다. 나폴리 일대의 진산(鎭山)이다. 이 산이 2천 년 전에 화산폭발을 일으켰다는 것 아닌가. 나폴리에서 인물이 나온다면 이 베수비오 산의 정기를 받고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이 베수비오 산이 잘 보이는 곳에 고대인들은 도시를 지었다고 보여진다. 그 도시가 폼페이이다. 폼페이는 베수비오산의 정기를 받는다고 생각하여 택한 지점이다. 화산재에 그동안 덮여 있었기 때문에 2천 년 전의 주택 내부 구조와 도로, 여러 가지 도시 시설들을 타임캡슐처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도로에는 돌들이 깔려 있고, 주택 구조들은 오늘날 사용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발전된 구조였다. 2천 년 전에 서양 문명이 이런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한 마디로 놀라웠다.
폼페이의 유적을 보고 그동안 지니고 있었던 ‘고대 동양문명 우월론’이 흔들렸다. 2천 년 전에 이런 정도의 도시 규모와 시설, 그리고 정밀한 도시계획을 할 정도의 문명이라면 정신세계와 문화에 대해서도 그만큼의 수준에 도달해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문명의 수준을 후세에 알릴 수 있는 수단을 크게 보면 ‘건축’과 ‘미술’이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미술 수준을 후세에 알려주고 있고, 폼페이는 건축 수준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폼페이는 베수비오산이 병 주고 약 주는 산이었던 것이다. 모든 영적인 재능과 창의력도 베수비오의 화기(火氣)에서 왔고, 비극적인 재앙도 베수비오의 화기 폭발에서 왔으니까 말이다.